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민, 숨 고르기

갈증이 고개를 드는 순간

by 백운

“아까 말했던 곳, 나중에 꼭 같이 가요.”


‘나중에’, ‘꼭’, ‘같이’. 세 단어가 귀 안쪽으로 쿵, 쿵, 쿵 굴러들어 왔다. 단어라기보단 돌덩이였고, 나는 그 낙하음을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들었다. 그전까진 자제하며, 정확히는 자제하는 척하며, 태도를 단정하게 붙들고 있었는데, 그 문장 하나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물쇠를 잡고 있던 손이 “그래, 오늘은 이쯤 하자” 하고 슬쩍 풀리는 느낌.


마음은 어느새 울타리를 훌쩍 넘고 있었다. “야, 거기 넘어가면 안 돼” 하고 외치던 내 안의 경비원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또, 갈증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갈증은 늘 이렇게 온다. 선언문처럼 당당하게 오지 않는다. “나 지금 외로워” 같은 직설도 아니고, “나 지금 사랑이 필요해” 같은 정직한 문장도 아니다. 그냥 문장 하나로 온다. “같이 가요” 같은 사소한 제안으로, 내 일상의 고요에 바위를 툭 던진다.


그리고 흔들린 뒤에야 알게 된다. 내가 단속하려고 세워둔 마음의 울타리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허술했는지. 바람만 불어도 삐걱거리던 게, 사실은 바람 탓이 아니라 울타리 탓이었구나.


나는 늘 이런 식으로 들킨다. 괜찮은 척, 여유 있는 척, “흔들림 없는 사람”인 척하다가도 ‘같이’라는 단어 앞에서 금세 숨겨둔 얼굴이 고개를 든다. 평정은 선택한 태도였고, 갈증은 숨겨둔 사실이었다. 울타리 너머로 튀어나온 낯선 나를 마주하며, 나는 자문한다.


”나는 왜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가“


질문을 던진 순간, 나는 늘 하던 대로 감정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설명할 수 있으면 덜 불안해질 거라는 오래된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도, 가장 손쉬운 단서 쪽으로 손이 갔다. k가 가져온, 별 의미 없이 펼쳐본 별자리 운세책이었다. 전갈자리의 다채로운 장·단점의 목록 가운데 단 하나의 기묘한 부분에 사로잡혔다. ‘단점 : 목적 없음’


그 부분은 잡기 어려운 추상성에 잠겨 있으면서도, 오래전부터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을 정조준하듯 울림을 남겼다. ‘아니, 목적이 없긴 왜 없어...있지...않을 수도 있나?’ 그러고는 잠시 멍하니 마음 한편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나는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 채, 혹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회피하려고 애쓰며, 삶을 ‘목적 없음’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부자연스러운 노력 속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세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상담해 버린 셈이다.


그 무표정한 문장은, 결국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묻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목적과 목표를 뒤섞고, 목표만이 삶의 정당성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강박의 구조들 속에서 성장했다. 항상 전진하고 그 과정에서 목표를 설정하는 행위가 곧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 시대의 공기를 들이마셨고, 성실하게 그 분위기의 동조자가 되었다. 그러나 치열한 목표 의식 끝에 도달한 곳은 고작해야 ‘회사’라는 고지가 까마득한 산의 초입에 불과했다.


경쟁 사회의 자연은 언제나 외친다. “이 산만 넘으면 정상이다. 포기하지 말라. 전진하라.” 그러나 산 위에서 마주한 것은 정상의 탁 트인 해방된 풍광이 아니라, 끝이 없는 종주를 떠나듯 더 높은 고지를 암시하는 끝없는 목표의 행렬들이었다. 정상에 가면 산이 끝날 줄 알았는데, 산이 산을 낳고 있었다. 고지는 끝없는 굴레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고, 나는 그 톱니바퀴들 사이에서 천천히 짓눌리다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회사라는 산을 내려온 후에야 비로소 탁 트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나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은, 그동안 목표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감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가능성들이었다. 나를 찌를 듯이 날카롭게 연마되고 있었던 정체된 환경과 장소들, 그동안 전부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을 재고해 봐야 했다. 그렇게 나는 10년 동안 발붙였던 곳을 떠나 제주에 임시로 정착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