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건 첫 직장이 생겼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직종이라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럼에도 그 일이 퍽 즐겁고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뼛속부터 문과인 내가 화학공학과 기계공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팅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으니까.
어쩌면 평생 모르고 지냈을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스물여섯 주제에, 인생 정말 모를 일이다! 하고 웃었다. 정말 그랬다. 산다는 건 하루 두 번 오가는 밀물 썰물처럼 반복적이면서도, 매 순간 규칙 없이 요동치는 파도 결처럼 변칙적인 것이라 느끼던 때였다.
내 주변이 바뀌고 그로 인해 내가 조금씩 바뀔 때마다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도 들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아직도 연애할 생각 없어? 안 외로워?
연애, 연애라.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언제적이더라. 내 옆에 누군가가 있고, 오늘 뭐할지 내일은 어디서 볼지 그렇게 내후년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그렸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혼자 상상하는 건 거의 전무한 일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면 드물게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출근 후 맞이했던 첫 주말. 나와 친구들은 약 4개월 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각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친구들이 인천 나의 집으로 모여들었고, 좋아하는 안주에 술을 곁들이면서 부장님이 이렇고 빚이 어떻고 하는 아직은 어색한 푸념들을 늘어놓았다. (제일 애정하는 안주가 쥐포와 생오이인 입맛과는 아주 잘 어울리는 이야깃거리인 듯싶지만.)
이제 이야기 주제가 진짜 회사, 돈 아니면 없는 거 같은데?
그러게.
우리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첫 직장에 들어가 입에 붙지 않는 직함을 부르며 기계적으로 움직였고, 그런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한 번씩 꼭 깨지고, 그 때문에 우울해했다가, 누구나 그런 것 아니겠냐는 상사의 말에 쭈뼛거리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취준생 시절에 꿈꾸던, 그런 평범한, 그런 사람들.
아 맞다, 지원이 너 남자 친구분은 어디서 만난 거야?
지원은 얼마 전 이별했다. 우리 모두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줄곧 그녀를 들여다보며 걱정했다. 2개월가량이 흐르고 지원의 SNS엔 새로운 사람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또 한 번, 우리 모두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사진 속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 어쩌다가?
지원은 얼버부리는 것으로 답을 했다. 사실 질문한 쪽도 퍽 궁금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어쩌다 만났다"는 답변에 그리 쉽게 수긍할 수 있었던 건, 우린 그런 것들이 궁금할 시기를 이미, 그것도 훌쩍, 지나온 뒤였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겨우 스물여섯 혹은 벌써 스물여섯이면서 우리는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연애의 후폭풍으로 바닥을 찍었었다. 그러니 누구와 어디서 만나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설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는지 그보다 궁금한 건, 그저 너를 잘 지키며 사랑하고 있는지 그뿐이었다.
선이 둘러진 답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온함이 묻어 나오는 답이었으니, 더 이상 묻고자 하는 것도 없었다. 지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안주거리로 사 온 쥐포를 베어 물었다. 바다가 아니라 염전 속을 누비다 온 생선마냥 짰다. 아니, 짜다 못해 쓸 지경이었다. 뭐야, 취했나. 내 입이 이상한 건가. 이거 왜 이렇게 짜?
내 입에도 짜.
그래? 내 입에만 이상한 줄.
생수로 입을 헹궜다. 혓바닥에 착 달라붙은 쓴 맛까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잔에 든 소주를 털어 넣고 다시 입을 헹궜다. 알코올의 날카로운 향 탓에 이젠 혓바닥이 아닌 목구멍에서 쓴 맛이 났다. 독한 걸 독한 걸로 지워내고서야 나는 진심을 꺼내놓았다.
대단하다 너.
결코 짧지 않은 연애,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모든 자신을 함께 떠나보냈어야 했기에 고민도, 한숨도, 눈물도 많았을 터. 그런 먹먹한 것들을 가득 안고 나를 찾아왔을 적에 나는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연애가 끝나니까 내가 없었어. 같이 찍은 사진이나 그 사람을 위한 것뿐이고. 정작 혼자가 되었을 때 나를 생각하질 못했던 것 같아. 누구랑 함께 하는 일이든, 이별하는 일이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건데 왜 그렇게 멍청하게 상대만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나는 늘 뒷전으로 두고는.
