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아보면서 내가 배운 것
에어비앤비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문구가 히트를 친 뒤,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듯 한 달 살기는 새로운 여행의 트렌드가 되었고, 많은 한국인들이 휴식, 재미, 혹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동남아 혹은 유럽으로 한 달 살기를 떠나고 있다. 한 달 동안 외국에서 산다는 건 비용면에서나 체력면에서나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또한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한 달씩이나 시간을 내는 건 큰 결심이 따라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짧은 여행이 아니라 '외국에서 살아보기'에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작년 8월 인도네시아 근처에 위치한 동티모르라는 나라에 봉사자로 와서, 현재 7개월째 여기에 살고 있다. 물론 여행으로 한 달 살기와는 분명히 목적이 다르지만, 그래도 동남아에 7개월 넘게 살면서, ‘외국에서 살아보기'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단계별 고찰을 좀 해봤다.
결론적으로 나는 '살아보기'의 매력이 시간의 흐름이라는 주제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한 성장이랄까. 처음엔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 안 보였던 것을 보게 되는 것 같은 재미랄까. 거창하게는 인생의 교훈이라고 할까.
첫날 동티모르에 도착했던 날이 아직 생생하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마트로 내려가 구경을 하는데, 정말 구경하는 내내 '여기서 뭘 먹고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없는 게 너무 많았고, 고기나 생선은 모두 냉동이며 위생관리는 하나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대단한 결심 끝에 하나씩 도전해본 결과 지금은 무슨 재료를 줘도 어떻게든 먹을 수 있게끔은 요리를 해낼 수 있게 됐다. 내가 만약 단순히 며칠 머무는 사람이었다면 그 마트에서 재료를 사 요리를 한단 생각 조차 안 했을 것 같다.
아시아 최빈국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동티모르는, 그 수식어에 대답이라도 하듯 없는 것들이 정말 많다. 참 다양하고 신박하게 없다.
단순히 아침마다 먹었던 요거트 볼이 떠오른다. 여긴 그런 요거트를 팔지 않는다. 그래서 요거트가 먹고 싶을 땐, 우유와 식초를 사 직접 끓이고 면포에 걸러 요거트를 만든다. 베이커리는 당연히 없다. 빵이 먹고 싶으면 내가 직접 빵을 굽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게 생활이 되다 보니 나는 무언가를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 레시피부터 찾고 필요한 재료들이 이 곳에 파는지부터 따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에서 간편하게 이용했던 배달, 택배, 인스턴트식품들을 잊어가고 있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적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살아본다는 것은 이렇게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일까 하며, 이런 생소하고 열악한 환경에 떨어져도 잘 먹고 잘 살아내는 나를 보며 칭찬의 엄지를 들어주고 싶어 진다. 그래, 나 어쩌면 좀 더 강한 사람일지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강해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걸지도. 막 이렇게.
여기 살아보지 않았다면 하지 않아도 됐을 적응. 생존능력의 향상. 여기까지 살아보기의 매력 첫 번째이다.
매력 두 번째, 오래 살아야만 볼 수 있는 계절의 흐름 혹은 멈춤. 여행자는 볼 수 없는, 살아보기의 또 다른 매력이다. 물론 동남아는 항상 덥기 때문에 계절의 흐름보다는 멈춤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있다. 내가 여기 7개월째 살고 있다는 것은 7개월째 반팔을 입고 있단 말이기도 하다. 즉 같은 옷들을 7개월째 빨고 말리며 돌려 입고 있단 거다. 또한 계절에 따라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없고, 그 계절에 맞게 하는 일들이 없다. (그래서 좀 게을러진 것 같다고 하면 핑계인가요?)
