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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Aug 13. 2019

항상 '인생 참 살만하다' 하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아시아 최빈국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법.


여기, 동티모르에 해외봉사를 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날 말렸다.

가면 고생길이다, 그거 한다고 해서 요즘 시대에 취직되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취업준비를 해야지 등.

심지어 내가 여태까지 한다고 했던 모든 일에 반대를 해보신 적 없는 부모님 조차도, 이번 결정에 대해 완전한 동의를 하시진 않으셨었다.



동티모르.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곳이다.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어디 있는지 감 조차 안 잡히는 나라.

아프리카? 중동? 남미인가?라고 하지만, 우리가 익숙한 인도네시아 발리 옆, 호주 위에 있는 나라.

대지진으로 인한 최빈국의 이미지를 가진 아이티보다 GDP가 낮은 나라.

구글과 네이버에 아무리 찾으려 해 봐도 최소한의 정보조차 잘 나오지 않는 나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떤 나비의 날갯짓이 날 이 나라까지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이 일을 지원할 때의 나는 그냥 동티모르에 정말 가고 싶었고,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고, 이왕 해외봉사를 가게 된다면 들어본 적도 없는 어려운 나라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느끼셨겠지만) 정확하게는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면접 때 지원동기를 설명할 때나, 어떻게 하다가 지원했냐고 물어보는 팀원들에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진짜 이유를 잘 몰랐기 때문에 (사실 지금도).

이제라도 솔직히 말하겠다.


여러분들이 물어보신 지원동기, 사실 나도 모르겠다. 난 그냥 이 일이 해보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

임금님은 당나귀 귀다.


(면접 때 현란했던 지원동기를 듣고 뽑아주신 교수님 죄송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아주세요.)


진실은 저리 두고, 어쨌든 난 이 곳에 왔다.

지금도 온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정말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샤워기를 틀었는데 약간 노란 놋물처럼 이물질이 섞인 듯한 물이 나왔다.


정수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도 이렇다니. 영국에서 양치하려고 컵에 물을 받았는데 물이 하얗던 것을 보았을 때 보다 충격이었다. 10년 동안 동티모르에 사신 교민분께 여쭤보니 세수와 양치는 생수를 사서 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그 날 1.5L 생수를 박스채 사서 화장실 앞에 두었는데, 샤워할 때마다 저걸 한 통씩 들고, 양치도 하고 마지막 헹구는 것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퍽 답답해졌었다.

게다가 밥을 지을 때도, 국을 끓일 때도, 설거지 후에 헹구는 것도 모두 생수를 써야 한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트에 있는 고기 냉동고


그리고 직면한 문제는 먹을 것이 정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문자 그대로의 '먹을 것'은 있다.

하지만 일명 '먹잘 것'이 참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트에 웬만한 것들은 있는데 정말 먹기 싫게 생겼다. 일단 상태가 안좋아보이는 건 기본이다.


일단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내가 모든 것을 손질해야 한다. 그 자체로 그냥 판다. 닭이 머리만 잘린 상태로 얼려져 발을 내 쪽으로 내민 상태로 냉동고 안에 가격표를 달고 있고, 생선 같은 경우는 얇은 비닐봉지 하나에 감싸져 어떤 종류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서로 뒤엉켜 있다.(글로 표현하니 정말 더럽게 느껴지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 모습보다는 깨끗할 것이다.)


물론 일반 공산품도 먼지가 가득 쌓여있고, 종류가 많지 않아서 선택의 폭이 좁다 못해 아예 없는 것도 있다. 심지어 그마저도 항상 마트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게 있다면 보일 때 꼭 사둬야 한다.


지방에 가면 마트조차 없다.


채소가게


동남아 하면 맛있고 싼 과일이 메리트인데, 땅이 척박해 과일이 맛없다. 게다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돈을 쓸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없어 수요가 적기 때문에 가격은 비싸다.

이 나라 공무원들의 월급이 한 달에 140불에서 160불, 학교 교장선생님 정도 되시는 분이 400불인 것을 알고나서, 진지하게 이 곳에서 그 돈으로 어떻게 삶을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가가 일반 동남아에 비해 3배 정도 되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확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건 아니다. 동티모르에 계신 외교관 대사님께서 한국 물가에 70~80% 정도라고 하셨다.)


이 곳의 물가는 국민의 소득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이 사실을 친구에게 말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소득이 낮은데 한국과 비슷한 물가를 가질 수 있냐, 일반 국민들은 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냐' 고 물었다.


아, 사실 나도 그게 정말 궁금한데.


바다는 그래도 참 예쁘다. 썰물 때라 물이 많이 빠져있다.

오늘은, 어제 새벽 3시에 자서 아침에 정말 힘겹게 일어나 멍한 상태로 부랴부랴 씻는데, 그 정신에도 생수로 마지막 헹구고 양치도 하는 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 걸 보고 '그래도 이런 곳에 내가 적응을 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마트에서 물건을 사 집에 와서 물티슈로 한번 꼭 닦고, 고기를 사면 한번 에벌 삶기를 꼭 하고 그러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내가 적응을 해가긴 하는구나 하며 스스로에게 뿌듯하기도 하고, 이젠 어떤 어려운 곳을 가도 처음엔 어렵겠지만 곧 지금처럼 잘 적응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기는 중이다.


여기 있으면서 내가 몰랐던 나의 능력에 대해 많이 알아가고 있다.

내가 나약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요리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수육, 파전, 파스타도 맛깔나게는 아니지만 척척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못 봐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더러운 건 못 참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놋물로도 잘 씻고 먼지 가득한 마트에서도 쇼핑을 잘하는 걸 보니, 그것도 또 아닌 것 같다.


내가 한 요리


하지만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적응을 잘해나갈 것이라는 생각이나, 잘 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살다 보면 분명 내가 못 견딜만한 일이 닥칠 것이고, 이 나라에서 정말 도저히 못살겠다 하는 일도 분명 생길 테니까.


인생은 항상 '그래도 참 살만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때가 오면 난 그게 힘들다고 얘기를 해야지,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좋다고 얘기를 해야지.

어디나 장단점이 동등하게 존재하니까. 힘든 일이 있으면 분명 좋은 일이 또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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