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0시경. 나는 아이들의 이불과 시트를 유모차에 실어 세탁실에 왔다.
가끔 외국 영화를 보면 세탁실에서 연애도 하고 노래도 듣고 책도 읽길래, 왜 굳이 세탁실을 찾나 싶었다. 맡겨놓고 다른 좋은데 가서 취미를 하는게 더 좋으니 말이다. 왜 굳이 밖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 세탁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여튼 평생동안 세탁실 한번 방문 안할거라 생각했다.
와 근데.. 한번 오니깐 기분이 너무 좋다. 처음 왔을 땐 세제나 울샴프 걱정을 하면서 왔었는데, 세탁기 안에서 일괄적으로 처리되어 놀랐다. 특히 다 마른 상태로 나오는데 집에가서 바로 깔고 덮을 수 있으니 신세계 였다. 무엇보다도 예전엔 버려지는 시간과 돈이 싫어 세탁실이 싫었는데, 나혼자만의 여유시간이 생기는 것 같아 너무 좋다.
뿐만 아니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하러 나가려고 하면,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받아내야 하고 몇시에 올지 약속을 걸어야 했다. 근데.. 세탁실은..
" 아이들 시트랑 이불 돌리고 올게. "
한마디면 끝난다. 우와..
비록 세탁 30분, 건조 30분의 시간이지만, 철퍽철퍽 윙윙대는 소리만 들리고 고요한 이 장소.. 너무 좋았다.
아이를 갖고 있고 아내와 잠시동안 떨어져 나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세탁실! 정말 아이들 아빠들에게 강추한다.
오늘은 읽을 책을 들고 왔다. 아무도 방해 없이, 잔소리 없이, 아이들의 요구와 울음 없이 조용히 책을 읽어나간다.
너무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너어무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어느새 금방 세탁실에서 세탁물을 꺼내 건조기에 옮겨 놓는다. 기분 좋은 냄새까지..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장소를 이제서야 찾아내다니.. 내가 세탁실에서 인생의 만족을 느끼게 될줄이야..
건조기를 돌리고 이제 껏 연락이 잘 안되던 총각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세탁실 옆에서 맥주도 한캔 샀다. 총각 친구들과 통화할때면 아내의 눈치를 그렇게 봐야했었는데.. 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좋다 좋다 좋다.
어느새 건조도 모두 끝이 났다. 부랴부랴 건조기에서 이불과 시트를 꺼낸다. 차곡 차곡 개어 유모차 위와 짐칸에 나누어 싣는다. 아쉽지만 이제 집에 가야한다.
" 언제 와? 딴데로 샌건 아니지?"
오늘의 자유시간은 끝났다. 다시 현실로 간다. 고요한 한밤중에 다른 유모차와는 달리 유아의 머리가 안 흔들린다는 유모차 위에 이불을 싣고 걸어가고 있다. 작은 언덕을 넘을 때마다 이불이 부르르 떨린다. 유모차 안흔들린다는 말 다 영업용 멘트다.
" 올 때 아이스크림 사와. 먹고 싶어."
얼른 아이스크림 두개 사들고 가서 먹어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