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랑 Sep 30. 2024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인이 밸 정도로 들었던 탓일까.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워도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은 채 짊어지고 가는 부분이 있는 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리라. 그만큼 굳어버린 습관이나 관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신상의 큰 변화나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의 사건, 사고가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20년 전의 나와 10년 전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20대 이후 넓어진 인간관계, 달라진 생활 반경, 결혼과 육아 속에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상처받고 실망하기를 반복한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달라진 부분이 상당수다.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 성인 네 명과 초등학생 두 명이 만드는 명절 풍경은 적당히 소란하다 급격히 적막이 흐르기도 하며 살짝 심심하지만 제법 편안한 모습이다.

추석 전날, 아이들 아침 식사를 챙기고 청소기를 돌린 뒤 시부모님 댁에 갔다. 평소 허리가 좋지 않으신 시어머니는 복대를 차고 계셨고 남편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네가 앉아서 매느리랑 좀 해라."

그 순간 나의 표정은 어땠을까? 부모님 집에 오면 선택지가 '눕거나 자거나' 두 개뿐이었던 남편이었고, 그런 아들에게 고작 높은 곳에 있는 전기 프라이팬 꺼내는 일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던 시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에 신이 났다. 감동 비슷한 것도 느꼈었나? 쾌재까지는 아니어도 입꼬리 정도는 살짝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결혼 13년 차 명절에 처음으로 마주 앉아 전을 부쳤다.


달라진 건 시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추석날, 제사를 지내고 아침 식사를 끝냈다. 으레 식사 후 뒷정리는 나와 시어머니의 몫이었기에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섰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은 작은방 침대로 향해야 마땅한데 다 같이 정리하자며 주방으로 진입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남편은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제기 정리까지 끝냈다. 이제는 정말 '자거나'에 충실해야 할 시간. 그러나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카페에 갈 거라는 나를 따라나섰다. 넷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남편이 솔선수범하니 아주 좋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어떤 연유로 달라진 거냐고 물었을 때,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답변 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달라진 남편의 모습은 언제나 환영이다. 다음 명절에도 이렇게 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려니 받아들였던 것들에 금이 가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100%의 확률이 아니며 사람은 달라지고 고쳐진다. 긍정적인 변화가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이 일어나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작가의 이전글 우리 적당히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