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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양 Jan 24. 2021

날 만나서 행복할까, 과연

온통 그런 생각 투성이인 날이 있다




날 만나서 행복할까, 과연.
온통 그런 생각 투성이인 날이 있다.



평생 답은 듣지 못하겠지만, 나는 번번이 그런 생각으로 죄스러운 날을 보내곤 한다. 일이 급하니까, 마저 끝내야 하니까, 피곤하니까, 핑계를 대는 나는 거친 울음소리에 가슴이 찔린다. 정이 많은 우리 집 고양이는 거실 한편에 우두커니 앉아 나만 바라보고 있다가 곧 터벅터벅 걸어와 허벅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든다. 고양이들은 하루 중 즐거웠던 일을 꿈속에서 다시 기억한다고 하던데, 지금 내 허벅지 위에서 새근대는 너에겐 오늘 하루 곱씹을만한 즐거움이랄 게 있었을까.




고작 8평 남짓한 방, 나로 인해 정해진 네 세상은 딱 8평.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네 안식처, 그 꼭대기에서 웅크린 채 자고 있는 털 뭉치를 보는 건 찌르르하게 울리는 다리의 피로보다도 더 묵직한 어떤 것. 


함께 산 지 햇수로 4년. 손바닥만큼 작았던 고양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던 날, 바짝 세운 솜털마저 듬성듬성해 털 뭉치라 부르기도 모호했던 고 작은 것 덕에 나는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과연 나는 이 아이의 엄마, 형, 누나, 동생, 할머니의 자리를 부족함 없이 채워주었던가. 너는 나 때문에 여럿에서 하나가 되었는데, 혹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건 아닐까.


참새도 찾아오지 않고, 뜀박질 몇 번에 뾰족한 모서리에 가 닿는, 딱 그만큼인 세상 속에서도 내 고양이는 의젓하고 대견하게 버텨주고 있었다. 하지만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늦은 밤이 되면 몇 가지 장난감으로 놀다가 다시 잠드는 그런 하루의 반복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부끄럽다.





엄마 안아줘, 우린 너랑 나 둘 뿐이잖아. 네가 나 안아줘야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쩌다 한 번씩 홀랑 저 혼자 내려가버릴 때가 있다. 그럼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절반의 농담도 절대적 사랑을 받는 쪽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겠지. 이 아이에게는 나 하나가 전부인 데다 그 선택도 내가 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세상을 함부로 결정지은 내가 농담으로 해서는 안될 말이다.





잠든 털 뭉치를 보며 엄마는 늘 반성을 한다. 
아이들은, 반려동물은 참 한결같다. 



상황에 따라 마음이 변하고, 필요에 따라 애정이 변하는 인간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늘 과분하고, 그래서 늘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어느덧 축구공 크기의 털 뭉치가 되었어도 늘 한결같은 우리 집 고양이를 반이라도 닮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목표 금액을 얼른 채워서, 대출을 끼고 이사를 하겠다는 현실적인 가장의 각오를 다시 한번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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