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목적입니다
오래도록 로망으로만 품어왔던 “제주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이, 어느 날 문득 현실이 되어 내 삶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첫해의 나는, 로망 실현의 해방감과 육지에서의 답답함을 ‘정산’ 받는 기분까지 겹쳐서, 몸은 이주민이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체크아웃은 언제죠?”를 묻는 여행자였다.
맛집과 카페, 오름과 바다. 제주가 던져주는 선택지를 죄다 수집하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이제 여기 내 동네야”라고 말하면서도, 습관은 여전히 다음 장면을 놓칠까 봐 ‘빨리 감기’ 버튼을 열심히 눌러댔다.
관광객처럼 모든 걸 집어삼키는 데 집중했고 그 사이 삶의 공백을 느끼지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흥분한 마음이 멱살을 잡고 끌고 다니는 동안, 나는 그저 바빴다. 바쁘면 공백이 못 따라온다는 걸 믿는 사람처럼. 그리고 솔직히, 그 믿음이 꽤 그럴듯하게 작동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는 동안, 등 뒤에서는 ‘공백’이라는 이름의 방 하나가 천천히 가구를 들이고 있었다. 외면했던 빈자리가 차곡차곡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해에 이르러서야 멈춰 서서 그 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비로소 공백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섬의 풍경을 부지런히 채워 넣고 경험의 파편들을 쓸어 모았지만, 방 안엔 여전히 서늘한 허전함이 감돌았다. 그 허전함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야 할 온기, 그러니까 ‘마음’이었다.
나는 그동안 타인에게서 받아온 충만함과 행복을 내 손으로 작게 접어두곤 했다. 마치 언제든 다시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너무 쉽게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목표라는 고장 난 나침반을 가지고 “전진”만 외치며 거대한 바다를 표류하는 배처럼, 다른 삶의 가능성은 선택의 영역 바깥에 두고 있었다.
이제는 좋은 사람들과 유대하고 연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예전 방식이 아닌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그 기준은 결국, 남들이 만들어둔 잣대가 아니라 내가 직접 보는 방식에서 시작되어야 했다. 오래 습관처럼 이어오던 관계의 궤도에서 살짝 벗어나, 나만의 시선으로 타자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익숙함으로 엮어두던 것들을 하나씩 걷어내자, 내면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옅은 윤곽선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숙제였고, 제주라는 공간은 이 의문을 풀어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였다. 다양한 직업적 배경과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닌 이들, 그리고 정착민과 이주민이라는 묘한 지역적 특색이 섞여 있는 ‘사회적 콜라주’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폭이 끝없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순간, 마치 미지의 정글을 탐색하는 모험가처럼 대상을 제한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어떤 결을 가졌을까? 나의 관심 목록에 추가해 보자.’ 그런 호기심 섞인 마음가짐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비추었다. 물론, 서툰 내가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꽤 여러 번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말이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고, 다른 결의 사람들은 탐구심과 일종의 흥분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들 가운데에는 내 일상적 자아를 지독히 평범하게 느끼게 할 만큼 색채가 선명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새벽 숲길에서 식물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내던 식물학자, 화려한 경력을 접어두고 귤밭에 뿌리내린 사람, 바다를 지키는 일을 일상으로 삼아 조용히 싸우는 사람, 구겨진 세상을 조금이라도 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활동가, 그리고 오래 품어온 취미를 삶의 중심으로 옮겨 작은 가게를 꾸린 사람까지. 삶의 색깔은 달라도, 각자가 자기 속도로 사는 법을 발명해 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건네는 삶의 편린을 목격할 때마다 나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되고, 벽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 낯선 지형에서 얻은 온기와 진정성은, 그동안 내가 매달려온 그 어떤 성취나 목표보다 깊숙한 곳까지 나를 채워주었다. 마치 마음속의 또 다른 자아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야, 이게 진짜 충만이라는 거야. 목표? 그건 덤이야, 덤.”
나는 조금은 깨달았다. 목표와 목적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삶에서 목적은 내가 정하는 것이고 목표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부산물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목표’라는 정교한 지도를 찢어버렸을 때, 그것은 방황이 아니라, 나침반의 바늘이 끝내 가리키는 진짜 북극을 되찾아가는 귀향일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