그 다음 날, 지원은 헤어졌다고 했다. 그녀는 가끔 휘청댔지만 무너지지는 않았고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귄 후, 종종 올라오는 SNS에는 "내 사진 남기기"라는 말이 덧붙어 있었다. 그를 볼 때마다 그날 밤 내 이야기가, 5년 전 나의 경험들이 내 생기를 떼어먹는 구더기 같은 기억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위안이 됐다.
아픈 만큼 배운 게 있었단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난 탓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어떤 일을 받아들이는 것과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건 별개인 듯했다. 헤어지고 처음 몇 년간은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후엔 만남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새로 사랑을 시작한 지원이 대단한 건, 그런 달고 쓰고 짜고 매운 시간들을 모두 겪은 뒤에 또다시 타인을 믿어볼 용기를 낸다는 게, 그런 마음을 먹는다는 게 나에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대단하다는 말에 지원은 되려 별 것도 아니라는 듯 쥐포를 씹으며 웃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중얼거리면서. 그녀의 태연한 대답이 내 것이 되는 날이 올까. 어쩐지 지원과 나의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지면서 술기운에 잠시 까무룩, 지나간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내 지난 연애는 무식했다. 서로 사랑한다 말하고 있었지만 어떤 사랑 표현은 때때로 상대의 동의가 결여된, 배타적이고 강압적인 형태이기도 하다는 것을 두 사람만 깨닫지 못한 채였다.
상대는 내가 부담스러웠을 테고 나는 때때로 그의 존재가 두려웠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숨이 가쁜 듯한 불안감을 잠재우려 되려 감정과 관계에 가속을 붙여나갔고, 방향키를 제대로 쥘 힘도 없으면서, 그를 위해 단련된 근육도 없으면서, 그렇게라도 속도를 내어 달려가면 어딘가 목적지에 가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위험하다, 라는 신경세포들의 경고에도 지르밟던 페달. 그렇게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경고 표지판들. 어딘가로 향하는 일은 정확한 방향과 적절한 속도의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 감정이 내달리도록,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도록 방관했다.
서로가 서서히 지쳐가던 어느 시점,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내게 사랑한다 고백했고, 그 고백을 들은 후 나는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모멸감에 몇 번이고 입을 헹구고 돌아와서도 나는 또 한참 동안 그 관계를 유지했다. 내 방식 역시 지독히도 지독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나있었다.
그간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가까이 두는 게 어렵고 불편했다. 어떤 순간 누군가의 존재를 상상하면, 그날의 한 장면이, 나와 그 사람이 함께 있던 구도가, 같은 시간을 다르게 기억하던 감정의 색채가, 여러 번 덧대어진 수채화 물감처럼 속에서부터 진하게 겹쳐 올라서 괴로웠다. 그러면 나는 마음을 떼어 건네보려다가도 도로 씹어 삼켰다.
아직도 나는, 언젠가 누군가를 아껴주고, 사랑받고, 그래서 쓰디쓴 짠맛까지도 참을 수 있는 그런 때가 오길 바라면서, 바라지 않는다.
다른 세상을 살아온 하나와 하나가 만나, 하나일 때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함께 해나가고, 그렇게 하나가 가진 마음의 땅을 조금씩 넓혀가는 그 멋진 일의 가치를 알고 있으면서. 어느 순간 나와 너를 말할 때, 둘이라고 하기엔 함께 나눈 공간이 크고 하나라고 하기엔 여전히 각자의 색채가 짙은 그런 사이라고 할 수 있었으면 싶으면서. 혼자 행복할 줄 알아야 누군가를 만나도 진짜 행복해질 수 있는 거잖아- 겁쟁이는 여전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날 밤 쥐포는 모두에게 짜고 썼다. 나는 그를 내려놓았지만 지원은 아니었다. 그냥 물 하고 먹으면 먹을만 해. 오이를 씹으며, 나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