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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Feb 20. 2021

모녀 데이트의 기록

딸, 졸업축하해!

지난해, 첫째 유치원을 그만둘까 고민하던 시기에 '유치원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결론을 내고 첫째를 설득해 결국 퇴소를 했다. 코로나로 가정보육을 하는데도 다달이 빠져나가는 유치원비를 보며, 이 돈으로 더 맛있는 거 사 먹고 더 재밌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첫째를 설득할 때 동생 없이 엄마랑 데이트하자고 했는데 오늘이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둘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날. 첫째 하고만 반나절을 함께 했던 지난 한 달이다.




조심스레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돌아온 첫날, 동생이 없어 너무 좋다며 밝게 웃던 네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 집에 오자마자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레이디버그>를 시청하던 너.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슬라임을 꺼내 조물조물거리던 너의 손. 유튜버가 된 것 마냥 종알종알거리던 너의 입.

엄마가 노트북을 켜고 글쓰기를 하겠다고 하니 너도 아빠 방에서 노트북을 들고 왔지. 엄마처럼 하고 싶다기에 한글타자연습을 알려주니 의욕 넘치게 따라하더라.


우리 동네에서도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어 외출할 일이 있을 땐 최대한 오픈 시간을 활용했어. 동생을 보내고 오전 9시가 지난 시간에 카페 구석 자리를 차지했지. 너는 사과주스, 나는 커피. 오전 10시에 키즈카페 첫 손님이 된 너는 드넓은 곳을 원 없이 뛰어다녔고 작아진 너의 바지를 새로 장만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가 오전 11시에 중국집 첫 손님으로 들어갔던  기억하지? 10층 식당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간판을 구경하며 저건 외할머니 이름이랑 비슷하고 저긴 뭐하는 곳이냐며 물었어. 너는 짜장면을 나는 굴짬뽕을 먹었는데 며칠이 지나서그때 먹었던 짜장면이 또 먹고 싶다고 몇 번 이야기하더라. 분위기가 좀 편안해지면 아빠랑 동생이랑 같이 가자.


또 어느 날은 마트에 갔다가 엄마 점심으로 먹으려고 사온 연어초밥을 먹어보더니 눈을 그랗게 뜨며 맛있다고 했어. '나도 사탕 말고 그거 살걸'이라며 후회하는 너를 보는데 엄마는 너와 즐길 수 있는 메뉴가 하나 늘어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다음엔 초밥집 가면 우동 말고 연어초밥 주문해줄게!


오늘도 어제부터 기다려온 롤라장에 오픈 시간 맞춰 왔는데 폐업을 했을 줄이야. 엄마가 미리 전화라도 해볼걸 그랬네. 어떡하지? 뭐하고 싶냐는 물음에  키즈카페에 가겠다고 해서 다시 차를 돌렸어. 역시나 이번에도 첫 손님이었고 뒤이어 들어온 동갑내기 친구와 금세 어울려 는 널 보며 '내 딸 참 많이 컸구나' 생각했어. 네가 신나게 잘 놀아준 덕분에 엄마는 편안히 책을 읽었지. 정말 고마워.




지난 한 달, 넌 어땠어? 누나라서 동생 돌보는 스트레스가 있었던 거 알아. 동생 없이 엄마랑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다는 사실이 너에게 기쁨이었으면 좋겠어. 나중에 떠올려도 기분 좋아지는 추억 말이야. 엄마도 제법 친구 느낌이 나는 딸과 모녀 데이트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거든.


동생이 어린이집 졸업한다는 사실에, 다니던 유치원 친구들이 졸업했다는 사실에 너도 졸업장이 받고 싶다며 엄마한테 만들어 달라고 했지? 엄마가 주말에 만들 테니 우리 수여식 갖자.

"내 딸, 졸업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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