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이즈 마인 <2017>
by. Mark Gill / Jack Lowden, Jessica Brown Findelay
2018 07 09
순전히 잭 로우든 때문에 보러 간 영화다. 작년 덩케르크에서 알게 된 이후로 잔잔하게 좋아해왔다. 일단 외모가 너무 잘생겨서 너무 재밌고, 연기를 잘 한다. 하지만 본업이 연극배우에 이제 막 영화배우로 일을 시작한 터라 국내에 개봉할 만한 필모그래피가 없었다. 그가 예전에 주연으로 상연했던 연극 고스트 라이브 영상이나 찾아보면서 아, 한글 자막 붙은 로우든 영화 보고 싶단 소리를 자작 자작하게 앓아 왔다. 그러다가 스티븐 모리세이 역을 맡아 연기한 잉글랜드 이즈 마인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한국에도 개봉할 것인가, 프랑스에서는 개봉하던데, 하면서 마음 졸였던 기억이 있다. 한 해가 지나며 거의 포기했었지만. 그러다가 올해 초, 싸이더스에서 정식 수입해 단독 개봉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디데이 카운팅에 들어갔다. 세상 좋아졌다! 한글 자막 붙은 잭 로우든 영화라니!
스티븐 모리세이? 모른다. 더 스미스? 모른다. 처음에도 말했듯 순전히 잭 로우든 때문에 보러 간 영화다. 그가 얼마나 잘생겼고, 얼마나 연기를 잘 하는지 보러 간 거다. 하지만 1시간 45분 남짓한 상영 시간이 끝난 후 상영관을 나오면서 스티븐 모리세이와 더 스미스 음악을 찾아보고 있다. 저만큼 자기 세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인고한 사람의 음악이라면 들어도 상처받지 않겠지 하는, 구불거리는 머리 휘날리는 스티븐 식의 자만을 기반으로 한 생각이다. 영화는 서사와 미장센을 적절히 섞어 지루한 듯 묘하게 흡입력 있는 분위기를 띈다. 솔직히 스티븐 모리세이나 잭 로우든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재밌을 거라고 보장하진 못한다. 하지만 어떤 개인의 내면이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자라나는 인고의 과정을 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한다. 다채롭진 않지만 볼 만한 가치는 있다. 만약 자신이 자타 공인 내성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거나 한 번이라도 음악과 글을 쓰려고 노력해봤고 그래서 성공했든 실패했든 간에 본인만의 경험담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봐보면 좋을 만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본인 이상은 높은데 어딘가 현실감각은 떨어지고 그래서 세상에 착 들러붙지 못한 채 바깥을 맴돌며 분리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엄청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남들과 다른 감각과 내면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인지하긴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아예 드러내 놓을 정도로 확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은 아닌 사람들 말이다. 썩히자니 아깝고 피워내자니 너무 힘들다. 보기엔 나보다 좀 더 어설픈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뭘 잘도 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는 하나를 해내기도 어렵지?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그냥 한 번 깨 부딪혀 보라고, 시도라도 해보라고 부추기는데 그러자니 너무 무모한 것 같다. 수십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좀 더 갈고닦아서, 내가 느끼기에 완성 딱 됐을 때, 흠도 잡을 수 없는 완성본을 갖고서 세상에 나갈 거야. 모두가 나에게 박수를 보내겠지, 천재성에 감탄하면서 말이야. 그런 사람들에겐 스티븐처럼 내가 실패할 거란 생각은 않는다. 왜냐면 준비성이 철저한 내가 완전 열심히 준비한 거니까. '내 사전엔 A라는 단어밖에 없어.' 스티븐이 '플랜 B는 뭐냐'고 질문한 누나에게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한 이유도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실패해서 깨어지면 너무 심하게 깨져 버린다. 7주간을 방 안에 틀어박혀 온갖 빛을 차단한 채 누워 지낸 스티븐은 정확한 병명은 나오질 않았지만 추측건대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기르던 머리를 자르고 비를 맞으며 철로를 걸어도 보고 검게 소용돌이치는 물을 한참이나 바라보기도 하고 자길 걱정하는 모두의 마음을 귓등으로 들어보기도 하지만 이 모든 우울은 진정제 세 알로도 진정되지 않는다. 홀로 극복해내야 할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대신하지 못한다. 이겨내는건 본인만의 몫이다. 스티븐은 영리하므로 몰랐을 리 없다. 홀로 하는 독백에서도 드러난다. '삶은 버텨내기에 지루하고 따분하다', 하지만 '이 모든 실패를 극복하고 승리의 깃발을 휘두를 것인가'?
스티븐의 방은 본인에겐 아지트였다. 외부 세상에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이자 피난처와도 같다. 좋아하는 신문기사와 책, 엘피판, 카세트 테이프 등등, 벽 구석구석에 쌓아둔 건 아무도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도록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내면을 반증하는 물건들이었다. 린더가 무슨 박물관 같다고 말하듯이 스티븐은 온갖 지식들로 자신 공간을 가득 채워놓은 채 거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외골수가 되는 지름길을 걸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후반부에 그가 방에 쌓아 두었던 모든 물건을 -벽지는 안 다치게 조심조심- 던지고 부쉈을 때, 묘한 쾌감이 일었다. 카메라가 예전보다는 많이 정돈된 방 안을 비춰줄 땐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그제서야 덜어내는 방법을 배웠다.
