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주고받은 카톡으로 풀이한 일상의 고민들, 그 시리즈의 시작!
내가 초등학생 때, 꽤나 유명했던 일상 개그 만화가 있었다.
어떤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회사원으로 나오는데, 사회생활에 치인 후 집에 돌아오며 한탄을 한다. '대체 삶이 뭐길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라고.
그렇게 중얼중얼 불평을 하며 소주 한 잔 하기 위해 포장마차로 들어섰는데, 메뉴에 '삶은 계란'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본 주인공은 '삶은 계란이었구나!' 하며 다소 허망하게(?) 그 에피소드가 마무리가 되었었다.
하지만 힘든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작가의 노력과, 삶은 계란이라는 단순한 단어를 쪼개어 볼 수 있었던 센스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삶이란 정말 무엇일까?
삶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러 답이 있을 것이고, 정답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답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미는 정말 없었겠다.)
오늘은 '삶은 계란이다.'로 삶을 풀이해보자.
첫 번째, 계란은 일단 치면 깨진다. 끝이 있다는 의미다. 또한 우리는 계란을 가끔 실수로 깨뜨린다. 깨뜨려는 나의 의도는 하나도 없었을지라도, 계란은 종종 깨져버리고 만다.
삶도 끝이 있다. 또한 우리는 잘 살아보려고 해도, 누군가의 혹은 어떤 것의 타격으로 인해 와장창 깨져버리곤 한다. 깨지고 또 깨진다. 이렇게 여러 번 시련을 당했으면 좀 시련에 강해질 법도 한데, 어쩐지 그것도 쉽지가 않다. 시련이나 타격엔 항상 아프다. 자주 깨졌다고 해도 강해지지 않는 계란 껍데기처럼.
두 번째, 계란은 동글다. 동글동글해서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간다. 살짝만 힘을 줘서 움직이면 여기저기 구석구석 가곤 한다. 오른쪽으로 힘을 줘서 밀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힘을 줘서 밀면 왼쪽으로 움직인다.
삶도 동글다. 동글동글해서 이리도 갈 수 있고 저리도 갈 수 있다. 무엇이든 하러 갈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무엇이든'의 의미는, 단순히 '원하는 일 뭐든지'와 같은 그런 낙관적인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볼 수 있다. 태생과 동시에 내가 가야 하는 분야가 정해지지도 않았고, 내가 갈 수 없는 분야 또한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내가 갈 수 있는, 나와 맞는 길들을 찾아서 계란처럼 이리저리 둥글게 세상을 굴러볼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모양, 똑같은 구성물질(흰자와 노른자)을 갖고 태어나지만 굽느냐 삶으냐 튀기느냐에 따라 다른 요리가 된다. 어쩌면 그저 평범한 계란 프라이가 될 수도,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나 나올법한 엄청난 계란 요리가 될 수도, 내가 어떻게 삶을 지지고 볶느냐에 달렸다.
이렇게 얘기하면 미슐랭 3 스타의 계란 요리(성공한 삶)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고, 평범한 계란 프라이는 그저 별 볼 일 없는 것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계란 요리라도 '이런 레스토랑에서 계란 요리가 뭐냐' 고 한다면, 오히려 보잘것없는 계란 요리가 되는 것이고, 그저 혼자 있는 자취방 냉장고에서 꺼내 따끈한 햇반과 먹은 계란 프라이라도 정말 맛있는 반찬이 될 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어리지만(?) 커가면서 미세하게 조금씩 점점 느끼는 건, 나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잉여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나의 가치를 얼마나 찾느냐 같은 것들 말이다.
필자가 만나본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개의치 않아함'이었다.
그 사람들은 주위 사람이 동네 가장 비싼 땅을 사도 배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인생을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개인의 삶을 그 자체로, 그리고 내 삶도 이 자체로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 보였다.
제 아무리 남들이 성공했다고 하는 삶을 살아도(흔히 말하는 높은 연봉들이 되시겠다)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실제 KBS 스페셜 <행복해지는 법>에서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 월급 430만 원까지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돈과 비례하게 높아지지만 그 이상인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돈과 관계가 없음이 밝혀졌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업하는 아버지를 옆에서 20년간 지켜본 결과, 돈을 많이 벌수록 고민도 늘어나더라.(물론 일반화는 하고 싶지 않지만 통계자료를 보니 어느 정도 대체로 그렇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돈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그 이후의 행복은 그 무엇도 보장해주지 않아 보인다.
행복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도 일종의 강박 같아서.
일상의 엄청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일단 내 시간을, 내 인생 자체를 소중히 여겨보는 건 어떨까.
내가 이 삶을 온전히 즐기다 가면 되는 것이라고 얘기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는 남들을 쫓아가기만 하고, 비교하기만 하는 인생에서 조금씩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