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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Sep 30. 2019

옛날엔 모두 빨래를 밖에서 말렸죠

지금은 볼 수 없게 된 이불빨래

한국에서는 항상 빨래를 실내에 널었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꽤 오래전에는 사람들이 베란다 난간에 이불이나 큰 빨래를 널곤 했었는데, 그것이 아파트 미관을 해친다고 하여 널지 말라는 관리사무소의 공지문이 승강기 게시판에 걸린 뒤로 밖에 걸린 빨래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빨래가 사라지진 않았다. 항상 모두가 권고사항을 따르는 것은 아니니까. 근데 한 2년 정도 되었을까. 미세먼지가 하늘을 자주 덮게 된 이후로 베란다 난간의 큰 빨래들은 금방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밖에 걸린 빨래들을 보며 ‘저거 미세먼지 다 붙을 텐데’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나는 작년 지중해의 작은 나라 몰타에 갔었는데, 유럽에서는 손에 꼽히는 좋은 기후와 햇빛을 가진 나라였고, 맑은 지중해의 바다를 사방에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사이에 있어 두 가지의 문화가 공존해 있었으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도 있을 정도로 특색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빨래였다. 이 사람들에게 빨래는 당연히 밖에 너는 것인지, 창문 앞에 빨랫줄이 아예 설치되어있는 집들이 많았고, 집을 넓게 하기 위한 베란다 확장은커녕 건물 밖으로 베란다가 튀어나와 본인의 존재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남부 특유의 느낌을 가진 채도 높은 옷들이 2층부터 층별로 제각각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그것은 똑같은 골목길을 매일 다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빨래의 그런 역할과 모습을 좋아했던 나였기에, 한 달 전 이곳 동티모르에 도착했을 당시 숙소 옥상에 빨랫줄이 있는 넓은 테라스를 보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빨래를 너는 순간이 요즘 하나의 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가끔 그게 어떻게 낙일 수 있냐고 동료들이 묻는다. 빨래를 보며 일명 ‘감성 있다’를 연신 한 달째 외쳐대는 나를 보며 ‘독특하다’고 한다.


몇 년 전 승강기에 걸린 아파트 공지문을 돌이켜봤을 때, 이런 반응은 어쩌면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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