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고등학교 당시 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었다. 다른 수학여행과는 색 다르게 서울역에서 기차로 경주를 갔었다. 50명의 한반, 그리고 12반으로 구성된 한 학년은 기차 한량마다 두반씩 타고 있었다. 12반이었던 우리반은 맨 마지막 량에 타고 있었다. 다들 과자를 정신없이 까먹고 수다를 떨며 수학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한시간 정도 기차를 탔을까? 어느샌가부터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기차칸으로 넘어와 무언가를 힐끗힐끗 보고는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거리면서 다시 제자리로 갔다. 그 일이 계속 반복되던 찰나 다른반에 있던 내 친구에게 문자연락이 왔다.
'너네 반에 얼짱 있다고 난리남. 다들 보러 왔다갔다하고 있음. 나도 곧 넘어갈게.'
문자를 보고 바로 이해 됐다. 우리반 퀸카를 보러 분주하게 왔다갔다 한 것이었다. 우리 반 그녀의 유명세가 흘러흘러 우리 기차칸과 정 반대인 1반까지 전달이 됐었다. 그녀는 정말 유명했다.
우리반은 한달을 주기로 뽑기를 해서 짝꿍을 바꿨었다. 정말 우연찮게 그녀와 짝꿍이 되었었고 쑥쓰러움이 많은 나는 설렘과 걱정이 반반이었다. 수업시간이나 쉬는시간에 자꾸 말을거는데, 어찌 대답을 해야할지 모를정도로 였다.
급식 시간이었다. 그날 따라 걸쭉한 된장국이 나왔다. 한식을 매우 좋아하는 난 된장국을 푹 퍼서 급식에 담았고 자리로 가져오는 길에 친구와 부딫쳐 바지에 엎었다. 원래도 칠칠맞은지라 화장실에 가서 대충 바지를 빨았는데, 냄새가 영 가시질 않았다. 평소라면 신경도 안썼을텐데, 옆에 있는 짝꿍에게 그 냄새가 전달될까봐 걱정이었다. 남은 수업은 4시간, 젖은 오른쪽 다리를 책상 밖으로 빼고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 야, 너 왜 그렇게 앉아 있어. "
" 아니, 국을 엎었는데, 혹시나 냄새 날까봐서. "
" 안나, 걱정마. 그냥 앉어. "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나한테 건네주었다.
" 이 걸로 닦고 제대로 앉어. 나 불편한거 하나도 없어."
손수건 이었다. 그녀의 상냥함에 가슴이 콩닥 댔었다.
선배이자 형은 대학교의 킹카였다.
나는 공과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나보다 3년이나 위였던 형을 동아리에서 만났다. 학번이 차이나기도 했고 군대에 갔다온 시기가 나와 엇갈려 마주치거나 친해질 기회가 많이 없었다. 다만 그 어렵다던 공과대와 미대를 복수전공하고 있었으며, 성적도 항상 탑이었다.
특히 그 당시 나는 축구를 매우 좋아했었고 보는 눈이 있었는데, 형이 미대 과대표로 축구를 나가 시합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었다.
운동도 공부도 잘했던 형이다.
차를 무척 좋아했다. 당연히 학과를 졸업하면 자동차 회사로 갈 예정이었다. 얼마나 차를 좋아했던지 지상파에서 일반인 F1 체험 방송을 했었는데 경쟁을 뚫고 방송에 출연도 했었다. 그 후 싸이월드에 많은 팬이 생겼던 걸로 알고 있다.
소개팅과 미팅을 자주 해주던 시기에 형도 내 레이더 망에 있기에 몇차례 권하기도 했었지만 항상 학교에서 유명했던 분들과 연애를 하고 계셨고 바람둥이와는 거리가 멀기에 정중하게 소개팅을 거절 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한참 다니고 있을 무렵. 조촐하게 8명 남짓한 동창회가 있었는데, 그녀를 거기서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눈부셨던 외모는 살이 조금 찌고 조금 빛이 바래있었지만 성형하지 않는 모습과 아직도 선한 웃음엔 매력이 남아 있었다. 직장도 은행권에서 잘 다니고 있었으나 오랜 연애에 끝이 좋지 않았는지 결혼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 때 나이 29살. 고등학교 때 걸지도 못했던 말들을 그날 실컷 나눴고 우린 꾀 자주 연락하는 친구 사이가 됐다.
형과는 졸업 후에도 계속된 동아리 활동에서 자주 만났다. 역시나 자동차 관련 일을 했고 아쉬운건 부모님의 경제적 문제로 복수전공을 마무리하지 못한채 취업을 했다. 형은 소개팅을 정말 받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날 따라 운동을 같이 하고는 말을 많이 주고 받았다. 그날 소개팅을 해달라 했고, 눈이 높은 형에게 그녀가 떠올라 주선을 섰다.
그렇게 추억 속 고등학교 퀸과 계속된 야근으로 일에 찌든 형을 이어 주었다.
