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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Dec 15. 2019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나라, 보려 하지 않는 나라

개발도상국에서 사는건 뭐가 힘들까?


작년에 우연히 좋은 기회로 영국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땐 겁이 없었던 건지, 이거다 싶었던 건지 고민할 것도 없이 무작정 떠났었다. 짐도 23kg 밖에 안되어 여행객 같았지만, 뭐를 해야 하고 뭘 먹어야 하며, 어떻게 지내면 잘 지내는 것인지 알려주는 네이버 블로그와 같은 가이드가 없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특히 내가 가는 곳은 영국 런던 아래쪽에 위치한 브라이튼이라는 도시에 위치한 브라이튼 대학교였는데, 석사가 아닌 학부를 다니는 한국인은 적은 곳이었기에 정보가 극히 적었다.



그런 곳에서 알바도 하며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짧다고 해서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약 2개월, 4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심한 무기력증이 찾아왔었다. 밖도 나가기 싫었고, 공부도 하기 싫었고,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던 시간이 길었다. 방이 너무 조용하면 여러 생각들이 자꾸 비집고 들어와, 생각을 차단하기 위해 TV 예능들을 틀어놓았었다. 무엇을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때를 회상하면 그저 시끄러운 잡음을 머금은 차가운 방의 공기와, 사그 작 사그 작 거리는 회색 이불의 촉감이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우울하고 무기력했지만, 이것도 곧 지나갈 거라고, 가끔 이럴 때가 오지만 나를 좀 더 돌보고 나를 위한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좀 지나 회복할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이 믿음은 꽤나 데이터 베이스적이었는데, 성인이 된 후 내 인생에 몇 달을 주기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기가 문을 종종 두드렸고, 무기력함에 너무 포커스를 두지 않고 그냥저냥 일상을 또 살아내다 보면 괜찮아진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이것도 내 일상의 일부거니 하고 며칠을 영혼 없는 사람처럼 꼭 해야 하는 일(학교를 가는 일, 밥을 먹는 일)만 하고 지내다가, 조금 움직이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는 심정으로 나를 어르고 달래며 런던까지 기차를 타고 가 박물관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품의 굿즈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세상이 사실은 더 아름답고 더 크다는 걸, 그래서 작은 일에 너무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나에게 알려주는 것들을 위해 찾아다녔다.


그것은 끝없이 흐르는 것 같은 흙색의 템스강이었기도, 그 위에 놓인 문명의 산물 타워브리지였기도, 하루하루 꿋꿋이 살아가는 지하철 속 직장인들이었기도, 미친 소리를 들어도 그림을 그렸던 고흐의 해바라기였기도, 울타리 밖은 철저한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이 안은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시내 한복판 런던에서 비싼 땅 중 하나로 보인 하이드 파크이기도 했다.

힘듦과 무기력함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에는 꽤나 그걸 이기게 해주는 많은 장치들이 존재하니까. 나와 같은 걸 겪은 사람들이 이미 있었기에, 그리고 그들도 나처럼 이걸 이겨내고 싶어 했기에.

나는 그들이 만들어 낸 세상 속에서 힘듦을 얻었고 또다시 치유를 얻는 과정을 반복했다. 고단하고 외로웠던 영국에서의 삶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우물 밖 세상처럼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었기에 꾸역꾸역 살았더랬다.



올해는 동티모르에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한국어 교육 분야로 파견을 왔다. 어릴 때부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국제협력분야에서 봉사하는 것, 그것을 이루기 위해 왔다. 작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고, 살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면, 올해는 사람들의 관심이 거의 없고, 살기에 불편하며, 사람들이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 곳으로 닿았다.

힘든 시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주기적으로 문을 두드린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각설이처럼. 동티모르에서 지내면서도 아니나 다를까, 한두 번 정도 찾아왔었다. 그래도 한국이나 영국에 있을 때는 그럴 때마다 할게 많았고 그런 날 잊게 해주는 것들도 많았는데, 여긴 그런 게 없다. 정처 없이 노래 들으며 저녁 하늘을 보며 걷는 것도 위험한 곳이고, 웅장한 콘서트나 영감을 주는 작품들이 있는 박물관도 없고, 제대로 된 식당이나 정말 먹고 싶은 음식 하나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곳이니까.



그래서 이곳에서는 그런 것 없이 온전히 나와 이야기하며 손잡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내 사소한 일상과 그에 대한 감정까지 기록해가며 나의 시간들을 유형으로 만들어 내는 일, 끝없는 사색을 해보는 일, 맛있는 걸 사 먹을 수는 없지만 내가 먹는 음식들을 야채 껍질 하나까지 내가 직접 손질하는 일, 너무 더워 지쳤을 때 하늘 뚫린 듯 내리는 비를 보며 대화하는 일, 변하지 않는 계절 속에서 계절의 변화가 주었던 시간 흐름의 감각을 되짚어 보는 일과 같은 것들과 함께 살아내고 있다.

양극단을 달리는 두 곳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나에게 많은 과제와 함께, 끝이 없는 것 같은 세상의 넓이를 자꾸 비춰준다. 그 속에서 나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학교에 출근을 하고, 잠을 청한다. 이곳에서의 나는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소박한 고민들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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