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투어는 구시가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시작했다. 수염을 기르고 말총머리를 한 현지인 가이드는 양손을 휘저으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 언덕에서 기도를 드렸고, 저 길을 지나 저 문으로 들어갔고, 기타 등등.
설명이 귀에 박히지 않은 건 종교에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가이드의 영어가 살짝 미숙했기 때문도 아니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혔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자꾸만 물건을 들이밀며 귀찮게 굴던 장사꾼에게서 머리를 가리는 천을 샀다.
탈리트(טַלִּית, tallit)라는 이름의 이 천은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머리에 덮어쓰는 천이다. 외부를 차단해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의 빛과 열을 차단하는 게 목적이었고, 효과는 훌륭했다.
언덕을 내려와 통곡의 벽으로 향했다. 강렬한 이름 덕에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이 벽은 고대에 지은 신전의 잔해다. 그토록 긴 시간이 흘렀건만,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신전의 재건을 바란다고 한다.
하나의 큰 벽임에도 남자와 여자는 울 수 있는 공간이 달랐다. 중앙 울타리를 기준으로 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만 출입할 수 있다. 또한 남자들은 머리에 모자를 써야만 접근이 허용됐다. 모자가 없으면 현장에서 키파(כיפה, kippah)를 빌려 쓸 수 있다.
잠깐 벽에 손이라도 대볼까 했다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생각을 접었다. 어쭙잖은 이방인의 호기심은 발길은 돌리면 곧바로 사라질 만큼 가벼웠다. 모두가 우는 곳에서는, 울지 않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기 마련이다.
2.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기독교인 구역,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 무슬림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는 통곡의 벽을 오른쪽에 두고 직진해 유대인 구역으로 들어갔다. 흙벽돌로 지은 건물들로 빼곡해 옛 도시에 들어온 느낌이 물씬 난다.
구시가지를 걷는 동안 기념품 가게가 너무 많아서 놀랐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개발이 극도로 제한된 예루살렘에서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수입원은 관광업일 테니 말이다. 남대문 시장을 지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양쪽의 모든 건물이 기념품 가게인 골목도 있다.
가게 수는 많았으나 파는 물건들은 엇비슷했다. 공장에서 도매로 떼온 듯한 자잘한 장신구, 화려한 접시, 촛대, 장식 천, 성경 등을 팔았다. 작은 십자가상을 집어 들자 바닥에 ‘메이드 인 차이나’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일행 중 중국인 친구에게 보여주니 씩 웃어 보였다.
삐까 삐까!
모자며 티셔츠처럼 막 구매하기 좋은 상품들도 있었다. 단연 압권은 피카츄 캐릭터에 랍비들이 쓰는 중절모와 수염을 더한 ‘피카쥬’ 티셔츠. 발상이 귀여워 한 개쯤 사 올까 하다가 밖에 입고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신기한 상품 중에는 작은 병에 든 예루살렘의 물, 예루살렘의 흙도 있었다. 이 무슨 이스라엘판 봉이 김선달인가 싶지만, 꽤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며칠 후 출국길에 보니 벤구리온 국제공항 내 기념품 가게에서도 같은 상품을 잔뜩 팔고 있었다.
사실 기념품보다 더 인상적인 건 도시 곳곳에 있는 총 든 군인들이었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세 종교의 발원지이자, 이스라엘의 정신적 구심점인 예루살렘이다. 테러 위협에 대비해 군인들이 곳곳에 상주하고 있다. 이곳에선 실제로 잊을만하면 폭탄 테러가 한 번씩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셈이다.
그중 한 명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수락했다. 가까이서 대화해 보니 무서운 군인 아저씨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어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수줍은 듯 미소 띤 얼굴로, 그는 내 휴대폰 속 사진첩에 남았다.
3.
