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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브 Jun 11. 2019

떠날 사람들을 위한 집

#오피스텔의 기억 #김도훈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오피스텔의 기억이 있다. 지정된 기간 내에 졸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숙사에서 쫓겨나면서 첫 자취생활을 반지하에서 시작했다. 반지하라고 해서 기생충을 보듯 불쌍하게 볼 필요는 없다. 스키를 사는데 과외수입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이니까. 같이 살지만 거의 보이지 않던 룸메의 여자 친구가 놀러 올 때만 빼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서울로 와서 복도에 온수 버튼을 공유하던 원룸을 시작으로, 천장이 기울어진 투룸을 지나서, 처음으로 가구 당 한 대 주차공간이 있는 오피스텔로 옮기게 된 것이다. 실은 나는 차가 없어서 주차공간 따위는 필요 없었지만 말이다. 집의 한쪽 벽면은 통째로 유리창이었고 강남대로의 불빛이 화려하게 보이는 야경이 좋았다. 햇볕이 과도하게 잘 들어 누나네에서 하얀 돛 같은 커튼을 떼어 오기 전엔 선탠 샵이 따로 없었다. 다니던 요가학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집을 꾸몄다. 나무 마루 위에 고무나무 화분과 산세베리아 화분을 흰색으로 통일해서 놓고 한가운데에 요가학원에서 특별히 거금을 주고 사온 보라색 요가매트를 폈다. 복층이라 1층엔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깔끔한 그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전에 살던 원룸에 비하면 관리비는 비싸지만, 전기료는 싸서 에어컨은 실컷 틀어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실은 에어컨 바람을 싫어했지만 썰렁하다는 조언에 결국 무릎 꿇고 이케아에서 빨간색 키플란 소파를 하나 사고, 팔걸이 위에 내 소유물 중 가장 비싸다는 이유로 보물 1호가 된 빔프로젝터를 놓고 벽에 쏴서 영화를 틀면 완벽해 보였다.

 누군가는 오피스텔을 모든 게 빌트인 되어있는 떠나기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이 곳에도 오피스텔답게 부엌 찬장 속 냉장고가 숨어있고 그 아래는 드럼식 세탁기가 있었다. 그전에 살던 반지하든, 원룸이든 투룸이든 나는 늘 떠나는데 미련이 없었기에 오피스텔을 딱히 떠나기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는 낯선 곳에 여장을 풀고 조금씩 정리하고 버리는 것이 좋았고 낯설던 감각이 점점 익숙해져서 내 안으로 들어와 익숙해지는 것을 즐겼다.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고층 빌딩에서 산다는 것은 늘 묵직한 베트맨 옷을 입고 다니다가 스판이 좋은 슈퍼맨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새로 입주한 오피스텔의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찾아서 가입했다. 그런데 여기서 번개 모임도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내 또래의 싱글 남녀가 많았고 직업도 다양했다. 만화가, 수의사, 외제차 딜러, 여행사 직원, 백수 등등.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과 같이 영화제에 가기도 하고 스키장도 갔으며 심지어 강남의 무료입장 클럽에도 갔다. 우리에게 그 시절 강남의 클럽은 천천히 걸어가서 주말 무료 드링크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화려한 사람들의 스타일을 구경하는 장소였다. 밤샘 영화제에 갔던 기억도 난다. 코 골며 자다가 옆에 앉은 동행에게 빰을 맞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최소 꿀밤은 맞은 듯하다.

 한 번은 오피스텔 모임에서 술을 마시다가 즉석에서 홈 파티를 기획했다. 사람들 집을 옮겨 다니면서 즉석 파티를 하는 것이다. 마치 대학 시절 기숙사의 오픈 하우스 같은 행사였다. 우리는 살짝 취한 김에 다수가 동의해서 여러 군데 집들을 구경 갔다. 집은 사는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오피스텔이지만 구조가 조금씩 비슷하면서도 달랐고 뷰도 다 틀렸다. 어떤 집은 담배 냄새가 났고, 어떤 집은 고양이 냄새가 났다. 우리 집은 아무 냄새도 안 날 터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긴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져 있냐고 했다. 당황했지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제 절친이 머리가 길어서요"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는 영화제보다는 집에서 혼자 맥주 한 잔과 커다란 요다 헤드폰을 귀에 끼고 보는 옛날 영화가 더 편하고, 스키나 보드는 너무 무겁고 리프트는 무서워서 곤돌라나 타고 올라가서 경치만 보고 내려오는 게 더 좋다. 어둡고 시끄러운 클럽의 담배연기가 싫고 새벽에 좀비가 돼서 첫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그런 클럽에 가느니 독서 클럽에 가서 파트너님이 사주는 뼈 없는 치킨과 맥주가 더 즐거워졌다. 솔직이 이 모든 게 정신승리(?) 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 정신 로직은 너무나 잘 구현되어 현실을 최고라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동네가 가장 살기 좋다고 생각하듯이. 실은 그냥 익숙해졌을 뿐인데.

 결혼을 하면서 오피스텔을 떠났다. 강남역을 지날 때면 그 시절이 가끔 생각이 난다. 그립거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물을 너무 많이 준 나머지 산세 배리아는 토막 살인해서 버려야 했지만, 요가 컨셉으로 샀던 고무나무는 씩씩하게 넓은 아파트 베란다에도 잘 적응해서 잘 살고 있다. 산세베리아가 자랐었고 다음엔 파키라가 자라다 죽은 텅 빈 화분을 보며 줄기가 비어있다는 공심채를 길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벌레를 잡더라도 결국 우리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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