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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Jan 10. 2021

소개팅전문가

속도위반의 비극

  내 친구는 사업가다.


  나와 동갑인 친구는 같은 동네, 같은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워낙 집이 잘 산다는 얘기가 친구들 사이에서 돌았다. 부모님께서 철강 사업을 크게 하셨다. 덕분에 모자란 건 없이 컸다. 나의 베프는 아니였지만, 서로 모난점 없이 착했기에 성향은 잘 맞았다. 다만 친구는 부모님께서 모두 사업에 참여하시다보니, 학업에 잘 집중을 못했다. 그렇다고 학교생활을 어긋나게 하지는 않았다. 튀지 않았고 조용했었고, 운동은 잘 못했다.

  운동을 취미로 갖고 있는 난 자연스레 멀어졌고, 대학교 진학 때 까지 서로의 연락처도 모르고 살았다. 다시 만난건 동네 민방위훈련에서 였다. 나야 일찍 결혼해서 다시 동네로 들어온 케이스였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다른데로 이사를 갔기에 마주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 날 같이 앉아서 하루종일 수다를 떨며 시간을 잘 보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고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했다.


  " 소개팅 하지 않을래? "


  내가 먼저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잘 알지 못하는 친구였지만 착했고 집안이 빵빵하니 쉬이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아 진짜? 그래 알았어. "


  쑥맥이었던 친구는 그 동안 연애를 많이 안해봤다고 했다. 특히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은터라 부모님께서 결혼을 보채고 있는 상황.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그 후 몇차례나 더 소개팅을 해줬지만, 잘 되지 않았다. 소개팅을 하다보면 가장 큰 장점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친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거다. 친구 역시 내 소개팅을 받아가면서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학벌에 대해서 컴플렉스가 있었다. 공부를 잘 못해 전문대에서 졸업을 했다.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었는데, 잘 만나나 싶더니 돌연 파토가 났다. 이유는 학벌. 선생님은 학벌을 보고 있었고 친구는 컴플렉스가 있었다.

  집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매 소개팅마다 첫 데이트 식사를 호텔 또는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가졌다. 물론 상대방은 매우 흡족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을 소개하면서 사업에 대해 얘기를 했고, 추후 결혼하게되면 살집도 얘기를 했단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자신이 산 모습보다 좀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사람을 해줬었는데, 여자는 맘에 들어했지만, 너무 지나칠 정도로 데이트 비용을 쓰지 않아 남자쪽에서 파토를 냈다.

  상대방의 돈 씀씀이를 제일 으뜸으로 보았다. 소개팅시 매번 잘 안되는 이유가 상대쪽에서 좋은 선물을 받고도 피드백이 너무 낮거나, 데이트 비용에 소극적이다 싶으면 만남은 끝났다.


  결국 소개팅 상대방을 고르고 골라 한다리 건너 친구를 해줬다. 그 둘은 그렇게 커플이 됐다.


  여성분은 취준생이었다.


  졸업 후부터 쭉 취준생은 아니였다. 학교는 서강대를 졸업했다. 당연히 취업도 잘 됐었고 은행권에서 일하게 됐다. 하지만 일년을 못 채우고 나왔다. 다른 곳에도 몇번 취업을 했으나, 오래다니지 못했다. 누구 아래서는 궂은 일을 할 수 없어 했다.

  외모도 괜찮았고 깔끔한 이미지 였으나 나중에 친구와 연인이 된 상태에서 커피를 마신적이 있었는데 공주스타일이었다. 부모님께서 아끼고 아껴주셔서 인지 아니면 남들에게 특히 친구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였는지 열심히는 살지 않지만 존중은 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 상황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많이 변하게 됐다. 일정한 수입원이 없어지자 가세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고 모아둔 돈은 없으며, 어머니 또한 앞으로의 삶을 걱정 하셨다. 그렇게 그녀는 취집에 나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결혼정보회사에도 큰 회비를 내고 등록을 했단다.



  둘은 잘 만났다. 서로의 요구조건이 잘 들어 맞았다. 친구는 존중을 받았고 여성분은 친구가 내세운 청사진에 푹 빠져 있었다. 연애 3개월 차.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나와는 연락이 뚝뚝 끊기는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헤어진건가?


  " 있잖아. 아.. 주위에 애기 먼저 갖어서 결혼한 사람있어? "

  " 아... 있어. 최근에.. 왜? 설마 너도? "

  " 아니.. 아.. 진짜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된다. 임신이고 병원에 갔는데 벌써 8주차래. "

  " 와.. 이건 좀 그렇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결정하려고? "

  " 일단 부모님께 말씀은 드렸는데, 매우 좋아하시더라구. 나는 아직 긴가민가 한데, 왜 긴가민가인지를 모르겠어. "

  " 얼마 안만났으니깐 당연히 긴가민가하지. 나도 몇년을 만나고 있는데도 아내가 긴가민가한데.. "

  " 어떻게 하는게 좋겠어? 너 빅데이터잖아. "

  " 음, 뭐든 빨리 결정해야될 것 같아. 부모님은 워낙 좋아하시니깐 너만 결정하면 되겠네. "

  " 행복할까? 행복해질 수 있을까? "


  친구는 심히 걱정을 했다. 나였어도 수많은 생각이 들었을 거다. 그 날 이후 통화시간은 길어졌고 매일마다 전화가 걸려왔다. 결혼에 대한 진행상황이라던지 고민거리라던지 내가 아는 선에서 데이터들을 정리해 얘기해줬고 선택은 친구에게 맡겼다.

