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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밤 Oct 18. 2017

지극히 주관적인 루브르 탐방기

파리 감상기록 01






<파리여행 첫날, 루브르 미술관

(Musee de Louvre)>

2016년 02월 13일

 










  겨울 파리는 아침부터 흐렸고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그렇게 춥진 않았다. 유럽은 겨울이어도 쉽게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진 않는다고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파리 치안이 좋지 않다는 소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럼 너무 무서우니까 첫날은 안전한 루브르 박물관을 가고, 거기에다가 한국인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자!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결정 아주 칭찬한다. 마이리얼트립 파리 루브르 가이드투어를 이용했던 기억. 인 당 3-5만원 대였나? 아무튼 먼 타지에서 같은 한국인과 첫 여행을 시작한게 파리에 대한 경계심을 더 쉽게 풀어주지 않았나 싶다. 사진에 찍힌 장소는 루브르 미술관 근처 공터다.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나 이거 알아 동네 화방 앞에서 봤어(...) 어느날, 정말 어느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준비물을 책임지는 우리 동네 화방 앞에 탄탄한 구릿빛 몸매를 드러낸 분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렇다. 짝퉁 아프로디테 동상 말이다. 야자가 끝나고 어두운 밤에 그 분 앞을 지나가고 있자면 커다란 키와 무심한 표정이 약간 섬뜩한 기분을 들게도 했지만, 그 분은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친절히 은밀한 암호가 되어주었다. ‘야 그 분 앞에서 모여.’ (석식도 먹었으니 야자째고 저녁 산책을 하자는 신호다.)


  그렇게 내가 대학생이 되고 그 분이 사실 아프로디테 여신이었으며 밀로의 비너스라고 불리고 파리에 진퉁이 있다더라-하는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과연 화방 아프로디테와 실제 루브르 아프로디테는 얼마나 다를까? 정말 더 잘 만들어졌을까?’ 하는게 내 소소한 궁금증이자 즐거움이었다. 파리와 루브르라는 장소의 의미 때문에 더 기대치가 증폭된 것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막상 실제로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똑같이 키가 크고, 똑같이 선이 아름다웠다. 다른게 있다면 화방 아프로디테는 구리 재질이라 10년 세월에 검정색이 돼버렸는데 루브르 아프로디테는 앞으로 백 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을 것처럼 여전히 뿌옇게 분이 일어나는 석회석 재질이라는거? 재질만 달랐다 뿐이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할 겨를이 없어보이는건 두 아프로디테 모두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술이나 문화재라는게 대체 뭘까 싶었다. 더 가까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게 오히려 예술 아닌가, 하는 그런.






<승리의 여신 니케>


 니케 동상은 전쟁으로 출항한 전투용 함선 앞머리에 달려있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배 부분에 배꼽이 살짝 보이는데, 천이 얇은 재질이기도 했거니와 함선이 바다를 가를 때 날아드는 바닷물에 젖어서 살이 비치는 거라고 했다. 발굴 당시에도 두 팔과 얼굴이 날아간 (...) 모습이었는데, 팔 각도 틀어진 걸로 추측컨대 팔을 높게 치켜들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부르짖는 모습 아니었을까 싶다. 바람에 휘날려 다리에 척척 감기는 옷감 재질 표현이나 깃털이 겹겹이 나있는 날개 디테일이 엄청나서 계속 주위를 빙빙 돌며 구경했다. 밥 먹고 조각만 했겠지 옛날 사람들... 이 동상이 놓여있는 곳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중앙 통로 같은 곳이었다. 공기가 잘 통하고 채광이 잘 들어서 잠깐 쉬며 앉아있자니 북적거리는 인파에도 기분이 참 좋았다.


빛과 그림자로 형성되는 공간의 깊이감.








<나폴레옹 대위식>





나폴레옹 황제 대위식 장면을 그린 대형 유화 그림.

뮤지컬 나폴레옹에서 Sweet Victory Divine이라는 넘버 명으로 그려진, 바로 그 장면.

(관련 영상 링크: https://youtu.be/QkhGp7wQ05s?t=20s)

나폴레옹 치고 키가 크다는 한지상




이게 얼마나 크냐면 진짜 크다.


 가로가 10m라고 하니 얼마나 큰 지 알만하잖아? (feat.아가씨) 반대편 벽에 가서 서도 카메라 뷰파인더에 그림 전체를 다 못 담았던 기억이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그렸겠지? 나같으면 아래에 쓴 물감 색깔 기억 못해서 위에 다른 색깔로 칠했을 것 같은데... 다비드는 천재 화가였으니까 그럴리가 없겠지! 저 장면은 약간 연출이 가미되어 새롭게 그려진 장면이다. 원래 대위식에서는 나폴레옹이 왕관을 뺏어서 자기 머리에 직접 써서 주변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후에 역사적인 장면이니 그림으로 그려라~ 는 명이 떨어지자 다비드가 대체 그걸 어떻게 옮겨야 할까 원래대로 그리면 프랑스의 황제가 너무 격식 떨어져 보일텐데 하면서 엄청 고민하다가, 나폴레옹의 권위도 높이고 여왕으로서의 조세핀도 부각할 겸 마치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것처럼 바꿨다고 한다.



<모나리자>
<를 보러온 사람들>


 드디어 본 모나리자. 실물 모나리자. 매번 교과서에서만 보던 모나리자. 실제로 보니까 엄청 작았다. 한 20인치 정도 되려나? 유명한 명성만큼이나 다른 관에 비해 관람객들이 엄청 많았다. 딱 들어서자마자 사람 온도가 확 느껴져서 약간 꿉꿉했었다. 모나리자 그림의 가이드라인은 다른 작품에 비해 굉장히 이중 삼중으로 철저하다. 예전에 도난당했던 전적 때문이겠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끈으로 가이드라인 쳐놓고, 거기에 나무 원형 가이드라인 또 세워놓고, 거기에 또 끈 둘러놓고.


