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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양 Dec 12. 2020

너에게 바라선 안 되는 것




“왜 너랑 고양이랑 닮아가는 것 같지? 눈 쪽이 특히 그런 것 같은데.. 이게 가능하냐?”


아이 사진을 보내면 “또 나만 고양이 없지!”하며 절규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 반응이 귀여워서 종종 사진을 보내곤 하는데, 그 날은 저렇게 답이 왔다. 뭐든 같이 살면 닮아가는 걸까. 외모는 잘 모르겠지만, 성향이나 성격면에서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아이는 겁이 많다. 나도 그렇다.

 


공포영화나 귀신의 집은 괜찮지만 문 밖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발자국 소리에는 민감하다. 혼자 살게 된 이후 생긴 일종의 불안감이다. 우리 집 고양이는 본투비 겁쟁이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쫄보가 저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가 본디 소리에 민감한 동물이긴 하지만 우리 집 고양이는 자기 발자국 소리에 자기가 놀라는 대단한 아이다. 집사라면 한 번쯤 목격해봤을 텐데, 이 귀욤뽀짝한 생명체들은 예상치 못하게 깜짝 놀랐을 때 서있는 상태 그대로 네 발을 쭉 뻗은 채 공중 부양하듯 점프를 한다. 방금 전까지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뒷발로 밟아놓고 깜짝 놀라서 붕 뜨는 모습을 몇 번인가 봤는데, 진짜 미치게 사랑스러우면서도 어이가 없다.




둘 다 식탐이 많고 밥도 급하게 먹는 편이라, 사람 하나는 늘 체하기 일쑤고 고양이 하나는 늘 토하기 일쑤다. 밥 좀 천천히 먹어, 하고 다그치는 주제에 속이 늘 더부룩해 소화제를 달고 사는 건 내가 봐도 조금 웃기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노력 중이다. 특히 우리집 고양이는 비닐봉지 소리에 기절초풍을 하기 때문에 바스락거리는 재질을 만지기 전, 나는 눈을 마주쳐 신호를 준다. 밥은 적게, 여러 번 먹는 쪽을 택해 속도를 조절 중이다. 아, 물론 노력해서 바뀌지 않는 것도 있으며, 우린 여전히 징글징글한 덜렁이들이다.








평소 성격은 꼼꼼한 편이지만, 식사를 할 때면 유난히 옷에 음식을 묻히는 일이 잦고 그는 어쩐지 징크스 혹은 습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특히 흰 옷을 입은 날엔 집에 돌아와 세탁기에 옷을 넣기 직전 얼룩이 있는걸 뒤늦게 발견하곤 한다. 머리나 무릎, 팔꿈치를 찧는 일은 부지기수다.  


우리 집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일단 드러눕고 본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은 중요치 않다. 침대 매트리스 끝에 서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일단 옆으로 발라당 드러눕는데 바닥으로 고꾸라지기 전에 호다닥 달려가 손으로 받쳐야 한다. 아이가 고작 1kg 정도였던 아깽이 시절에, 누울 자리 좀 보고 누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때는 아가라서 그렇겠지, 조금 더 크면 알아서 조심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덜렁이 고양이는 3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아, 평생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며칠 전 사냥놀이를 할 때였다. 아이는 수직으로 점프하는 걸 좋아하는데, 사냥감에만 집중하며 뛰다 착지하면서 좌식 책상에 가슴을 부딪혔다.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뻔했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듯 냥, 하고 울 뿐이었다.


이제 충분히 컸으니, 자기 몸은 알아서 조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민첩한 고양이니, 위험해 보이면 적절히 잘 피할 줄도 알거라 생각했다. 전부 내 착각이었다. 이 녀석은 아직도 작은 아기와 다를 게 없고, 아마 평생 아기일 거다.



그 날부터 이 아이에게 조심성을 바라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조심해야 할 건 고양이가 아니라 나다엄마 덜렁이가 아기 덜렁이를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앞으로 엄마가 더 조심할게. 아프지 말자, 아기 덜렁이야.




이 날도 종일 집에 같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덜렁이 귀 뒤에 상처가 있는게 아닌가..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쩌다 다친건지 아직도 모른다.. 지금은 잘 아물었고 털이 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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