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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Jan 21. 2021

둘아이아빠

아내의 이유있는 의심

  코로나 때문에 잠시 잠겨있던 테니스장 문이 살짝 열렸다. 4명씩 1시간 30분 사용. 얼마나 기다렸던 운동인가.. 4명을 모았고 퇴근시간에 잘 맞춰서 예약을 넣었다.

  문제는 둘 아이를 보고 있는 아내를 어떻게 설득해야할지 고민이 많다. 솔직하게 운동을 하겠다고 직구를 던지려고 했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는거라 쉬이 허락을 해주지 않을까?

  말을 하려던 찰나 아내의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보았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얘기하면 싸울 징조가 보일 듯하다. 타이밍을 잘 노려보기로 했다. 저녁 8시 아내가 둘째를 재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에게 할 말을 잘 구성 해야한다. 때마침 첫째가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아내가 둘째를 재우고 나올  때, 첫째를 잘 돌보면서... 답답하다고 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인척 하면서... 운동 한번 해도 될까? 안한지 오래됐잖아...

 좋다. 오늘 설득 프로젠테이션이 알차고 허락 받기에 딱 좋다.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아내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아내가 나왔다. 둘째는 울고 있었다.


  " 저기~!! 있잖아. "

 " 조용히 해. 수면교육하잖아. 밖에 시끄러우면 못자. "


  첫번째 말문이 막혔다. 으윽...  둘째가 자면 다시 얘기해보자.


  울음소리가 잦아 들었다. 아내는 아이가 자는 문앞에서 핸드폰을 만지며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과자를 찾았다.


  " 뭐 먹을거 있어? 입이 심심해서.. "

  " 콘초코 있어. 아 그리고 있잖아. "

  " 나중에 얘기하면 안돼? 피곤해. "

  " 알았어. "


  그렇게 테니스 치기 하루 전날이 지나갔다. 결국 말도 못하고 아침이 됐다. 아내와 아이가 일어나기 전 갈아 입을 옷을 가방에 넣어 챙겨 나왔다. 테니스채는 항상 차에 보관 중이다. 출근 하는 내내 어떻게 말할까가 제일 큰 걱정이었다.


  출근해 일을 정신없이 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이었다. 전화를 해야 됐다. 아니면 운동한다고 생각 할테니..


  " 여보, 있잖아.. 오늘.. "

  " 왜 늦어? "

  " 아 응응.. 익산으로 출장을 가고 있어. 좀 늦을것 같아. "


  운동한다고 직구를 던지려고 하니.. 운동을 못할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오늘 출장 일정이 됐다.


  " 또 늦어? 운동하는거 아니지? "

  " 코로나로 폐쇄 됐잖아. 칠 때도 없어. "


  진짜 막무가내로 찔러본다. 예전엔 몇번 걸려 넘어갔었지만 이젠 이건 안 통한다. 어짜피 거짓말도 했겠다.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짜야 했다. 일하다가 중간중간 나와 차에 앉아서 전화 했다.


  " 지금 이제 출발해. "

  " 지금 OO휴게손데 차가 막히네.. "

  " 운전 오래하니깐 좀 졸리다. 잠시 눈 좀 붙여야 되겠어. "


    네비로 익산과 서울 고속도로 중간 휴게소 이름을 검색해 놓았고 두번 정도 알리바이 전화를 했다.


  퇴근시간이다. 오랜만에 테니스를 할 생각에 마음이 무척 설레다. 테니스 장으로 가는데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를 잘 해야된다. 한시간 반동안 전화를 못 받기에 전화가 오게끔 만드는 통화를 하면 안된다. 차는 집에서 좀 먼 곳에 주차를 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안받는다. 전화를 또 했다. 안받는다. 둘째 아이 분유를 주고 있나보다. 테니스 약속시간이 다가온다. 차에서 통화를 마쳐야 하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에이 모르겠다 싶어 카톡을 남겼다.


