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은 12000원, 영어공부는 덤!
영국 런던 아래쪽에 위치한 바다의 도시 브라이튼.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게 햇빛이 강한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첫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총 6개월 동안 영국에 있었는데, 첫 2개월은 적응도 하고 친구도 사귀며 조금 놀기도 했지만 주로 공부를 하며 보냈다. 시험 영어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영어로 말은 기본적인 표현 외에는 할 줄 모르는 상태로 떠났기에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영어가 안되니 깊은 인간관계도 만들 수 없었고, 무엇보다 자신감 없는 내 모습이 너무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은 후에 집에 가서는 영국 드라마를 보며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고, 당시 그나마 친했던 친구 한 명을 따라다니며 그 친구가 하는 모든 말을 순간순간으로 분석하고 외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개월을 보내고 나니 소통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영어만 조금 늘면 교환학생 생활이 조금은 더 순탄해질 줄 알았는데, 웬걸! 돈이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 가는 거다. 처음에 교환학생을 떠날 때 부모님께서 한국 통장으로 부쳐주신 돈이 있긴 했는데, 영국 생활은 생각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었고 잔고는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시간이 너무 많았다. 교환학생은 시간이 정말 많이 남는다. 외국인 학생이 들을 수 있는 학점이 정해져 있어서, 많은 시간 수업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은 많이 여행도 다니고, 영국 생활을 즐기곤 하는데, 나는 그럴 돈도 없었을뿐더러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유학생활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컸고, 무서웠다. 나름 내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왔는데 영어도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난 외국생활을 즐기러 온 게 아니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알차게, 가성비 있게 보낼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아르바이트가 떠올랐다. 아르바이트라니, 내 고민들의 탈출구가 될 것 같았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영어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니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 뒤로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 이력서를 돌렸다. 최종적으로 두 곳에서 연락을 받았고, 그중 시급이 더 높았던 라이스 보울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영국의 최저시급이 약 7.5파운드(약 1만 1천 원)였는데, 이 가게에서는 나에게 8.5파운드(약 1만 2천5백 원)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영어도 잘하지 않는 나에게 왜 8.5파운드를 줬겠는가. 내 일은 남들보다 힘든 일이었다. 바로바로 주방보조! 주 20시간 내내 버섯을 썰고, 당근을 삶고, 바닥도 쓸고, 설거지를 했다. 돈은 벌고 있었지만, 영어도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처음에는 돈이라도 버는 게 어디냐며 감지덕지한 마음과, 같이 일하는 셰프님, 다른 주방보조와 영어로 대화하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나는 더 많이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원하게 됐다. 처음엔 돈이 주목적이긴 했는데, 이젠 그 아르바이트 시간에 영어 연습도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이 강력하게 생겼다. 줄어들어가는 영국에서의 시간들이 아까웠다. 더 공부하고 더 영어를 익히고 싶었다. 그리고 계단 너머로 보이는 홀을 보았다. 그곳은 손님들과도 이야기하고 서버들끼리 자유롭게 대화도 많이 하는 곳이었다. 보면서 다짐했다. 나도 가야겠다.
며칠 뒤 나는 매니저에게 은근슬쩍 홀에 자리가 있는지, 사람은 어떻게 뽑는지를 물어보았다. 눈치가 빨랐던 아일랜드인 매니저는 홀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나의 낌새를 알아채고, 현재는 자리가 없기도 하고, 홀은 손님들과 대화도 잘해야 한다며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그 뒤로 그에게 ‘나도 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어!’를 보여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일단 충분한 영어실력이 안됨을 인정하고, 학교와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식당 영어 표현들을 다양하게 찾아 계속 암기하고, 발음 연습에 만전을 기울였다. 어쨌든 일하면서 쓰는 말들은 비슷하기에 이것을 다 암기하고 나면, 얼마나 자연스럽게 영어를 말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서였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이 직원은 어떤 표현을 쓰는지, 어떤 억양으로 말하는지 항상 귀를 곤두세우고 머리를 굴리며 그 순간에도 암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일자리에선 절대 늦지 않는 것, 꼼꼼히 하는 것, 다른 동료들과도 잘 지내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면에도 충실했다.
한 달반쯤 지났을까, 매니저가 나에게 조심스레 홀 서버 대타를 제안해왔다. 대타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네가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그 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 나는 홀 서버로 일하게 됐고, 시급은 8파운드로 주방보조에 비해 0.5파운드가 내려갔지만,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며 입을 닫고 있지 않고 손님들과 계속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고, 같이 일하는 홀 서버들과도 쉬는 시간엔 끝없는 수다의 장을 열었다. 당시 영국, 스페인, 아일랜드, 폴란드, 일본, 브라질 국적의 다양한 직원들이 있었고, 정말 즐겁게 일을 했다. 사실 교환학생을 하며 영어를 배운 것보다 홀 서버를 하며 배운 게 더 많은 것 같다. 학교 가는 건 별로 즐겁지 않았는데 일하러 가는 건 즐거웠다. 돈까지 주니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좋은 일자리를 구했던 덕에 굶지 않고 남은 영국 생활을 하고 올 수 있었다. 공부도 해야 했고, 일도 다녀야 했고, 나름 중간중간 놀기도 해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처음 영국에 갈 때 들고 갔던 ‘혹시 이 유학생활이 망하면 어쩌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오면 어쩌지, 영어가 하나도 늘지 않으면 어쩌지’하고 걱정했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아득했는데, 이 이야기를 과거형으로, 그리고 극복한 이야기로 풀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은 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