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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Feb 16. 2021

텔레비전과 멀어진 이유

새로운 루틴을 실행하다

육퇴 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그 날의 피로를 풀던 나는 최근 텔레비전과 멀어졌다. 애들을 재우고 나오면 늘 거실로 향하던 내가 이젠 안방으로 향한다.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없다.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나는 영어공부도 브런치도 놔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연휴, 나의 20년 지기 친구 집에 잠시 들렀다. 내 앞엔 커피, 친구 앞엔 맥주. 텔레비전 소리를 세 번째 친구 삼아 수다를 떨고 있는데 화면에서 호주 태즈메이니아가 나온다.

"마침 호주가 나오네."

"아, 호주 가고 싶다."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진 내 친구. 친구 남편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단다.

"○○이랑 친해?"

친구 남편의 입장에서 술은 입에도 못 대고 카페에서 책 읽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그런 나와는 달리 살아온 친구가 어울리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나 보다.

 달라 보이는 우리가 어느 날 MBTI로 수다를 떨다가 같은 유형인걸 알고 서로 놀란 경험이 있다.


20대 초중반,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며 첫 해외여행을 홀로 떠났다. 함께 가자고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몇 달 뒤, 그 친구도 호주엘 왔고 나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친구를 찾아가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호주 가고 싶다'라고 뱉은 말 우린 마흔다섯에 떠나기로 했다. 마흔다섯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오십은 너무 멀게 느껴졌을 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닌데, 꼭 가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 순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호주로 여행을 떠나려면 경비가 필요하고 의사소통까지 원활하다면 더없이 멋진 여행이 되리라. 더듬더듬 제자리였던 회화실력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당장 어플을 깔고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여행경비를 내 손으로 마련해보자는 생각에 몇 년 전부터 남편이 권유했던 주식에 발을 들였다.

내가 이토록 일사천리로 무언가를 실행했던 적이 있던가? 영어공부도 주식도 몇 년간 마음뿐이었는데 말이다.

애들이 확실히 잠들었을 시간인 밤 열 시로 영어 어플 알람을 설정했기에, 브런치에 올릴 글 몇 자라도 적어 놓아야 했기에 밤 시간을 절대적으로 활용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기가 부여되고 의지가 타오르니 텔레비전과 아무 미련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고요한 방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고 브런치 서랍에 몇 자 적어놓는데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꽤 좋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보던 날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는 좋은 변화도 생겼다.

텔레비전과 다시 만날지언정 육퇴 후의 발걸음이 늘 안방으로 향하길, 일사천리 이뤄진 나의 새로운 루틴이 오래오래 유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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