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부장님의 차에 올라타 인사를 하고 함께 공장으로 향하는 길. 모닝 수다가 시작되었다. 스무살 차이 나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할 말이 뭐 그리 많겠느냐 싶겠지만 그녀와 나는 꽤 비슷한 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화이트보다 레드 와인을 선호하는 것, 살갑게 치근대기 보다는 조용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 보여지기 위한 물건 보다는 내실과 실용성을 더 중요시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 다 아들을 둔 엄마라는 것이다. 물론, 내 아들은 고양이라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몇번 전해들은 바로 부장님의 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인데도 여전한 애교쟁이에 엄마 바라기인 듯했다. 언젠가 한 번은 답지 않게 혼자 자겠다고 선언하여 따로 방을 마련해주었더니,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는 그녀의 방으로 찾아와 나 엄마랑 같이 잘래, 하며 이불 속으로 뛰어들었단다.
아직도 마냥 애기네요?
나랑 같이 자야 안심이 된다나, 어쩐다나.
직선으로 쭉 뻗은 아스팔트 위, 편하게 눈을 감은 그녀와 잠옷 차림으로 다가와 엄마 품에 코를 박고 안심하며 잠드는 자그마한 소년이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포근하고 사랑스러웠다.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잠들 시간이 되면 나를 찾아오는 털뭉치 요정이 있었고 그 터래기 냄새를 맡을 때 나른한 안심이 온몸 곳곳 퍼지는 느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 고양이의 수면 습관은 아이가 집에 오고 딱 3일 후부터 시작됐다. 그날, 아이는 TV 아래 좁은 공간으로 기어들어가 하루 종일 삐약대며 울어댔다. 엉겨 붙어살던 혈육들과 떨어져 익숙한 냄새 하나 없는 곳에 혼자, 아니 어떤 거대한 인간과 둘만 남겨졌으니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찬찬히 적응하겠지 싶어 애써 다가가지도 않고 3일가량 더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는 목이 쉴 때까지 울어댔고 결국 나는 아이에게 먼저 다가갔다. 내 손이 다가오자 까만 동공이 잔뜩 커져서 작은 몸을 더 작게 웅크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아, 몹쓸 짓 하는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두면 이 작은 게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워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두 손으로 떠(..!) 이불로 옮겼고 나는 조금 떨어진 이불 끝자락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아이는 내 손이 떨어지자마자 내게로 도, 도, 도, 도, 다가오더니 허벅지 위로 올라와 몸을 발라당 뒤집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사고가 정지되었다가 애교를 부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를 엉거주춤 쓰다듬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처음으로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묘생 4개월 차 우리집 고영
3일 내내 내외하더니 터치 한 번에 자기 세상을 전부 내어준 작은 털뭉치를 내려다보면서, 그리 애처롭게 운 게 사실 어떤 따뜻한 온기를 찾고 있었던 거였나 싶었다.조금 더 빨리 다가갈 걸, 혼자 다른 세상에 똑떨어진 기분으로 벌벌 떨고 있던 아이를 지켜보기만 한 게 후회스러웠다.
그 후로 아이는 내게 안겨 자거나 자기 몸의 일부(어디든 상관 없는 듯 했다)를 내 몸에 닿게 하고는 잠이 들었다. 덩치가 작을 땐 베개 위로 올라와 내 얼굴에 등을 대거나 내 얼굴을 감싸안는(?) 자세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하체는 베개 위, 상체는 내 어깨와 가슴팍 위에 걸치고 잔다.
Just like this...... 어쩐지 악몽을 꿀 것 같지만 괜찮습니다...
덕분에 일어나면 반대쪽 목뼈가 튕겨나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든다. 하지만 괜찮다. 같이 누웠을 때 느껴지는 복실한 털과 한쪽 뺨을 타고 퍼지는 온기는 수면제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니까.
나는 우리집 고양이와 함께하는 저녁 루틴이 좋다. 밤 사냥놀이를 마치고 형광등과 TV까지 끄고 나면 작은 방에 검은 장막과 적막이 내려앉는다. 그것이 신호임을 아는 듯 아이는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와 베개 옆에 놓은 분홍색 인형에 열심히 꾹꾹이를 하고는 익숙하게 몸을 기대 온다. 그렇게 부드러운 털이 피부에 닿으면 포근함에 잠이 몰려오다가도, 그게 또 소중해서 쉽게 잠들기가 싫어진다.
나에게 온몸을 기댄 채 잠든 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꼬리 끝에 달린 털까지 해봤자 기껏 오 킬로그램. 그러니 아이의 심장은 내 주먹보다도 작을 텐데, 매일 밤 콩딱대며 내게 제 존재를 알리는 게 그렇게 새삼스러울 수가 없다.
너나 나나, 여기 살다 간지도 모를 만큼 작고 미미할 터인데, 그런 너나 나한테도 콩딱 댈 심장이 있다는 게. 그런 게 우리 집에 내 것 하나뿐이지 않다는 게. 그게 내가 이렇게 편히 지낼 수 있는 이유이지 싶고, 어쩌면 너도 내 콩딱거림을 듣고 안심했던 날들이 있었나 싶고, 그래서 항상 내 가슴 언저리에 귀를 대고 잠이 들었던 걸까 싶다.
서로의 몸이 닿은 채로 잠드는 것만큼 조용하고 진한 사랑 표현이 어디 있을까. 맞닿은 살에 땀이 찰만큼 뜨끈한 서로의 존재감. 내 것의 3분의 1도 안 되는 짤막한 숨이 선명하게 전해진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날은 당연하다가도 어느 날은 울컥하고 그래서 또 감사하다.
하룻밤에도 수백 번 들이마시고 내쉬며 전하는 애정이, 흔들리지 않고 일정하게 뛰며 나를 다독이는 네 존재가 귀하고 소중해서, 매일 밤 익숙한 자세로 잠들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닫는다.
내가 옆에 있어요.
5키로 밖에 안 되는 작은 고양이에게 나는 매일 밤 사랑받고 위로받는다. 먼저 곤히 잠든 털뭉치의 등을 몇 번 쓰다듬다가 하얀 끝, 꼬리를 그러쥐고 나도 눈을 감는다. 둘이서 함께 하는 평온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고마워. 잘자,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