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에 대하여

마침표가 아닌 쉼표,

by 유하

입사하고 3-4년은 일을 배우느라, 사회생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음 3-4년은 일 재미에 빠져 나 자신이 없는 시간이었다.

일을 너무 사랑했고 욕심이 많았고 인정받기를 바랐다.

그다음 1-2년은 이제는 소위 전문가가 되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어느덧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을 때 매너리즘에 허우적대다 퇴사를 결정했다.

어느 날 갑자기 ‘톡’ 하고 마침표를 찍었다.

지치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으니 쉬어가는 걸 못하고 끝내버린 것이다.

페이스 조절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었다고 남 탓을 했다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고 자기 위안을 하며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하다 다른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럼에도 슬럼프란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걸 보면 업(業)이 계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지병(持病)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의욕도 없고 자신감도 없다.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다.

출근해서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며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보고서를 만지작대다 끝내는 끝마치지 못하고 퇴근을 한다. 퇴근 후에도 재미있는 일이 없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만난다 해도 부질없는 하소연만 해대다 결국은 더 부정적인 마음을 안고 귀가한다.

아침이 오는 것이 싫고 그것이 두려워 쉬이 잠이 들지 않는다.

일요일 저녁이면 체 한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다 알 것이다. 슬럼프는 주기적으로 오지만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아예 없을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가만히 있어서는 ‘뿅’하고 사라지는 아이는 아니다. 어느 정도 공은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피곤하지 않는 선에서.

사람마다 선호하는 방법이 다를 테니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더군다나 성공한 사람도 아니니 이게 정답이라는 확신도 없다.

다만, 슬럼프에 빠져 마침표를 찍기 직전의 사람이라면,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시길 추천한다.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선다. 일요일 오후 3-4시쯤이 좋겠다.

풍경이 근사하다면 좋겠지만 동네 한 바퀴도 괜찮다.

천천히 걷는다. 하늘을 한 번 쳐다본다. 얼마나 푸른지. 구름이 있다면 무슨 모양인지.

보도블록 틈에 자란 풀이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이 있는지. 꽃이라도 하나 피웠다면 그 풀은 위너 중에 위너다.

새로 생긴 가게가 있는지. 평소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을 가보는 것도 좋다. 익숙한 길이 아닌 우회하는 길은 지금 아니면 안 갈 테니.

2-3시간 걷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간다.

직접 요리하는 건 피곤하고 시켜 먹는 것은 우울할 테니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간다.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이지만 나를 위한 대접이라 생각하자.

적당히 걸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면 기분 좋은 쉼이 아닐는지. 적어도 밥 힘은 얻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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