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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Aug 03. 2021

에르메스가 갖고 싶다.

둘아이아빠

  요즘 부쩍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다.

 금전적인 문제도 아니고, 남자와 여자문제도 아니다. 운동 때문에 자주 싸우기도 했지만 적당히 서로간의 정해진 시간 내에 하고 있다. 그러니 운동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무얼까?


  5살 아이의 유치원이 방학을 했다.


  여름이 되면 가장 무서운 시기.. 그리고 언젠지 항상 체크하게되는 그 시기.. 아이의 방학.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나서 육아의 난이도가 많이 낮아졌고 언성이 높았던 집안의 평화도 찾아왔다. 물론 둘째아이가 태어나서 그 평화도 잠시 깨졌지만, 그것도 가정 어린이 집에 보낸 이후로는 다시 잠잠했다.


 두 아이와 씨름을 하며 보내야 하는 첫 일주일간의 여름 방학 그 날이 시작했다.

두 아이의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나도 여름휴가를 맞춰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 일이 너무 바빠 다른 직원들도 여름휴가를 뒤로 미루고 있었고, 나도 눈치상 출근을 해야 했기에 저녁에 육아를 빡세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생각보다 아이의 일주일 방학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워낙 장모님과 처형이 육아에 동참을 해주었고, 조카도 같이 방학이기에 처제는 우리집에서 아이와 함께 같이 잤다.


  그렇게 맞은 금요일 저녁. 아이를 모두 재운 금요일 저녁. 이번 아이들의 방학을 무난하게 잘 보냈다 생각할 무렵 아내와 한주를 마무리 하려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 아 나도 에르메스 갖고 싶다."

  " 어? "

  " 아니, 나도 에르메스 백 하나 갖고 싶다구."

  " 내가 잘못 들은거 아니지? 에르메스는 아무나 못산다며.."

  " 회원제여야 사는거 말고, 그냥 사는 백. "


  너무 뜬금없기도 하고, 아내는 그닥 명품을 좋아하지도 않았기에 멍했다. 아니 기분이 나빴다. 그냥 사고 싶다고 얘기한 것 뿐인데 왜 기분이 나빴을까? 되새겼지만.. 기분이 그냥 나빴다.


  " 그럼 나도 스포츠카 하나 뽑을까?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깐 기분이 너무 나빠. "

  " 그냥 갖고 싶다고 얘기는 것도 안돼? 그래. 스포츠카 갖고 싶은 마음 이해해. 나는 오빠가 말하는 것처럼 나도 그냥 에르메스가 갖고 싶다고 얘기한거야. "

 " 아니 갖고 싶다고 얘기하는거 자체가 기분이 언짢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기분이 매우 나빠. 에르메스? 그래 사. 나중에 애들이 갖고 싶은거 못사는거지 뭐. "


  나도 너무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그런데 진짜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 왜 그렇게 얘기해? 갖고 싶다는 말도 못해? 그리고 매일 육아때문에 지쳐서 갖고 싶은거나 하고 싶은거 하나도 못하면서 사는데 사면 또 어때? 나도 내돈 벌거든? "

  " 돈 얼마나 번다고.. 육아부터 시작해서 생활비까지 다 엔빵하면 그 돈 얼마 남지도 않아. 다 내 월급에서 쓰고 당신 돈은 저금하니깐 그렇게 보이는거지.. 그리고 육아휴직 중인데 돈은 어딨어."


  해야될 말이 있고 안해야 될 말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안해야 될 말을 마구 뱉어 냈다.


  " 알았어. 그만하자 그만해. "

 

  아내는 이내 한숨섞인 말을 내뱉고는 자리를 떴다. 그게 또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던지..

그 순간에는 '너가 육아하는 만큼 나도 열심히 돈도 벌고 저녁에 집에와서 육아해. 넌 내가 저녁에 오면 쉬잖아. ' 머릿속에서 답답함이 소리 치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3일 동안 서로 눈치만 보며 말을 안하고 있다. 물론 육아에 꼭 필요한 대화는 하지만, 그 외에는 얼굴도 잘 쳐다 보지 않는다.


  아마 에르메스가 갖고 싶다고 얘기한건 얼마나 육아가 피로 했는지 알아달라는 말이었으려나? 아니면 진짜 갖고 싶어서 말한거였으려나? 에휴...


  8월 중순이면 아내의 생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그 때까지 서로 화 안풀리면 그냥 넘어가려나?


  오늘도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불편한 집에 들어가려고 차를 몰고 가고 있다. 아, 싸움은 지친다 지쳐..


에르메스 때문에 싸운건가, 육아 때문에 싸운건가? 아니면 내가 이상해서 싸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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