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을 읽고
나는 고교시절을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도시에서 보냈다. 시내 중앙에 커다란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중앙도서관을 줄여서 중도라 불렀다. 독서실을 싫어해서 공부하려면 거기로 가야 했다. 주말이면 새벽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열람실에 자리가 났다. 겨울의 해뜨기 전 추운 새벽이 기억난다. 나름 일찍 일어나 6시경 도서관에 도착했는데 여학생 줄이 엄청났다. 반면 남학생은 줄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그런 도서관에서의 남녀 간의 벽이 대부분 없어졌으니 더 좋아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엔 여학생들의 자리가 적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고 여자들이 더 부지런하고 더 열심이라고만 생각했다. 뭐가 팩트인지는 모르겠다.
새벽에 도서관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면 안도감과 함께 졸음이 쏟아졌다. 곧잘 엎드려 자곤 했는데 일어나면 개운했다. 도서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나를 충전하는 행위 같았다. 도서관의 따뜻함과 공기를 빨아들이며 내 몸은 도서관의 일부가 되어갔다. 나와 도서관의 경계가 내 피부가 아니라 끊어지지 않은 연속된 것이 되며 도서관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눈을 뜨면서 침을 닦으면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뭔가 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잉여력이 차올랐다. 이렇게 공부를 시작하면 목마른 낙타처럼 책의 내용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좋았다.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고, 나중에는 평일에도 도서관에 갔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저녁으로 도서관 지하의 우동이나 도서관 가는 길에 장국밥을 먹고 도서관에 도착하면 어두워져서 저녁 8시가 된다. 도서관은 10시에 문을 닫기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시간이 짧기에 오히려 나에게 의미와 동기를 주었다. 독서실처럼 12시에 문을 닫는다면 그렇게 긴장되지 않을 것이다. 10시가 울리는 노랫소리가 나면 도서관을 문을 닫는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열심히 해도 그 멜로디는 나에게 뿌듯함과 함께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아쉬움을 주곤 했다.
고교시절 도서관이 매일 가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렸던 장소였다면 대학 도서관은 집을 대체하는 곳이였다. 집을 처음으로 떠나면서 만난 대학 도서관은 책 보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나는 독서실 같은 1층의 칸막이 있는 방보다는 넓게 트여 있는 2층을 좋아했다. 일층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하얀 벽에는 커다랗게 세 가지 영어 단어가 금박을 두른 채 쓰여있었다. 그중 내 눈을 사로잡는 단어는 Integrity란 단어였는데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당시 수학 미적분 숙제에 짓눌려 있었기에 integral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Integrity의 뜻은 자기모순이 없이 그 자체로 완전한 진실함을 의미했다. 그 시절에는 미처 잘 알지 못했지만 나는 모순된 존재 그 자체였다.
시험 기간이 아닌 도서관은 사람이 별로 없다. 정확히는 책은 있지만 사람은 없다. 특이하게 도서관 열람실은 24시간 운영했는데 책으로 자리만 잡아두는 경우가 많아서 아침에 책을 치워서 바닥에 모아 놓기도 했다. 도서관은 숙제를 하거나, 퀴즈 등 시험 준비를 하는 곳이지만 나는 항상 도서관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곳에선 주로 책을 읽는다. 그때의 습관이 남아 있는지 지금도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서 책꽂이에 쌓아 둔다. 물론 빌린 책을 차례로 공부하듯 읽지는 않았다. 빌린 여러 권 중 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무작위로 읽다가 다시 꽃아 두곤 했다. 나는 늘 도서관에 있는 학생이었지만, 공부를 하진 않았다. 파인만의 피직스 같은 멋있어보이는 책을 놓아뒀지만 물리 숙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현대 서울은 둘레길과 작은 도서관이 많은 도시가 되었다. 지금도 도서관에 가는 게 좋다. 은퇴하면 전국의 모든 도서관을 탐방하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한옥 도서관에서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까지 모두 다 말이다. 우리나라 도서관을 다 돌고 나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에 가볼 수도 있겠다. 요즘 도서관에 가보면 나이 드신 분들이 두꺼운 책을 돋보기로 보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은퇴하면 그렇게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싶다. 어른이 되기 전 학생의 시간을 25년으로 치고 내가 60세까지 일한다고 가정하면 35년을 일하는 게 된다. 은퇴 후 20년은 도서관으로 출퇴근할 수 있지 않을까? 죽기 전 까지 규칙적으로 짜인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고 욕망에 굴복하던 35년의 시간보다 돈에 그림자나 영혼을 팔지 않으며 단순한 삶을 살며 나의 과거를 만나고 정리하는 20년의 시간이 더 기대가 된다. 그때는 어리석은 욕망에 종속되지 않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때는 모순되지 않는 존재에 한 발 더 가까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