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식물의 혼밥일기
다만 귀향이 늘 집에 도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방향은 잡혔는데, 발 디딜 자리는 여전히 흔들흔들. 목적이라는 단어를 다시 손에 쥐었을 뿐, 행복이 어디서 생겨나는지는 여전히 감으로만 알았다. 그래서 생각은 결국, 가장 고전적인 결론 쪽으로 기울었다.
“행복? 그건 결국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거잖아.”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며, 언젠가 인간관계가 촘촘히 이어진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제주에서의 나는 기대어 설 지지대 하나 없이, 바람에 휘날리며 바닥에 낮게 퍼져 있는 덩굴 식물 같았다. 게다가 이전까지 나를 지탱하던 삶의 기원들도 이주와 함께 통째로 뒤집혀버렸고, 마치 유전자 지도를 새로 써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주변을 엮어줄 구조물도 없이, 어딘가에 덜컥 이식된 식물. 결국 남은 건 무색무취한 ‘이주한 직장인 1’이라는 꼬리표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만들려는 의지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회사에서까지 인간관계를 만들라고? 그건 인생의 난이도를 스스로 ’하드모드‘로 설정하는 거잖아.” 오래된 내 자아가 현명하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 애매한 고립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까? 온라인, S.N.S., 다른 오프라인 모임도 나가봤지만 이상하게 ‘제주다운’ 어떤 결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장소는 분명 제주도 어디였는데, 분위기는 희한하게도 육지 그대로였다. 비슷한 술자리, 근황 토크, 마치 전국 회식문화 센터가 제주에 지점을 낸 듯한 “어서 오세요, 제주 지점입니다” 같은 느낌.
사실 ‘지역성’이란 게 꼭 지리만을 뜻하지는 않으니까. 똑같은 구조에서 굴러온 직장인들이 모이면, 어디서 모이든 결국 그 사람들이 장소의 공기를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자꾸만 ‘제주’라는 배경만 붙은 육지의 풍경을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다른 길이 필요했다. 불특정 다수와 자연스럽게 엮일 수 있고, 정착하러 온 이주민들도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말하자면 ‘지리‘의 제주가 아니라 ‘결’의 제주에 가까운 공간.
그래서 결국 직접 만들었다. ‘혼밥 모임’
가벼운 농담 같은 시작이었다. 마침 ‘혼밥’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라서인지, 사람들은 그 유행 아래 숨어 있던 외로움에 의외로 쉽게 마음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모였고, 그 안에는 정말 다양한 결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작은 모임 속에서 깊은 바다를 처음 발견한 생물처럼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은근히 즐겁게 헤엄쳤다.
“어? 이거...좀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이 낯선 땅에서 인간관계라는 미로의 입구 정도는 찾은 것 같았다. 문제는, 입구만 겨우 찾아냈을 뿐인데 이 과한 흥분은 대체 뭘까.
“야 너 혹시, 단순히 분위기 좀 반전됐다고 인생이 뒤집힌 척하는 중 아니냐?”
내 안의 꼰대가 이렇게 묻고 지나갔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그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삶이 부서지다가 갑자기 꽃밭으로 전환되면, 사람은 종종 경솔함을 구원으로 오해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입구 뒤였다. 거기엔 목표만 쫓던 예전의 나로선 도저히 못 버틸, 감정과 관계가 뒤엉킨 ‘난이도 극상’의 세계가 버티고 있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모임이 ‘무난하고 재밌는 동네 놀이터’에서 ‘일종의 사회 실험장’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시점은 딱 하나였다. 유명해지기 시작한 순간.
“규칙? 없습니다.” 이게 모임의 유일한 규칙이었다. 처음엔 그게 멋있어 보였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생물체 같았다. 그런데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없음’도 규칙이 아니라 초대장이 된다. 사람은 규칙이 없어서 오는 게 아니라, 규칙이 없어서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착각‘을 들고 온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만들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타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이용한다. 같은 ‘자유’인데도, 각자 해석이 다르다. 무의식 어딘가에서 위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이 없으면 뭐가 생기는지 알아?”
“…사람이 모여.”
그 말대로였다. 편안함을 사랑하는 사람들, 규칙을 싫어하는 사람들, 규칙이 없어야 규칙적으로 행복한 괴상한 부류들까지, 온갖 결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원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깔끔하게 초과했다. 그 안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마찰들, 오해와 애매한 감정선의 충돌들, 모든 게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눈을 가렸다. 뒤도 안 돌아봤다. 물론 옆도 안 봤다. 마치 자기 속도에만 취한 사람처럼, 그냥 달렸다.
“야, 넌 왜 이렇게 신났냐?”
내면의 현자 자아가 물었다. 나는 대답도 못 한 채, 그냥 허공을 보며 씩 웃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웃음도 좀 민망하다. 흥분과 경솔함이 뒤엉킨 이상한 빛깔의 해독주스 같은 표정이었을 텐데. 하지만 뭐랄까, 그때의 나는 그 이상한 주스를 꽤 맛있게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