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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Sep 30. 2019

개발도상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어릴 적 꿈이었던 해외봉사를 시작했다. 한 달 일기.


사진 여섯 장으로 보는 동티모르 생활




1. 집 앞 도로. 숙소가 4층인데, 이 건물이 동네에서 제일 높다. 해변가 끝까지 다 보인다. 가끔은 내가 한 15층쯤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2. 테라스 모서리 맨 끝에 자리 잡아 한 달 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꽃. 며칠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구석에서 혼자 참 잘 자란다.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시큐리티가 매일 아침마다 호수로 물도 주고 분무기로 잎도 닦아주고 있었다. 나 역시 혼자 잘 살고 해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에, 시큐리티가 꽃에 매일 물을 주듯이 주변 사람의 도움을 항상 받고 있다는 걸(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꽃을 통해 보았다.



3. 시장에 계신 아저씨.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쭤보니, 시크하게 관심 없다는 듯 된다고 하시고는, 다 찍고 가려니까 사진 어떤지 보여달라고 날 잡으셨다. 하지만 마음에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는 모르겠다. 사진을 보곤 그냥 다시 제 갈 길을 가셨다. 조금 더 열심히 찍어드릴걸, 아쉬움이.



4. 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남자와 이름 모를 음식을 파는 남자. 30도 땡볕 아래 나무 작대기를 매고 서있는데, 양산을 꼭 쥐고 쓰고 있다. 역시 이 곳에 평생을 살았어도 더운 건 마찬가지, 햇빛이 따가운 건 공통인가 보다. 그런 햇빛 아래 일을 하러 갈 사람을 위해 아침 출근길 누군가 손에 쥐어준 듯한 분홍색 장미 꽃무늬 양산이, 왜인지 장마철 학교 가는 날 엄마가 가방에 넣어준 3단 접이식 우산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 마침 한국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던데.



5. 내 옆방에 사는 언니가 상추씨를 심었는데 드디어 저번 주에 싹이 났다. 하지만 얼마 전 호텔 관리하시는 분의 아들 2명이 놀러 왔다가, 언니의 화분 흙을 다 들춰논거다. 테툼어로 ‘만지지 마세요.’라고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서 돈터치를 써놨다는데, 사실 7살과 5살이었던 그 애들이 영어를 한마디도 모른다는 걸 언니에게 말하진 않았다. 근데 그 날 난 애들이 언니의 화분을 망친 줄도 모르고 테라스에서 잘 뛰며 노는 모습이 귀여워 초콜릿을 주며 더 놀다 가라고, 자주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역시 언니에게 말하진 않았다.


6. 시장 구경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꼭 곳곳의 시장을 다 가보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동티모르 이 곳의 시장들은 볼거리가 많지 않고 작아 다른 나라 시장 구경만큼 재미있지 않다.(심지어 마트에 비해 그다지 싼 편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틀에 한번 굳이 시장까지 가는 걸 보면, 내가 시장을 좋아하긴 하나보다. 싶다.


많은 나라들이 요즘 시장에서도 가격을 앞에 적어두고 정찰제로 판매하지만, 동티모르는 아직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들과 다른 생김새를 갖고 발음이 어눌한 나와 같은 외국인들은 항상 일명 덤탱이라는 위기에 항상 놓여있다.


테툼어(동티모르 현지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선생님이 가장 강조하시며 꼭 외우라고 한 표현은 ‘Karon loos (너무 비싸요)’인데, 내가 ‘Karon loos’를 아무리 외쳐도, 깎아주긴 커녕 너무 비싸다고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는 나를 보며 웃어대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곧 그게 날 비웃는 게 아니라, 신기한 외국인이 하는 모든 걸 그냥 재미있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길 지나가며 사진 찍는 것조차 빵빵 터지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어쩌면 매우 자주)


그런데도 왜 굳이 힘들게 Karon loos를 말해가며, 흥정을 시도하며, 더운 길을 지나쳐 시장까지 가냐고 묻는다면, 가족들이 모두 나와 조그만 칸 안에서 옹기종기 밥을 해 먹으며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가기도 하고, 엄마 아빠 일을 돕기 위해 맨발로 왔다 갔다 과일을 옮기는 어린아이들을 보기 위해서 가기도 하고, 중고등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나와 손님과 흥정을 하며 물건을 파는 모습을 위해 가기도, 또는 그곳의 아이들이 구석 한 곳에 모여 구슬치기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또 간다고 대답은 하겠지만, 이러고 보니 어쩐지 나랑 어울리지 않게 너무 거창한 답변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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