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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완 Feb 13. 2018

측면의 재발견






 중학생 때였다.

 하루는 옆자리 친구의 얼굴을 그리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림만 보고도 누구의 얼굴인지 알아볼 수 있게만 그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은 점수를 주겠다는 미술 선생님의 파격 제안에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잘 그릴 필요도 없고 누군지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나. 아이들은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똑같이 그려주겠어. 비장한 마음을 품고 시작한 것이 분명한 침묵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야, 눈이 삐었냐?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여기저기서 원망과 욕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화지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들이 창궐하고 있었다. 평소 그림 좀 그린다고 자부하던 나 역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망작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선생님은 웃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예견이나 했다는 듯이. 아아, 정녕 우리 반엔 이 미션을 성공할 이가 하나도 없는 것인가.


 “우와, 똑같다!”  

 그때였다. 반의 한 구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보았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단박에 누구의 얼굴인지 안 것은 당연한 일, 단지 그것뿐이라면 혁명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을 거다. 그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 그림은 측면이었다. 완벽한 ‘옆모습‘말이다.

 에이, 그게 무슨 혁명이야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그려도 되는구나! 나를 포함한 모두가 당연히 정면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 단 한 명, 그 녀석만이 측면을 그렸다. 친구의 얼굴을 닮게 그리라고만 했지 정면을 그려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다. 그런데도 왜 당연히 정면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무슨 생각으로 옆면을 그린 것일까.

 그 친구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아니었다. 아니, 그림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그에게 그림 그리기란 귀찮은 행위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리면 간단하게 그릴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방향, 측면에서 그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얼굴의 한쪽 면만을 그리다니, 이건 편법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얼굴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은 정면을 그린다. 눈, 코, 입이 다 나오도록 정면에서 그리는 것이 아무래도 맞는 방법 같아서다. 측면을 그린다는 것은 뭐랄까 전부를 다 그린 것 같지 않아 잘못된 방법 같다. 하지만 옆에서 본 얼굴도 분명 얼굴이고, 정면에선 보이지 않던 그 사람만의 독특한 얼굴이 드러나기까지 하니 어찌 잘못된 방법이라 할 수 있는가.

 그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사실 정면에서 본 얼굴을 그린다는 건 쉽지 않다. 들어가고 나온 이목구비의 굴곡이 평평하게 보이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반면 측면에서 얼굴을 보면 얼굴의 굴곡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마와 코, 입술로 떨어지는 외곽선을 잘 따라 그리기만 하면 하나의 선으로도 그 사람의 특징을 쉽게 잡아낼 수 있다. 심지어 눈과 귀를 하나만 그려도 되지 않나. 이거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거다. 일은 덜 하고 효과는 크게 보는 것 말이다. 그런 효율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쉽게 한 명을 그려내고는 내친김에 다른 친구의 얼굴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뚝딱뚝딱 서너 명의 옆얼굴을 그 인물과 똑 닮게 그려냈다. 아! 나는 감탄했다. 그 어떤 정면보다 더 닮았다. 그날 난 측면을 다시 보게 됐다. 정면만이 어떤 이의 얼굴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나야말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아닐까.

 정면만 보고 그 사람의 얼굴을 완전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증명사진을 찍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측면으로 찍으면 안 되는 걸까 하고. 측면이 그 사람을 더 잘 증명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의 이런 주장을 공공기관에서 받아들여 줄 리 만무하다. 나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므로 공공기관의 입장을 다 이해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증명사진이야 내 맘대로 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나 자신을 증명할 자화상을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측면을 그릴 거다. 중학 시절 그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똑바로 보이는 내 모습보단 살짝 비켜난 옆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그렇다. 나는 정면보단 측면이 좀 더 낫다. 그리고 그게 더 나답다. 자, 그렇게 해서 이런 괴상한 제목의 에세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짜잔!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정면으로 내세울 게 없으니 측면 운운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되묻고 싶다.


 “티가 좀 많이 났죠?"


 맞아요. 정면은 이미 망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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