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 먹어요

꼰대의 추억 활용법

by 유하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블라 블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Zion.T의 “ 꺼내 먹어요”라는 노래를 듣다 보면

나는 힘들 때 추억을 꺼내 먹고살고 있구나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전 일들을 꺼내 드는 건 자신의 경험이 그만큼 가치가 있었고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앞으로 살아가는데 투영하기 위해서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꼰대”라고 할 테지만 현재 내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그때의 추억이니 당당하게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나의 “나 때는” 유년 시절이다. 청소년기는 사연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추억을 만들기보다 하루하루 버텨내기 급급했다.

무뎌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애써 많은 것을 지워냈고 비워냈다. 그래서 그때를 생각하면 힘듬도 아픔도 즐거움도 없는 공허한 시간이다.

하지만 유년기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행복했다.


전남 순천만 일대가 나의 고향이다. 태어나서부터 친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내가 8살 때 나의 할머니는 78세였다. 지금도 여든이 다 된 어르신들을 보면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나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많이 발전했지만 그 시절엔 정말 깡촌이었다.

하루에 버스도 몇 대 다니지 않았고 병원이며 약국은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다.

글도 몰랐고 시력도 좋지 않았던 우리 할머니는 어린 나를 안고 몇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예방 접종을 해줬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없으니 추측만 할 뿐이지만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워보니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어도 힘든데 그 환경에서 어떻게 나를 키웠을까,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행복했다. 우리 할머니는 나를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키웠다.

행여 넘어지면 무릎이 깨질까 솜을 누벼 손수 무릎 보호대를 만들어 주셨고 상에서 공부를 하면 여자 아이가 팔꿈치가 검어지면 안 이쁘다고 팔꿈치 받침대도 만들어주셨다.

항상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할머니는 장난기가 많으셨다. 겨울밤 이불을 둘러쓰고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이야기가 무서웠다기보다 중간에 놀라게 하는 소리나 제스처에 자지러지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항상 할머니의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시골의 긴 겨울밤을 지새우기엔 무서운 이야기가 딱이었다.

장독에서 홍시며 곶감을 꺼내다 서로 더 먹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고 마당에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다. 뜨끈한 고구마와 시원한 동치미는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돌 정도다.


봄에는 할머니랑 들판을 누비며 냉이와 쑥을 캤다.

바구니를 들고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삐비(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산야초)를 뽑아 질겅질겅 씹었다. 슈퍼도 없는 동네였기에 껌을 대신하기에 좋은 간식거리였다.

캐온 쑥은 가마솥에 물을 끓여 데쳐서 햇빛에 말렸다. 그렇게 말린 쑥으로 쑥떡을 했는데 이웃집 마실을 갈 때 꼭 간식거리로 챙겨 가곤 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콩고물에 찍어 먹는 쑥떡은 진한 쑥 향과 고소함으로 마음까지 달뜨게 했다.


여름에는 토란대와 고구마대 껍질을 벗기느라 바빴다. 순천은 5일 장이 서는데 할머니는 아랫장과 웃장에 토란대와 고구마대를 팔러 다니셨다.

집에 텃밭이 있었는데 토란과 고구마는 비교적 손이 덜 가 많이 심었던 작물이다. 이것 말고도 가지, 고추, 강낭콩, 감자, 머귀, 호박 등등 수많은 작물이 있었는데 수확 시기가 되면 이것들을 이고 지고 시장에 가서 팔고 오셨다. 오실 때에는 어김없이 분홍 소시지와 계란, 라면을 사 오셨다.

할머니를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에서 그것을 받아 든 나는 어찌나 신이 나던지 덩실덩실 춤을 췄었다.

저녁은 어김없이 라면. 떡국 떡을 넣고 파도 썰어 넣고 계란도 풀어 넣은 라면은 생애 최고의 음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세 가지를 엄청 좋아한다.


시골의 가을은 하루 해가 짧을 정도로 바쁘다.

그에 비해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한가한 때였다. 친구들은 들로 밭으로 어른들을 도우러 가고 없었고 심심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사주셨다.

타지에서 힘들게 일 한 돈으로 본인은 안 입고 안 먹으며 전집이란 전집은 다 사주셨다. 지금도 나오는 웅진 자연과학 전집, 위인전집, 창작동화, 전래동화, 그리스 로마 신화 전집.

궁색했던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게 사치스러웠던 게 책이었다. 나는 책 냄새가 좋았다. 전집의 고급스러운 하드커버도 좋았고 내가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고급스러움이 나에게 스며드는 착각이 일기도 했다.

책도 재미있었지만 이런 책을 읽고 있다는 허세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읽었다. 위인전을 읽으며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창작동화를 읽으며 수많은 상상을 했다.

평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보며 구름의 모양을 살피기도 했다. 코끼리를 닮은 구름도 있었고 사람 형상을 한 구름도 있었다. 고추잠자리가 날고 하늘은 드높고 푸르렀다.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에 살포시 낮잠이 들기도 했다.

평온한 일상이었다.

바쁜 계절을 빼고는 친구들과 참 많이 놀았다.

여름에는 집 앞 강에서 멱을 감았고 메뚜기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고 겨울에는 쌀포대를 썰매 삼아 열심히 썰매를 탔다. 눈도 별로 오지 않는 지역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눈이 쌓이면 비탈에서 그냥 열심히 탔다. 그러다 보면 엉덩이 여기저기 옷이 해져 집에 가서 혼나기 일쑤였다. 흙과 돌로 요리를 하며 소꿉놀이를 했고 배가 고프면 지푸라기를 태워 고구마와 가래떡을 구워 먹었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종이인형 놀이. 뭘 어떻게 하자 정한 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이 놀이가 끝나면 저 놀이가 이어졌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 해가 질 때야 집으로 돌아갔다. 지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추억이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야지 하는 힘이 된다.


꼰대로서 감히 말하고 싶은 건

유년기 때는 실컷 놀았으면 좋겠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자전거를 끌고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를 누비고 놀이터를 점령했으면 좋겠다.

나의 아이들이 이런 추억들을 초콜릿처럼 꺼내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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