그 둘은 소개팅을 하고 3번째 만남을 하며 바로 연애로 이어졌다. 차를 좋아했던 형 답게 많은 데이트는 드라이브로 이어졌다. 긴 연애로 지쳐있었던 친구는 바람을 자주 쐬며 멘탈을 조금씩 잡아가고 있었다.
둘의 연애가 지속되면서 몰랐던 둘의 이야기도 나에게 조금씩 넘어오고 있었다.
친구는 세남매 중 첫째였으며,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가 많이 아팠다. 자존감을 많이 잃었고 당연히 결혼하리라는 긴 연애는 남자의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끝이 났었다.
형은 첫째. 결혼과 손자를 무척이나 바라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형의 자유로움과 매일 새볔까지 근무하는 일로 인해 연애는 매번 짧았다.
확실한 미래, 결혼의 필요성에 따라 둘의 연애는 잘 지속되었다. 둘다 눈이 높았는데 너무 큰 기대감만 없으면 당연히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꾀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연애에 대해 물어보니 눈물을 흘기며 이별한지 한달이 넘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몸이 좀 좋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조그마한 종양이 발견되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종양은 수술과 함께 치료가 됐지만 실연에 힘들어 했다.
형의 얘기는 형 친구를 통해 들었다. 소개팅을 오지랖있게 해주다 보니 얼굴도 못뵌 형 고등학교 친구들까지 해줬었다. 그렇게 친해진 형의 친구. 그 형의 말로는 연애의 끝을 선배가 지었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이어준 연은 끝나는 듯 보였다.
" 진짜, 너한테는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연락해야 될 거 같아서 연락했어. 오빠가 내 연락을 안받더라구. 아마 헤어져서 그런 것 같은데, 연락 좀 해줄 수 있어? "
실연한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연애에 있어 맺고 끊음이 확실한 앤데 무슨일이지?
" 아, 그냥 말할게. 어짜피 너는 알게 될거니깐.. 임신한지 3개월이 좀 넘은거 같아. 그 사이 연애도 한적없고. 오빤데, 적어도 연락은 해봐야 할 것 같아서. "
순간 울음을 터뜨리며, 얘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요새 살이 쪄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하다며 필라테스를 끊고 다니고 있다던 친구가 사실 임신이었다. 일단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정말 둔하다고 하며 걱정을 했다.
내가 형에게 연락을 하려던 찰나. 형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 후배님.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한데, 걔한테 무슨일 있어? 헤어진 후로 연락 한번 안하더니, 갑자기 5통이 넘게 부재중이 와 있길래. 무슨 일 있나 싶어서.. "
" 형. 그게... "
" 알았어. 무슨 일인지 알겠어. 끊어봐. 연락해 볼게. "
나는 걱정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 내가 매달려 결혼을 했는데도, 신혼인 삶의 조율을 위해 화이팅 넘치게 싸우고 있는데 연애의 종지부를 먼저 찍었던 선배가 이 일을 어떻게 수용할지, 그리고 이 관계가 유지되더라도 잘 될지 걱정이었다.
형에게 그 다음 날 전화가 왔다.
" 걱정하지 말고.. 잘 들어. 일단 나도 부모님께 말씀 다 드렸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다 말했어. 너도 알듯이 내가 책임과 의리로 살잖아. 잠시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날 바로 전화 했고, 인사드리러 가자고 했어. 넌 너무 걱정하지 말구. "
그 형의 담담한 목소리와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 정말 멋진 형이었다. 누가 이렇게 빠른 결정과 빠른 답변을 쉬이 내놓을 수 있을까? 대단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걱정이 앞섰다. 결혼을 하더라도 사랑이 아닌데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주선자다 보니 더 걱정이 됐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들도 너무 흔쾌히 결혼을 수락하셨다. 오히려 선배의 가족은 손자를 일찍보게 되어 좋아하셨다고 했다. 형보다는 가까운 친구에게 결혼 진행에 대해 자주 들었고 식사자리 사진이며, 뱃속 아기 사진이며 보낼 때마다 행복해 했다. 3개월이 될때까지 왜 몰랐냐며 묻자, 수술했을 때도 몰랐고 당연히 병원에서 얘기 안하기에 임신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계속되는 더부룩함에 다이어트를 결심했고 점점 심해지자 내과를 찾았는데, 산부인과를 가보라고 했단다. 정말이지 무덤덤한 아이였다.
그렇게 결혼 후 둘은 잘 살고 있다. 아이를 낳고 결혼식을 할까 전에 할까 고민하다 그 전화를 한지 3개월내에 모든걸 일사천리로 처리를 했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에서 배가 조금 티는 났다. 주선을 섰던 나에겐, 아내가 임신해 있어서 그랬는지 자동차 장난감과 아이 신발을 종류별로 주셨다.
그 후 아이를 낳고 사는 친구의 모습을 볼 때 동창인 친구들과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둘째까지 순산하고 정말 잘 살고 있다. 내 아이와 동갑들이라 종종 자주 만났고 예전보다 더 친한 관계가 됐다.
아직도 전화를 받던 그 순간이 가끔 생각난다.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었지만 결정과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