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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몸을 맡기고

대충의 자세

by 하완




최근 내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운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한마디로 하락세다. 그리고 생각한다.


‘흠, 골짜기 구간인가.’


주식 그래프를 보면 우상향하는 그래프라도 일직선으로 올라가는 그래프는 없다.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올라간다. 인생도 마찬가지여서 살아간다는 건 수많은 너울을 타고 나아가는 거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수많은 오르락내리락 중 내려가는 골짜기에 있다. 이 골짜기 구간을 지나면 다시 오르막이 나오고 꽤 괜찮은 시기가 찾아올 거다. 그리고 그다음엔 또 안 좋은 시기가 올 거고. 좋은 시기와 안 좋은 시기를 번갈아 겪으며 나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지금 닥친 어려움에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지금은 내려가는 것 같아도 결국 멀리서 보면 우상향하는 그래프가 될 거라 믿고 있다. 어떻게 우상향을 장담하냐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우하향하는 그래프일 수도 있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닥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내 인생이 우상향일지 우하향일지 사실 나도 모른다. 다만 앞으로가 더 좋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인생은 상향, 하향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그저 끊임없는 파도의 너울을 타고 쉴 새 없이 오르내리며 바다 건너 목적지, 죽음에 도착하는 게 전부일지도. 아무튼.

인생의 오르내림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부터 힘든 시기를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힘든 시간을 단순히 잘못된 시간이라 생각했다. 불필요하며 있어서는 안 되는 시간. 그래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잘못되어가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안다. 이건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러운 흐름, 일종의 리듬이다. 물론 하락이 즐거운 일은 아니라 화도 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마냥 비관적이진 않다. 이 내리막도 영원하지 않을 터. 골짜기 너머의 빛을 본다.

최근 몇 년 동안 운이 좋았다. 모든 게 잘 풀렸고 덕분에 인생의 방학을 맞이한 것처럼 한가하고 태평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아무 문제 없어도 되나?


종종 내가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이토록 잔잔하고 고요한 날들이 있었던가? 앞으로 또 있을까?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예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나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것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자,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가야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리막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좋은 시절은 끝났다. 나는 이제 어두운 골짜기를 향해 뚜벅뚜벅 내려가고 있다. 여기까진 예상했던 거라 당황스럽진 않은데 문제는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오래 깊은 골짜기를 헤매고 다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길고 긴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과거의 나는 고민과 불안, 울음으로 그 시간을 가득 채웠다. 그걸 노력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힘든 기간을 조금도 줄여주지 않았다. 울어도, 울지 않아도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이제는 어떤 자세로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할 일은 온몸의 힘을 빼고 리듬에 몸을 맡기 는 것. 그래야 덜 힘들고 덜 다친다. 이걸 이겨내겠다거나 버텨내겠다는 마음은 버리자. 그런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그게 생각처럼 잘되진 않겠지만, 아무튼 그런 자세를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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