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의 자세
예전만큼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다. 영화 말고도 볼거리가 많아진 탓도 있지만 흥미가 많이 떨어졌달까. 좋다는 영화를 봐도 감흥이 없을 때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덜 보게 된다. 그게 왠지 나이 때문인 것 같아서 약간 슬퍼진다.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니까. 아, 이대로 감성이 죽어버린 아저씨가 되는 건가.
최근 야쿠쇼 코지 주연의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아아, 좋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동인지 모르겠다.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감성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일단 안심이다.
중년의 남자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가족은 없고 혼자 산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충만하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를 갠다. 아끼는 화분에 물을 주고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길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는다. 퇴근 후엔 목욕탕에 들러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단골 술집에 들러 술을 한 잔 마신다. 집에 돌아와선 책을 읽다가 졸음이 쏟아지면 불을 끄고 잠을 잔다. 다음 날새벽,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를 개고, 화분에 물을 주고, 출근길에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자신만의 루틴대로 차근차근 살아내는 그의 하루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역시 정해진 루틴 안에서 안정과 행복을 느끼는 듯하다.
반복되는 매일을 보여주면 그게 과연 재미있을까 의문이 들 법도 한데 신기하게 재미있다. 정작 나의 반복되는 일상은 지겹게 느껴지는데, 그의 일상은 뭔가 멋져 보인다. 잘 정돈된 책상처럼 단정함이 느껴져서 좋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루틴이 꼭 지켜지길 바라게 된다.
히라야마는 정해진 루틴대로 매일매일을 똑같이 살길 바란다. 그런데 그 바람은 영화가 계속될수록 좌절되고 만다. 직장 동료의 무리한 부탁으로 귀가가 늦어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던 조카가 불쑥 찾아와 며칠 동안 함께 지내기도 하고, 갑자기 야근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면서 그의 일상은 엉망이 된다. 덩달아 평온하던 그의 마음도 어지럽게 흔들린다. 아아, 똑같이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영화는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당신의 매일이 똑같은 반복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매일이 다르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만약 당신이 매일을 똑같이 살고자 한다면 매일은 결코 똑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심지어 히라야마가 루틴을 잘 지키던 날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절대 똑같지 않다. 날씨가 다르고, 마주치는 사람이 다르고, 불어오는 바람이 다르다. 그렇게 오늘과 완벽히 똑같은 내일이란 없다. 오늘이 지나면 오늘과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오늘만의 유일함으로 온전하고 완벽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특별하고 완벽한 하루를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곤 한다. 또 그래야 하고. 매일의 특별함과 소중함을 너무 잘 안다면 일상을 살아낼 수 없을 거다. 예를 들어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이 특별한 날에 출근하는 게 맞을까 하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특별함을 절실하게 깨달은 사람이라면 출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날 회사에 갇혀 있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을 지키기 위해선 매일의 특별함을 잊어야 한다. 특별함과 소중함은 문득문득 느껴야 제맛이다.
이런저런 일을 겪은 후 소중한 일상을 되찾은 히라야마는 자신의 루틴대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화초에 물을 주고, 출근길에 카세트테이프를 튼다. 오늘의 선곡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이것은 새로운 새벽.
이것은 새로운 날.
이것은 새로운 삶이야, 내겐.
그래서 난 기분이 좋아.
노래를 듣는 그의 기분도 좋아 보인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울상이 된다.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그대로 우는가 싶더니 다시 환하게 웃는다. 그는 웃는 동시에 울고, 우는 동시에 웃는다. 그는 도대체 어떤 마음인 걸까. 그의 마음을 가늠해 본다.
영화엔 히라야마의 과거가 나오지 않는다. 화장실 청소부가 되기 전의 삶은 괄호가 쳐져 있다. 어쩌다 이곳에 왔고, 왜 이렇게 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대충은 알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그에겐 커다란 상처가 있고, 풍족한 삶을 버리고 도망친 듯하다. 그렇게 얻은 지금의 삶에 그는 대체로 만족하지만 종종 외롭고 초라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는 희망을 느끼는 동시에 회한과 무력감을 느낀다.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싶다가도 ‘거지 같은 인생’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내가 종종 그러는 것처럼.
영화 마지막, 클로즈업된 히라야마의 얼굴은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처럼 다양한 표정으로 일렁인다. 때로는 빛이 보이고 때로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 얼굴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모아 오려 붙인 콜라주 작품 같다.
좋은 예술 작품은 우리 마음을 온통 어지럽힌다. 내 마음속에 이렇게나 다양한 감정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즐겁다. 이것은 기쁨, 살아있기에 누리는 호사. 살아있길 잘했다. 오늘은 새로운 날, 새로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