처음엔 아주 순진한 생각으로 저 인파의 맨 뒤에 서있으면 내 차례가 오겠지 했는데 웬걸, 갈수록 옆에서 치고 들어온 사람 때문에 나는 더더욱 뒷걸음질 쳤다. 가까이도 못 가보겠다 싶어서 대충 요리조리 파고들어 아주 잠깐 보고 나왔다. 와중에 또 모나리자와 셀카 한 장은 꼭 찍어야겠다는 의무감에 몸 돌려서 다른 관람객들과 마주본 채 어색하게 셀카 찍고...그림을 보려고 간건데 모나리자를 보러온 관람객들만 보고 왔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실망이 더 컸다. 잘 안보였고 생각보다 인상깊지 않아서...





이 그림은 사실 작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저 빛이 비친 것처럼 보이는 밝은 부분이 사실은 빛이 들어온 게 아니라 저 부분만 강조한다고 처음부터 명암 조절해서 저 부분만 밝게 그려놓은거고 그 소리를 들은 나는 이야 역시 옛날 사람들 진짜 장난 없다 그럼 이런 변태스러움은 남겨야지 하면서 찍어온 것만 같은 기억이 남아있다.


아님 말고 이다.











 회화 작품만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왕족이 사용했던 보석과 장신구도 정성스럽게 모셔놔서 눈이 즐거웠다. 그러니까 저게 지금 큐빅이나 팟츠가 아니라 정말 보석 정말 진주라는 거잖아요? 정말 왕족 할 맛 났겠네요. 태어나고 보니 왕족이고 저런 것도 공짜로 씌워주고 만약 내가 저시대 왕족으로 태어났다라면 아 다들 왕족을 안 한다면 대체 무얼 한단 말인가 라는 행복한빻은 탄식을 해대면서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천세만세 살다가 죽었겠다.



<빛과 그림자로 형성되는 공간의 깊이감 2>








<헤라클레스>


주물인데 저렇게 유연하게 표현된 옷주름과 사슴 모가지라니...(찰칵), 였던 것 같다.



디테일과 데세랄의 만남










<나폴레옹 5세 초상화>



 나폴레옹 일가의 방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어디든 붉은 공단이 깔려 있고 심지어 소파 팔걸이 한 귀퉁이까지도 화려하게 세공되어있다. 다른 디테일도 디테일이지만 샹들리에의 갯수와 그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반짝거리는 옷과 보석을 온 몸에 휘감고 반짝거리는 샹들리에 빛을 온 몸으로 쬐는건 어떤 기분일까. 막 스스로 특별하고 고귀한 사람인 것 처럼 느껴졌겠지. 저 당시만 해도 그저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아와서 프랑스 역사에 대해 공부할수록 아 이러니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만도...라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영화 향수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19세기 파리는 참으로 더럽고 온통 오물에 땟국물이 흐르는 도시였는데, 그게 단지 파리 시민들이 무지몽매해서가 아니라 왕족과 귀족들이 부귀를 누리느라 그들의 복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노래 샨들리에가 생각나네.

(https://youtu.be/2vjPBrBU-TM song by. sia)






*



  

 요즘도 종종 루브르에서 찍어온 작품 사진을 꺼내보면서 그 때 가이드에게 들었던 작품에 얽힌 배경이나 역사적 이야기를 회상한다. 신기한건 다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내가 공부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새롭게 이해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여행 초반에 기초 지식을 쌓아놓으니 나머지 일정을 여행하면서 '아 이거 그거였는데' '그 설명이 바로 이걸 뜻하는거였구나' 머릿속에서 개별적으로 떠다니던 정보가 하나로 묶이는 순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루브르 미술관에서 '나폴레옹 5세가 파리 개조 사업을 벌였고, 지금과 같은 파리 시가지 형태가 구축되었다.'는 설명을 들은 후 개선문과 노트르담 성당에 올라가서 파리 도심을 내려다 봤을 때 더욱 깊게 와닿았다. 단순히 '야경 이쁘다!'가 아니라 '이게 19세기부터 형성됐다니!'에 가까운 체득이랄까.


 이후에도 어느 나라든 여행을 가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꼭 들러보려고 노력한다. 내 기준으론 그렇게 다녀온 여행이 그렇지 않았던 여행보다 훨씬 뜻깊게 남는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해당 국가의 문화와 역사를 가장 빠르고 함축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장소라서 그런걸까. 하지만 여기에도 조심해야 할 맹점이 있다. 후대는 기득권에 의해 선택적으로 기록된 포식자의 역사를 공부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화재가 화려하고 잘 만들어졌다고 해서 문화 수준이 그만큼 평균적으로 월등하다고 맹신해선 안된다. 누구나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주고 가감없는 진열은 꺼리기 때문이다. 타국의 문화를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니 그만큼 무조건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한발짝 멀리 떨어져서 감상해야 한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박물관 창문으로 보이는 루브르 안 쪽 풍경>


 제일 부러웠던건 정말 유명한 작품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파리 거주민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볼 때였다. 이 글을 쓰다보니 파리에 가고 싶은 욕심이 마구 치솟는다. 하루로는 참 벅찬 크기와 규모였다. 너무 크고 넓어서 정말 발도 못 디디고 돌아온 관이 많다.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느긋하게 작품 한 두가지 감상하고, 거기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도 찾아보는 삶을 살고 싶다. 그걸 차곡차곡 모아서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이렇게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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