 ' 목감 휴게소 쯤 왔어. 차가 많이 막히네. '


  차에서 나왔다. 운동화를 갈아 신고 옷을 갈아 입었다. 테니스 라켓을 들고 코트로 향하는데 전화가 온다. 차로 허겁지겁 막 뛰어 갔다. 운전석에 앉았다. 숨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한시간 반쯤 걸릴 것 같아. "

 " 아 그래? 희안하네.. 코로나로 잠겼다는 코트 끝날시간에 맞춰서 오네? "

 " 아.. 진짜 아니라니깐.. 장모님은 오셨어? "

 " 응. 아까 오빠가 익산에서 올라온다고 늦는다고 하니깐 바로 오셨어. 적당히 치고 와. "

 " 코로나로 잠겼는데 어디서 쳐. 징하다 진짜. "


  막 찔러보는건지.. 진짜 촉이 좋은 건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여튼 전화를 잘 받고 나와서 테니스를 쳤다.


  땀이 주륵주륵.. 마스크가 촉촉하게 젖었다. 숨이 가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얼마만에 느끼는 자유인가.. 어제만 해도 수면부족과 육아로 인해 목에서부터 타고 오른 두통이 좀 있었는데, 씻은 듯 없어졌다.

  한시간 반.. 진짜 금방 갔다. 다들 운동을 마치고 장비를 주섬주섬 챙길 때, 나는 외투쪽으로 뛰어가서 주머니를 뒤적뒤적 전화기를 찾는다.


  부재중 전화 2통. 죽었다. 언제 걸려 온건지 확인한다. 다행이다. 두통 모두 5분 안짝이다. 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들 내가 둘아이아빠라는 걸 알기에 먼저 가는 걸 이해해 준다.


  " 얼렁 들어가. 오늘은 혼나지 말고.. "


  차로 뛰어가면서 생각한다.

  혹시 마트가다가 치는걸 봤으려나? 에이 아니다. 내 아내는 봤다면 코트 안으로 들어와서 팔짱을 끼고 내가 짐을 쌀 때까지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마트에 가려면 아이를 한명 데려 나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내 판단을 내린다. 찔러본거네.


  차에 탔다. 시동을 걸고 자동차를 움직였다. 바로 전화를 걸지 않는 이유? 네비게이션이 켜지는 소리며, 블랙박스가 켜지는 소리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차 내에서 소리가 잠잠해지자, 전화를 걸었다.


  " 집에 우유 없지? 지금 사고 있어. "

  " 잘 쳤어? 죠리퐁 먹고 싶어. 그것도 같이 사다줘. "

  " 징하다. 진짜.. 빨리 사갈게. "


    차를 이제야 집 앞에 대고 옷을 갈아 입는다. 챙겨가진 못하고 일단 차에 쭉 펴 논다. 창문은 조금 열어논다. 차에 내렸다. 마트로 가는 내내 머리에 뭍은 땀을 연신 털어낸다. 그래도 겨울이라 금새 마른다. 땀도 금방 식는다. 다행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왔다. 둘째 아이를 아내가 안고 있었다.


  " 잘 쳤나 보네. 입이 귀에 걸렸어. "

  " 안쳤어. 진짜.. 우리 애기들 ~ "


  첫째와 둘째에게 한번씩 인사를 건넨다. 장모님은 옆에서 웃고 계신다.


  " 그만 좀 해라. 남편 고생했잖아. 그리고 운동 좀 하면 어때. 중요한건 안 했다잖아. "


  역시 장모님 밖에 없습니다. 엄청 감동 먹으며 마스크를 벗고 손을 씻으러 갔다. 손을 씻고 나오는데 장모님깨서 눈짓을 하신다. 손가락을 바지 부분을 가리키셨다.


  " 네? "

  "바지, 종아리, 바지. "


  아내 눈치를 보며 나에게 신호를 주셨다. 내 바지를 보니.. 아뿔싸 흙이 묻어 있었다. 얼른 화장실가서 툭툭 털는 얼른 샤워를 했다.

  장모님께서는 내가 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실까 아니면 야근을 하고 왔고 흙은 그냥 묻었다고 생각 하실까? 괜히 죄송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쓱 아내 눈치를 본다. 장모님과 수다를 떠는 거 보니깐 기분은 좋아보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장모님께서 몰래 쓰윽 집에 있는 포카리 스웨트를 꺼내 주셨다.


  " 얼른 마시고 버려. 의심할라. "


  아내보다는 장모님께 죄송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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