덜어낼 수 있는 사람이 성장한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사에 집착해서 잘 풀리는 일은 없다. 집착하면 자꾸 비교한다. 나와 남을,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내 상황과 남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불행해 한다. 될 만한 일도 안되게 만든다. 그렇기에 덜어내는 사람이 탐욕하지 않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부족한 점을 알지만 그것마저 아끼며 조그만 재능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서부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행동한다. 한참 성장의 열병을 앓고 난 이후의 스티븐이 바로 그랬다. 행동하는 법을 몰랐던 스티븐은 생각을 덜어내고 우선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의 어머니가 말해 주었듯이 우린 각자 모두의 고유한 버전이다.
You are the only version of yourself in the existence.
There is no replica of you.
You just have to be who you are.
스티븐은 천천히 유해졌다. 자기가 세상에 대해 깨우친 한 가닥의 현실 감각을 붙잡고 동화되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 보컬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라는 메모보다는 내가 보컬인데 밴드 할 사람? 하는 메모를 붙인다. 항상 다른 사람한테 선택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나도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옮겨온 것이다. 린더의 예술관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거나 남들이 독자 기고란에 남긴 메모에 하나하나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방에 찾아온 조니가 내가 좋아하는 걸 얼마큼 좋아하는지 살펴보는 것처럼, 본인이 가진 재능을 자꾸 평가받고자 노력하기 이전에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고 아끼기 시작했다. 스티븐이 린더 때문에 반강제로 참석당했던 파티에서 그를 양옆에 두고 예술에 대해 토론하던 사람들의 대화가 실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였던 것 같다.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의 의미나 작품성을 고려하고 만들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예술은 본질로서 존재할 뿐이고 의미와 작품성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할 것인가?
로우든이 연기한 스티븐은 대사가 도합 오십 마디 넘나 싶은데 스티븐 본체의 고집스럽고, 자만하고, 확신하고, 깨어지고, 좌절하고, 또 일으켜 살아 나가는 모든 서사가 물 흐르듯 그려진다. 크고 파란 눈을 데굴데굴 굴려가며 이리저리 스티븐이 되어 연기하는데 보통이라면 대답을 해야 할 타이밍에 대답 않고 혼자 입만 삐죽이고 마는 디테일이 좋아서 홀로 웃음을 억눌러야 했다. 코멘터리에 담겼길, 스티븐 연기에 마크 길 감독이 지시하지 않은 로우든 본인의 애드리브가 다수 녹아들어 가 있다고 하던데 확실히 배우 본인의 캐릭터에 대한 확고함과 분석력이 없으면 나오지 않을 법한 인물 고유의 표정, 손짓 등등이 눈에 띈다. 일단 잭 로우든은 누굴 쳐다볼 때 그렇게 고개 홱홱 돌려가며 쳐다보지 않거든...않거든... 심지어 대상을 응시할 때에도 고개 약간 내려서 눈만 치켜뜨는 식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입술을 그렇게 많이 깨물지도 않고 뭘 물어볼 때에도 말 꺼내기 전에 십수 번 생각한 표정으로 말하지 않으니까, 지금 이 문단은 잭 로우든이 연기하는 게 너무 좋다는 식의 간증 문단 정도 되겠다.
하나 더, 내향적 성향의 사람으로 태어나 스티븐 모리세이처럼 높은 이상과 뚝 떨어진 현실 감각을 지녔던 사람으로서 반성하듯 덧붙여 보자면, 모두가 왜 그렇게 나의 행복에 관심을 갖냐는 스티븐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씁쓸했다. 그게 얼마나 복받은 상황인지 모르는구나, 언젠가의 내가 그랬듯이. 세상엔 린다처럼 나보다 훨씬 넓은 지평의 내면을 지녔기에 나랑 너무 잘 맞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만, 크리스틴처럼 나와는 너무 다른 취향과 관심을 가졌지만 날 아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족한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이다. 대체 내 복은 어디에 있냐고 불평불만하기 이전에, 나조차도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매일매일 괴로워하는 마당인데 그런 나를 아끼고 밥 먹었냐고 궁금해하고 기분 축 처지면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내 복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세상을 예민하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흠이 아니라 힘이라고. 두루뭉술 지나칠 수 있는 상황과 감정들을 예민하게 포착해 감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건 하나의 재능이다. 다만 거기에 너무 매몰되어 자만하거나 불행하진 말아야 한다. 처음부터 세상이 환영할 만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떤가. 세상 한구석에 내가 서있을 만한 공간이나 만들어서 거기서부터 찬찬히 넓혀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각자 참 유한한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살아가든 누가 뭐라고 욕할까. 나는 나 자신의 고유한 버전이다. 오리지널이자 리미티드 에디션. 비싼 값을 주고도 팔지 않을 그런 세상 딱 하나밖에 없는 초회 한정판이자 재판매 예정도 없는 유일한 굿즈다. 각자 모두가 그러한 자기 자신을 가졌으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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