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의 자세
책장을 정리하다가 20년 전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때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고민을 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일기장을 펼쳤다. 처음엔 몇 장만 읽어보려는 심산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전부 읽어버렸다. 이 친구 글 재미있게 잘 쓰네. (웃음)
재미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온통 어두운 얘기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기를 꾸준히 쓴 게 아니라 아주 힘들었던 시기에만 집중적으로 썼으니 밝은 내용이 있을 리 없다. 나는 주로 괴로울 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편이다. 괴로운 시간이 길게 이어지는 시기엔 일기도 그만큼 쌓여 소설책 한 권 분량이 되곤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어둠 속에서 괴로움과 분노로 터지기 일보직전인 마음을 노트에 덜어내 듯 글을 썼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20여 년 전, 스물일곱 살의 나는 몹시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이는 이미 많이 먹었는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고, 앞으로 뭐가 될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몹시도 괴로워했다. 또래들은 벌써 뭔가를 선택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아무것도 아닌 채로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더불어 내 환경을 원망하는 마음도 커져만 갔다. 나는 왜 이딴 집에 이런 꼴로 태어났나. 일기엔 ‘내 삶이 혐오스럽다’는 표현이 나온다.
맞아, 그때의 나는 그랬지. 많이 힘들고 많이 무서웠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이후로 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게 될 텐데. 스물일곱 살의 어둠은 그냥 예고편에 불과한데, 앞으로 이어질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할 그 당시의 내가 걱정되었다.
20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고 지나왔을까? 솔직히 어떻게 지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뭐 하나 해결된 것 없이 계속 불안해하고 고민하며 하루하루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벌써 20년이나 지나버렸다. 연말이 되면 ‘뭐야!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고?’하며 놀라는 것처럼 지금 내 마음은 놀라움이 더 크다. 뭘 했다고 20년이 지났을까? 시간 정말 빠르구나. 길게만 느껴지던 고통의 시간도 지금 와서 보니 빠르게 흘러간 물살처럼 느껴진다.
지난 20년이 간밤에 꾼 꿈처럼 아득한 이미지로 뭉뚱 그려져 다가온다. 그걸 한 문장으로 적으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어떻게 어찌어찌 살아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데 그 긴 시간을 살아냈다니. 그 사실에 감탄한다. 뭐야,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면서 잘 살아냈잖아!
어찌어찌 살아진 세월. 그렇다고 그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많은 게 달라졌다. 원하고 바라던 모습은 아니지만, 직업이 있고 밥벌이를 하고 있다.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고양이를 기른다. 그리고 제일 큰 변화. 지금의 나는 20년 늙었다. 몸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서 고민도 달라졌다.
20년 전 일기장 속 고민이 진로와 성공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창작에 대한 고민과 건강, 그리고 노후에 대해 걱정한다. 고민은 해결되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다른 고민으로 대체될 뿐이다.
지금도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늙어가는 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는데 노후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고 해결할 방법도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어찌어찌 또 살아가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고민을 안고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미래가 내 눈앞에 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 걱정 많이 했는데 어찌어찌 또 살아졌네” 하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