예루살렘 투어의 정점은 기독교인 구역 한복판의 성묘 교회다. 전 세계 기독교인, 유대인, 오리엔트 정교회 신도들이 신성시하는 공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혔으며, 또한 부활한 장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곳을 처음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은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다. 예수의 무덤은 서기 325년에 발견되었고,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곳에 성당 건설을 명했다. 이후 성모 교회는 기독교인들의 대표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구시가지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듯, 성모 교회도 관할 구역이 나뉘어 있다. 복수의 기독교 종파를 포함, 워낙 여러 종교가 소유권을 주장한 탓에 결판이 안 났단다. 결국 1852년,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이 기독교 종파별로 성묘교회의 구역을 할당했다.
무슬림들이 성모 교회를 구획한 것도 아이러니한데, 더 큰 아이러니는 종교 갈등 때문에 성스러운 장소가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다. 낡은 부분을 보수하려 해도 다른 종파 구역에 걸쳐 있어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파한 예수가 부활한 자리에서 그를 믿는 종교들이 반목하고 있다니. 예수가 이 광경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성묘 교회 안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성유석이 놓인 공간이다. 성유석은 널찍한 붉은색 대리석 판으로, 여기에 예수의 시체를 눕히고 향유를 바른 뒤 염을 했다고 한다. 그 위에는 빨강 십자가가 그려진 거대한 등잔이 늘어뜨려져 있고, 네 귀퉁이에는 황금 촛대에 커다란 양초가 꽂혀있다.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감도는 데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 말소리를 낮추게 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사실 ‘예수의 시신을 염한 성스러운 돌판이 있다’는 전승은 십자군 전쟁 이후 생겨났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의 성유석은 1810년에 들였으니, 예수가 실제로 그 돌 위에 누웠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사제들은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신도들은 성유석에 손을 올리고 예수의 고통에 공감한다.
나와 투어를 같이 간 아르헨티나 친구 M도 눈물을 흘리며 성유석에 입을 맞추고 짧게 기도했다. 신앙심이 깊은 친구인 건 알고 있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세속화된 사회에 사는 세속적인 나는 종교의 힘과 영향력을 까먹곤 한다.
4.
예루살렘 증후군(Jerusalem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다. 기독교나 유대교 신도가 예루살렘 방문을 계기로 종교에 대한 강박적 사고나 망상에 시달리는 증후군이다. 1930년대에 예루살렘의 정신병리학자 하인츠 허먼이 처음으로 이러한 증상을 임상 기록으로 남겼는데, 증세가 심각한 환자는 자신이 성경 속 인물이라고 믿기도 한다.
원인도 증상도 규정하기 모호한 이 증후군은 학자들의 반박에 직면했고, 정신의학계에서 정식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방문 후 격렬한 감정을 호소하는 이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도시 괴담 같은 이야기지만, 그만큼 이 도시에서 강렬한 종교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거다. 다행히 이 ‘증후군’은 질환자가 예루살렘을 벗어나면 수일 내로 자연치유(!) 된다고 한다.
기독교라는 종교와 그 역사는 평생 나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을 뿐 믿음의 대상이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혹은 그래서, 가끔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뭔가 ‘믿을 구석’을 가진 사람들 같아서. 통곡의 벽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고, 성유석에서 우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티칸, 로마의 카타콤, 파리의 노트르담, 스페인 몬세라트 등 유명한 성당이나 기독교 성지들을 여러 곳 가봤다. 종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는 극단적으로 말해 수많은 관광지 중 한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부를 둘러보고 사진이나 좀 찍으면 그만인 장소일 뿐이었다.
하지만 예루살렘 투어를 마치고 떠나면서 느낀 감정은 좀 더 복잡하고도 강렬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닌 내 친구가 울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공간에 켜켜이 쌓인 역사에 압도당해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현대의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을 방문한 게 아니라, 예루살렘이 나를 고대로 타임 리프시킨 느낌이었달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내가 밟은 그 흙을 바로 어제 밟았을 것만 같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드리고 골고다 언덕에 올랐을 것만 같았다. ‘역사를 조금은 반영한 허구’로 여겼던 성경 속 이야기들이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예루살렘 증후군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