봄이 오기 시작하면 겨울 옷을 정리하고 가벼운 옷을 꺼내는 것, 꽃이 피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추위가 이를 시샘해 잠시 찾아오는 것, 벚꽃놀이 일정을 체크하는 것. 여름이 오기 시작하면 에어컨을 청소하고 홑겹으로 침구를 바꾸는 것, 여름휴가 장소를 서칭 하는 것, 작년이 더 덥네 올해가 더 덥네를 따지는 뉴스를 보는 것. 가을이 오기 시작하면 짧아지는 해를 보며 또 이렇게 더위가 가는구나 하며 단풍놀이를 가는 것, 천고마비의 계절에 맞게 식도락을 계획하기도 하는 것.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전기장판을 꺼내는 것, 춥다 춥다를 읊조리며 손을 비벼대는 것, 첫눈을 같이 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꺼내는 남녀들이 있는 것.
그런 것을 다양한 환경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7개월째 3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서만 살면서 문득문득 가슴속에 들어온다. (아,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계절의 흐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한국에 있을 땐 한 달, 한 달이 넘어갈 때마다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했는데, 여긴 그런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멈춰있는 어떤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호모 사피엔스라면 마땅히 본능적인 느낌뿐 아니라 휴대폰 캘린더의 숫자가 커지는 것을 보고도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계절의 흐름은 시간이라는 개념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멈춘 계절을 알게 해 준 ‘살아보기’. 며칠만 여행했다면 그냥 ‘참 덥고 습한 나라’ 정도로 생각했을 텐데.
셋째로, 그곳이 아무리 살기 안 좋은 나라라고 하여도, 좋은 나라라고 하여도 어쨌거나 처음은 다 흥미롭기 때문에 즐겁다는 것. 하지만 곧 단점은 서서히 고개를 든다는 것이다. 재작년엔 영국에서 6개월 동안 교환학생을 했다. 교환학생을 시작하고 한 두 달은 정말 신났었다. 앤틱 한 느낌이 나는 건물들도 좋았고, 깔끔한 공원들이 많은 것도 좋았고, 그와 동시에 화려한 도시의 모습들도 좋았다.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던 작품들을 공짜로 보러 다닐 수 있는 것도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두 달쯤 지나고 나니 어려운 점들을 마주하게 됐다. 터무니없이 비싼 물가, 대놓고 차별하진 않지만 그 속에서는 날 아래 로보고 있는 인종차별, 유학생을 돈으로만 보는 것 같은 학교들의 등록금 정책, 겨울이 되니 드러나는 영국 특유의 어두운 날씨, 유명한 작품들을 박물관에 깡그리 모아 놓을 수 있었던 제국주의적 역사, 그들이 가진 오리엔탈리즘, 옐로 피버 등...
동티모르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동티모르의 마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난 다 즐거웠다. 안이 훤히 보이는 파란 바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 저렴한 현지 시장의 물가, 미세먼지라곤 없는 것 같은 노을 풍경, 날 반겨주는 사람들,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한 발짝 떨어진 것 같은 현지 삶의 모습까지.
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 오염되진 않았지만 위생관리가 하나도 되지 않는 것, 야채를 제외하고는 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비싼 공산품, 심한 캣 콜링, 외국인은 돈이 많지 않냐며 무작정 비싼 값을 요구하는 사람들, 외국인 여성으로서 사는 데 큰 어려움을 주는 구석기시대 때나 존재할 법한 성차별 등...
어느 곳이나 쌩 처음엔 어려울 수 있어도 대체적으로 초반에는 신기하고 흥미롭기에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단점은 존재하고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예전에는 선진국에 대한 동경, 좋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오래 살아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유럽, 북미, 호주... 그러면 나에게 좀 더 좋은 삶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엔 그렇지가 않다.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특정히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다양한 곳을 가보고 싶다.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싶다. 그곳이 어디든 배울 것이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것들이 보인다는 걸, 아무리 좋은 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적으로 좋을 수는 없다는걸, 어려움은 생각지도 못한 모양으로 어느 곳에서나 튀어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철 없던 과거의 저는 그걸 몰랐더랩죠)
그렇다 보니 좋냐 나쁘냐의 질문을 들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영국이 좋았느냐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었다. 동티모르가 좋으냐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나의 마음과 상황이 어떤지가, 그 나라가 좋냐 나쁘냐를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이젠 내가 “어떻게” 나를 데리고 사느냐가 더 중요해진거다.
(Ps. 한국은 정말... 좋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