  그렇게 부모님에 이끌려 가는 결혼은 속도가 매우 빨랐다. 친구가 결혼을 못하는게 아닌가 걱정하셨던 부모님은 아들의 결혼을 위해 여자분이 원하는 모든걸 맞춰 주셨다.


  하지만 둘 사이에 삐끗한 일이 생겼다. 바로 거주지. 여성분은 잠실에 살았다. 친구들도 결혼해 잠실에 사는듯 했다. 내 친구가 연애 당시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큰 평형의 집에 살게 될거라면서 말했던 내용들이 발목을 잡았다.

  막상 결혼이 코앞에 떨어지자, 그 큰돈을 어디서 구하리.. 남자 30대 중반에 1억을 모은 이도 드물다. 아무리 집이 잘 산다 해도 하루 아침에 집을 살 현금을 바로 마련하기 힘들다. 그렇게 절충을 하신건 김포에 전세도 아닌 매매한 집. 하지만 여성분은 연애당시 약속을 지키라며 울면서 따졌다.

  쉽지 않았다. 일단 거짓말을 한꼴이니 그건 잘못한게 맞았다. 직접 얘기하지말고 부모님 앞에서 얘기하고 어쩔 수 없음을 인지시키라고 조언을 했다. 친구는 내 조언에 따라 일을 치뤘지만 여성분은 울며겨자먹기로 수긍을 했다. 그대신 결혼전에 원하는 걸 사달라고 했다. 혼수를 원하는 대로 맞춰 달라고 했다. 일방적인 요구였다. 원하는대로는 받지만 그만큼은 주지 않아도 생각한듯 했다. 임신을 시켰고 그 댓가를 바라는 듯 했다.

  아마 여성분은 인생이 갑자기 꼬였을 거다. 다리를 이어준 나 이외의 주선자는 진작에 손을 땠단다. 나도 손을 때고자 했으나 첫째아이를 키우며 고생을 하는 나와 아내 모습이 떠올라 도와주고 싶었다. 여성분은 인생이 우울해 보인다고 했다. 원하는 기대치가 있었는데,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원하는 가정을 꾸릴 기대감에 행복했으나 그게 다 부풀려진 현실이었고 점점 갈수록 믿지 못할 남자와 살게 되는 지옥이 그려졌다고 했다.

  임신 10주차를 넘기고 있었다. 위태위태한 상황. 어떻든 결정을 해야한다고 얘기를 전했다. 친구는 여성분을 매일 찾아가 지난 거짓말과 과장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사과를 받질 않았다. 신용이 떨어진 그녀는 각서를 요구 했다.


  - 각 서 -


1. 5년 내 서울로 이사를 가지 않으면, 지금 집을 내 이름 또는 아들 이름으로 변경한다.

2. 바람을 피울시 집과 전재산을 내 이름으로 변경한다.

3.

4.

......


  무리한 요구였다. 친구가 카톡으로 사진을 찍어줘 보여준 각서는 내가 봐도 열이 받았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 양가 부모님은 아셔? "

  " 이거 봐볼래? "

  자기와 장모님 사이의 카톡을 보여주었다. 처음엔 다정한 대화였다. '딸이 아직 철이 없다.' '내가 설득시키겠다.' '혼수 이것만 해줘라. 그리 많이 해줄 필요 없다.' '와서 밥먹고 가라.' 하지만 어느 기점에서 카톡은 무섭게 변해 있었다.

 ' 내 딸 인생 물어내라.' '원하는게 뭐가 적다고 그것도 못해주니?' '처음 봤을 때부터 별로였다.' '학벌 차이가 나니 너가 해줘야 한다. '

  나중에 얘기가 돌아서 들은 바, 장모님은 시집을 빨리 보내고 싶어하셨다. 수입이 없으셨을 뿐더러 재산이라곤 집 딱 하나 남았다고 했다. 설득을 하며, 보내려고 했지만 딸에게 너무 야박한 대접을 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이야기는 틀어졌다고 했다.

  결국 이 연애는 둘의 결정이 아닌 부모님의 결정으로 넘겨졌다. 친구의 부모님은 여성분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했으나 아프시다며 거절하셨고, 집 앞 커피숍에서 4시간을 기다리다 화를 씩씩내고 돌아오셨다고 했다.

  " 연락처 다 지우고, 없던 일로 해라. 이건 아닌거 같다. "

  그 후 여성분 부모님과 여성분이 소송을 건다며, 변호사를 백방 알아보셨고 친구는 아이 걱정과 부모님의 화남을 매우 걱정 했다.

  친구가 우연치 않게 네이버에 관련된 내용을 검색했는데 자기 이야기와 너무 똑같은 질문이 지식인에 올라와 있어 자기와 연애를 했던 사람이라고 직감을 했다. 다행히 답변으로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고 우연인지 진짜인지 그 날 이후로 연락이 없다고 했다.


  " 아이 낳고 양육비 청구하면 어떻게 하지? "

  " 에휴.. 그러게 왜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해놨어. 안 낳지 않을까? 주위를 의식하는 친구라면 아마 임신한것도 주변은 잘 모르고 있을꺼야. 너 집은 어떻게 해? "

  " 이참에 나와 사는거지 뭐. 욕만 먹었어."


  속도위반. 너무 많은 걱정거리. 뱃속의 아이는 안타까웠다. 얘기만 듣고 있던 나도 입이 텁텁했다. 친구는 결국 결혼정보회사에 거금을 넣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로 부모님께서 결정을 했다. 여성분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의 갈 길로 갔다.


  아마 내 생각엔 무리한 각서를 요구한 순간부터 여성분은 결혼을 원치 않았다. 다만 아이가 있고 처음인지라 혼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대신 하게끔 보챈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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