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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Aug 05. 2020

피정 다녀왔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시련의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다

(글 도입에 신앙적인 이야기가 있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피정에 다녀왔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휴대폰도 반납한 채 침묵으로 온전히 나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보고, 그 누구도 아닌 오직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치유되는 시간이었다. 매번 지금의 시련을 통해 그 분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려는 길이 무엇일지, 은총이 무엇일지 감히 머리로 이해하려 하였다. 그리고 내가 아닌, 그 분 뜻대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나보다 더 힘들고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있으니 이 정도 시련은 당연히 참고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해보았고, 내가 그 분께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느냐고 따졌을 때 벌을 받을까봐 두렵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내가 머리로 이해하려는 노력일 뿐, 진짜 내 감정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번 피정 기간 중에는 정말 원없이 울며 따지고 들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냐고, 왜 그 누구도 아닌 우리여야만 했냐고, 왜 5월에 깨끗하게 정리하게 하시지 않으셨냐고 따졌다. 우리는 그동안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만나 함께 봉사했고, 매 주일 미사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함께 기도했고, 곧 그 분 보시기에 좋은 성가정을 이룰 예정이었는데, 그걸 모르실리 없는 분께서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따졌다. 그리고 나는 너무 비참하고 괴로워서 이렇게 만든 그를 절대 용서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고통스러웠으면 좋겠고, 그 사람때문에 벌어진 이 모든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나라고, 죽을만큼 그 사람이 밉고, 그러다가 또 보고싶고, 그래서 자꾸만 미련이 생긴다고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을 그분 앞에 펼쳐보였다.


모두가 잘 했다며 인간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며 더 좋은 사람 만날거라고 하는 위로처럼 건네는 말들도, 아니 내 머릿속에서도 이성적으로 절대, 두 번 다시 그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면 안된 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너무 보고싶고, 당장이라도 그에게 연락해 그의 품에서 펑펑 울고 싶다고, 그렇게 하면 다시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갈 것만 같다고 애원하며 통곡했다.


그렇게 그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해, 오직 나의 감정을 그 분께 바치며 기도하자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경험을 했다. 여전히 내 마음은 시끄럽고, 여전히 내 감정은 시시각각 변화하지만, 나는 이제 전만큼 그 감정이 두렵지 않아졌다. 당장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할 것 같았고, 그래서 오늘을 살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 괴로웠던 내가, 이제는 이 모든 순간의 감정을 털어놓을 하느님이 늘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면담하며 내 안부를 물으셨던 수녀님과, 눈물로 고해드리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함께 아파하고, 축복기도를 해주시던 신부님,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경당에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에게 티슈를 건네던, 돌아오는 길 역까지 함께 타고온 택시비를 막내같아 보이는데 내지말라며 도로 손에 쥐어주던 함께한 피정자들. 이 모든 사람들과의 시간 안에서 우리는 함께 치유됨을 느꼈다.


그러면서 어느새 하나 둘 늘어난 내 브런치 구독자들도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이 절절한 감정을 어디 털어놓을데가 없어 쓰기 시작했던 글들에 진심어린 위로와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는 많은 분들이 떠올랐다. 이름도 사는 곳도, 성별도 나이도 어느 것 하나 모르지만 오직 글 하나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또 어려울 수 있는 서로의 사연과 경험들을 함께 나누어주는 그들 덕분에 나는 내 인생 가장 길었던 일주일을 내 나름대로 잘, 그리고 씩씩하게 보낼 수 있었다. 시시콜콜하고, 어쩌면 점심 시간 직장 동료와 나눌 법한 가볍지만 쇼킹한 가십 정도의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지난 날의 일들을 생각하게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아픔을 떠올리며 공감하게 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 또한 글이 주는 묵직한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모두가 순탄하고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우리는 각자의 방법들로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그러면서 성장하고, 또 다른 시련으로 아파하기도 한다. 결코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을 그 시련의 순간들이 원망스럽고, 죽을만큼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내가 더 단단해질 것을 믿기로 했다. 나의 글에 용기를 내어 적어준 댓글들이 나에게 그럴 것이라 위로했고, 그들이 내게 말해준 경험들이 그러했다.


나는 여전히 아프다. 여전히 지금의 시간을 건너뛰고 미래의 어느 한 중간으로 가고 싶다. 이 글을 마치고 누워 침대에서 곧바로 몰려오는 좌절감과 쏟아지는 슬픔에 또다시 밤을 지새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너무 천천히 흘러가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분명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의 상처도 서서히 아물 것이라는 것을.

아름답고 고요했던 피정의 집 내 방 풍경
p.s 다시 한 번 볼품없는, 그다지 유익한 글도, 위로의 글도 아닌 제 글을 보고 응원과 위로를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유입경로를 보면 신혼집에서 불륜/바람 등등 단순히 가십이나 시간 떼우기 용으로 제 일상이 궁금해서 오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기에! 부끄럽지만 한 번은 꼭 감사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ㅎㅎ)

피정 이후 휴대폰을 최대한 멀리 하고 있어 수시로 댓글을 확인하지 않지만, 저녁시간에, 점심시간에 컴퓨터로 확인 중이랍니다. ㅎㅎ 틈나는대로 댓글에 답을 달고 싶은데 휴대폰에서는 답글달 아이디 지정이 되는데 컴퓨터로는 안되어서 폰으로 써야지, 하면서 미루게 되네요. 컴퓨터로! 댓글에 답글 다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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