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Jan 09. 2020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두려움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동티모르에서의 삶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여유롭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 해야할 일도 많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누가 하라고 부추기는 일들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즐길거리와 놀거리가 없단 뜻이고, 해야할 일이 적단 뜻은 봉사단원에게 엄청나게 크고 많은 일이 주어지지 않는단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누가 하라고 부추기는 일이 없단 것은, 스펙을 위한 공부를 가르치는 것들이 하나의 큰 사업분야가 되어 끊임없이 20대들의 호주머니를 위협하는 일이 없단 것이다.


대학에 다니면 수 많은 광고를 보게 된다. 학내에서, 외에서 또는 들리는 이야기들로, 여기 학원에 누가 토익을 잘 가르친다, 이 학원에 가야 점수가 잘나온다, 요즘은 이런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더라, 이것도 공부해놔야 한다더라, 이 사람에게 가서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더라 등등.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의 높은 실업률과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불안심리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과도하게 20대의 돈을 앗아가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자본주의적 느낌이라곤 들지 않는 동티모르에 와서 있으니, 나 이런 여유로움을 즐겨도 되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때가 있다. 난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맞는걸까, 나 한국가면 많이 뒤쳐져 있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들이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했고 나를 불안감으로 더 감쌌다. 그냥 여기에 적응하면서, 천천히, 적당히 하라는 사람들의 조언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마음 편한 소리 하는 것 처럼 들렸다. 내 마음 속에선 자꾸만 이 아무도 부추기는 거 없는, 바삐 살지 않는 이 생활이 의미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쉬는 건 마치 사치인 것 처럼, 내 스펙에 도움되지 않는 활동을 하는 건 모두 의미 없는 것이라고... 불안감은 커져갔고 내가 여기 있는 게 옳은가에 대한 의문까지 들었다. 이 시간이 과연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자꾸 산술적으로 따지려고 들었다. 간간히 들리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나에게 자꾸 조급함을 줬다.


이 곳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행복했다. 여유도 좋았고, 내가 여기서 하는 일들도 좋았고,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어 감사했고, 다양한 삶들을 볼 수 있어 다채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삶에 집중할 때는 그런 생각이 안들었는데, 한국의 삶을 볼 때마다 여유롭고 즐거운 일은 내 미래 도움 하나 되지 않는 스펙으로 작아졌다. 이 고민이 심각해질때쯤엔 정말 한국행을 고민했다. 나도 얼른 가서 공부해야하는데, 영어공부에, 취업준비에, 대기업 분석에, 자소서에....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고민도 털어놓고, 여러 생각도 공유했다. 한 친구가 나에게 의미있는 조언을 해줬다.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거 아닐까? 너가 정말 여유로운 삶에 퍼져 안주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정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는 게 좀 뭐 어때? 포기하는 것도 용기잖아. 난 너가 포기를 하든, 거기에서의 삶을 지속하든, 어떤 결정을 하던지 간에 그게 네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아. 사람들은 갈림길에 섰을 때, 선택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해. 선택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선택을 하고 나서 그뒤로 어떻게 사냐, 그 선택 후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어? 너라면 무슨 선택을 해도 어차피 그 뒤를 잘 헤쳐나갈거야.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하지마.”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인생은 B와 D 사이에 C(Choice)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해서, 선택을 하고나서도 이게 맞는 선택이었나 아니었나를 고민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보내왔다. 선택에 후회를 안 한적이 없었고,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를 궁리해보기도 했고, 선택 이후의 내 길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왔던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이 생활을 최대한 즐기며, 배우고자 하는 것들을 찾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돌보며, 또한 가끔은 게으르게 보내고 있다. 이 생활에 집중해보니 이 삶 그대로 매력있고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임을 알았다. 오늘도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더 행복하게, 더 집중해서.



작가의 이전글 하기 싫은 일을 매일 할 수 있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