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의 자세
몇 년 전 보호소를 통해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했다. 누군가가 버리고 간 새끼 고양이 남매였다. 밝은 색 여자아이에겐 ‘알밤’, 어두운 색 남자아이에겐 ‘군밤’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합쳐서 밤밤이라 불렀다. 그렇게 밤밤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는 귀엽다. 좀 심하다 싶게 귀엽다. 자는 것도, 뛰어노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그냥 존재 자체가 귀여움이다. 그런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귀여운 걸 자주 보면 행복해진다. 나는 대체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밤밤이를 보면 내 안에 사랑이 넘치는 걸 느낀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얻는 건 벅찬 경험이다.
함께 사는 여자는 ‘1인 1 고양이’를 법으로 정한다면 세상에 전쟁은 없어질 거라 말한다. 그녀의 말에 나는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고양이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고양이를 키우며 전쟁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말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또 고양이를 기른다는 게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니까. 법으로 무조건 키우게 한다면 오히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쉽게 키울 수 없었다. 생명을 키우는 건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일이고 힘든 일이다.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망설였다. 키워보니 예상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랑만 주면 될 것 같지만 고양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때에 맞춰 밥을 챙겨줘야 하고, 화장실도 수시로 치워줘야 하고, 이런저런 건강관리도 해야 하고, 심심하지 않게 놀아줘야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건 어느 정도 삶을 바꿔놓는다. 캣타워며 스크래처, 숨숨집 등 고양이용품으로 세간이 늘어나고 어수선해지는 걸 보면 덩달아 내 마음도 심란해진다. 거기다 꼭 새벽에 잠을 깨우는 녀석들 때문에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노는 줄 알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놀아달라고 졸라 대서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솔직히 좀 귀찮다.
가장 불편한 점은 여행을 편하게 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 걱정에 집을 오래 비울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다. 가더라도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이렇듯 자유롭고 조용하던 내 일상은 고양이 덕분에 완전히 변해버렸다.
이런 걸 따져보면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단점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다. 귀여운 것 좀 자주 보자고 이 많은 단점을 끌어안는다고? 사실 나는 고양이를 입양하는 데 다소 미온적이었는데 짝꿍이 적극적으로 원해서 데려오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내가 온전히 원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고양이와 함께 살아서 너무 좋지만 가끔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더 편하고 자유로웠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좀 부끄럽다. 아주 못난 사람 같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남들은 아무 문제 없이 잘 키우는 것 같던데.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당신과 결혼하는 사람이 당신과 싸울 사람이고, 당신이 선택하는 꿈의 직업이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줄 직업이라고. 상당히 우울하게 들릴 수 있는 얘기지만, 나에겐 위로의 메시지로 들렸다.
아, 내가 밤밤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 일 수밖에 없구나.
내 사랑이 부족해서 이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알밤이와 군밤이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에 가장 큰 짐인 것이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건 그것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얻는 일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무언가를 얻는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지 싶다. 반대로 무언가를 가지지 못하는 게 마냥 나쁜 것도 아니고. 가지건 못 가지건 저마다의 좋음과 나쁨이 있다. 세상엔 완전히 좋기만 한 것도,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도 없는 게 아닐까. 우리는 남이 가진 걸 부러워 하지만, 그가 그것으로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고난은 잘 보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나만 없어, 고양이’ 같은 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 또 ‘나 왜 있어 고양이’ 같은 소리도.
밤밤이가 없는 일상을 상상해 본다. 조금 더 자유롭겠지만, 그게 마냥 즐거운 일일까. 나를 귀찮게 하는 목소리도, 보드라운 털의 감촉도, 내게 몸을 기댈 때 느껴지는 무게도, 신나게 뛰어노는 귀여운 모습도.... 그런 것들이 사라져 버린 일상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할 것 같다. 그러니 불평은 대충 적당히만 하고, 있을 때 더 사랑해야겠다.
알밤아, 군밤아.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자.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