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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Apr 07. 2021

후회해도 소용없어

딸의 귀여운 후회

지난달 첫째가 학교를 며칠 쉬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 부는 날들이 이어지는 3월이었고 아침 날씨에 알맞게 옷을 입고 등교한 첫째는 오후에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외투를 벗어던지기 일쑤였다.

"안돼, 바람 불잖아. 감기 걸릴 수도 있어."

"아, 괜찮아. 나 덥단 말이야."

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어서였을까? 기어코 첫째에게 감기가 찾아왔고 코를 풀어대는 녀석은 목도 따갑다고 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계없이) 임상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등교하지 못하기에 병원 진료를 보며 다 나을 때까지 집에서 쉬게 되었다.

학교에 안 간다고 좋아하던 녀석은 피아노 학원까지 못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엄마 말 들을걸. 괜히 옷 벗고 놀았네."라며 후회 섞인 말을 몇 번이나 내뱉었다.




첫째의 '대표적인 후회 사건'은 또 있다.

여섯 살 가을부터 앞머리가 없는 단발머리에서 시작해 앞머리가 있는 단발머리를 유지하던 첫째가 본격적으로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파마를 하고 싶다기에 머리 길러서 여덟 살이 되면 해주겠노라 약속을 하고 작년 한 해 더디게 자라는 머리카락을 참 열심히도 길렀다.

드디어 여덟 살이 되었고 이제 파마하는 일만 남았는데 아빠와 동생이 이발하러 간다고 하니 자기도 머리(카락)를 자르겠단다. 얼마나 달랬는지 모른다. 머리 자르면 파마 못한다, 다시 이만큼 기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고 결정해, 머리 자르면 후회할걸? 등등 이 날 만큼은 남편과 한편이 되어 딸의 머리카락을 사수하기 위해 갖가지 말들을 쏟아냈다. 결국 설득에 실패하고 우리 집 부자가 다니는 남성 전용 미용실에 들렀다가 딸이 다니던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셋이 먼저 가서 하고 있으라고, 나는 하던 집안일을 마저 끝내고 뒤따라 가겠다 해놓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사진을 보냈다. 첫째의 단발머리 사진이다. 남성 전용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여자 사장님이 오랜만에 여성의 머리를 자르고 싶으셨던 것일까? 딸의 머리를 공짜로 잘라주셨다고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가 없는 법인데 집에 돌아온 딸은 날 보자마자 이렇게 내뱉는다.

"아 머리 자르지 말걸. 엄마 말 들을 걸."

"거봐. 너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그러게 엄마 말을 들었어야지."


1월에 단발머리로 돌아온 첫째는 지금까지도 아침마다 내뱉는다. 내가 거울 앞에서 머리 손질이라도 하고 있으면 엄마의 곱슬거리는 긴 머리가 꽤나 부러운 모양이다.

"아 머리 괜히 잘랐네. 엄마 말 들을 걸."




딸의 후회를 느끼며 나의 후회를 잠시 생각해 본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다른 대학을 갔더라면? 호주에 있을 때 영어공부를 좀 더 전투적으로 했더라면? 전 직장 상사가 불러주셨을 때 다시 방송 관련 일을 했더라면? 과거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글쎄......? 내 주변의 것들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나'라는 사람은 결국 육아를 위해 퇴직을 선택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두 아이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

순간의 후회들이 인생을 뒤바꿔 놓을만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딸의 후회는 그저 귀여운 에피소드일 뿐이고 난 단발머리가 연예인 뺨치게 잘 어울리는 내 딸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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