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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r 31. 2021

장난꾸러기는 유전인가?

즐거운 상상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둘째의 머리가 흠뻑 젖어 있다. 하원 버스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녀석이 비몽사몽 한 채로 유치원 가방에서 쿠키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우와, 이거 어디서 났어?"

"슈퍼에서 샀어."

"슈퍼에 갔었어?"

"김○○선생님이랑 박○○선생님이랑 이마트 갔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쿠키는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파는 건데......) 진짜? 새싹반 친구들 다 같이 간 거야?"

"응!"

"어떻게 갔어? 유치원 버스 타고 갔어?"

"응! 엄마, 친구들은 껌 사면 안되는데 껌 사더라?"

"그럼 껌 사지 말고 다른 거 사라고 하지 그랬어."

"아니, 내가 말했는데 안 듣더라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온다. 이제 울지도 않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였다. 같은 반에 아직 우는 친구가 있는데 둘째가 가서 "울지 마" 하며 안아주고 "예쁘다" 하며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 둘째가 귀여웠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께 물었다.


"○○이가 이마트에 갔었다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어머님, 주원이가 꿈꿨나 봐요. 다른 친구가 나눠 먹싶다고 가져온 거예요."


아니 쿠키 하나 받아놓고 그런 장면을 상상해서 말해주다니. 이 작은 녀석이 엄마한테 장난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둘째야, 너 너무 귀여운 거 아니니?




남편이랑 결혼을 약속하고 남편의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함께 나간 적이 있다. 여자 동창생들이 과거 남편의 만행을 폭로하는 바람에 한참을 깔깔거린 기억이 있는데 들어보니 남편은 반에 으레 한 명 씩 있는 여자애들 괴롭히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이름을 가지고 놀렸다고 하는데 이름의 성만 부르거나(예를 들면 화장실에서 만나는 그것들의 끝 글자) 이름의 한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면 그만 일 텐데 그게 어려웠던 열세 살의 여학생들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급기야 학급회의의 주제로 남편 이름 석자가 선정되었던 사건. 실제로 남편은 동창모임에서 공식 사과를 올린 적도 있다고 했다.


아, 장난꾸러기도 유전인가? 시아버지도 손주들에게 그렇게 장난을 치시다 결국 울리고 마는데 그걸 남편이 닮고 우리 아이들이 닮았구나! 남편이랑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남자랑 결혼하면 심심하지는 않겠다'였는데 첫째와 둘째를 보며 아빠의 장난꾸러기 유전자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아,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구나. 


최근 읽은 책에서 본 문장이 떠오른다.

'상상은 그 어떤 것도 가능해야 한다. 상상에는 어떤 도덕도 윤리도 개입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야, 다음에도 즐거운 상상 기대할게. 엄마한테는 마음껏 장난쳐도 언제든 OK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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