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활동가의 삶이란?
요즘에 찍은 디지털 사진은 구글 포토에 모두 올리고 있다. 나중에 인물 검색이나 지역으로 사진을 찾는데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프린트를 위해서는 해상도가 중요하니 원본을 따로 저장해 두는 불편함이 있긴 하다. 가끔 여행지마다 사진집을 만든다. 이것도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일주일 정도 다녀온 여행을 한 권의 책으로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진집이 아니라 책이 되려면 글이 필요한데 거기서 막힌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한다. "그래, 이건 불가능해. 디지털 유목민처럼 해외에 가서 몇 달을 살다 온다면 몰라도."
그런데 <도쿄의 디테일>은 그걸 해냈다. 이 책은 4박 5일 동안 도쿄를 여행하며 기록했던 발견과 영감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전문 여행 작가도 아니고 도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도 아니다. 마케터 출신 다운 꼼꼼한 눈으로 기획자나 디자이너까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멋진 책을 완성한 것이 놀라웠다. 나만의 강점은 뭘까? 엔지니어의 눈으로 살펴본 일본 아키하바라 탐험기 정도? 차라리 도쿄 클럽 투어가 더 재밌겠다.
작가가 꿈꾸는 '기록 활동가' 란 개념이 공감이 갔다. 구글 글래스 같은 것을 쓰고 나의 일상을 모두 자동 기록하고 언제든지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 상상하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는 말하지 않았나 "상상력이란 기억이다"라고. 영화 <스트레인지 데이즈>에 나오는 스퀴드라 불리는 오감을 저장하는 기계가 나오면 나는 그걸 쓰고 다니면서 일상을 보존하고 싶다. 영화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보여주었지만. 나는 과거의 잃어버린 나와 다시 만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인생의 걸린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과거의 나에게 어떤 결정을 내릴지 물어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 일본을 일주한 적이 있다.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서 벳부 온천을 들려서 오사카, 도쿄를 지나 삿포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도쿄에서 모리타워에 갔던 기억이 난다. 빌딩 앞의 잘 꾸며진 정원을 구경하고 비싼 카레를 먹고 나왔을 뿐 큰 감흥은 없었다. 그때는 아카데미 힐스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여행을 가서 나를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고 야경까지 즐길 수 있는 아카데미 힐스 같은 색다른 곳에 가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하나라도 더 보려고 명동과 비슷한 일본의 번화가를 뒤지고 맛집을 찾아다녔던 내가 생각난다. 여행을 가는 것은 낯섦 속에서 나만의 아이디어를 찾고 떠올리는 것이리라. 작가는 그런 면에서 일본의 디테일한 부분을 잘 잡아 냈고 잘 정리했으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더구나 책의 장정도 아주 튼튼했고 특이해서 맘에 들었고 (제작비가 좀... 들었을 듯?) 책이란 첫 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읽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 듯이 아이디어를 마케터, 기획자, 디자이너로 나누어서 목차까지 제공하고 있다. 다음번에 여행을 떠날 때는 나도 한번 나만의 아이디어를 찾아보고 책은 못 내더라도 브런치에 글 정도는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