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랑 Mar 21. 2021

네가 행복하길 바라

다 필요 없고, 그저 행복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중 몇몇과는 대화가 쌓인다. 며칠 전 둘째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엄마 셋이 집 앞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마스크 쓰고 있는 모습만 보다가 마스크 벗은 모습을 보니 흠칫 어색한 기분이 든다. 엄마 셋 모두 아들이 있고, 다섯 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공통점에 대화가 이어지며 카페에 머무를 수 있는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새로 알게 된 엄마가 했던 말이 계속 뇌리를 맴돈다. 고3인 큰 조카가 행복하다고 다는 말, 중학생인 작은조카가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작은조카마저 잘못될까 봐 걱정했던 적이 있었다는 말.

'행복'과 '자살'이라는 단어에 멈칫해 아이의 '행복'을 가늠해 본다.

내 아이는 행복할까?

내가 아이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감정에 솔직한 엄마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생기진 않았을까?

동생의 존재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는데 내가 나서서 풀어줘야 하나?

글자를 다 읽을 줄 알면서 책은 왜 읽어달라고만 하냐며 다그쳤는데 그냥 둬야 하나?

매일 수학 문제 두 장씩 풀기로 약속했는데 탱자탱자 놀기만 하고 안 지킬 때면 '그럼 그렇지'의 눈초리를 보냈는데 속상했겠지?


내가 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야, 좀 조용히 하자"

흥에 넘쳐 목소리가 높아지고 노랫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하다. 아빠가 퇴근하고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면 좋아서 괴성을 지르며 달려간다. 나와는 다른 성향의 딸이 조용히 있고 싶은 나의 바람을 시도 때도 없이 깨부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톤을 좀 낮춰달라고 말해보지만 그때뿐, 나의 곤두선 신경을 잠재우는 데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 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딸이 듣기 싫었을 그 소리는 접어두겠노라 다짐한다. (나의 시각에서)요란한 일상을 보내기를 좋아하는 내 딸의 행복지수를 나 편하자고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오랜 친구에게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내 아이들이 잠자리 독립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도 2층 침대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던 친구였다. 잠자리 독립은 성공했냐는 나의 질문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첫째(친구와 나는 아이 둘을 모두 같은 해에 낳았다)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불안증세가 나타나 상담받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답한다. 친구의 딸은 상담을 받으며 많이 좋아졌지만 며칠 동안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던 내 친구는 피검사에 X-ray까지 찍고 나서야 스트레스성 복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 2주가 무척 힘들었다는 친구에게 모녀가 고생 많았겠다, 마음 편하게 먹자며 만나는 그 날까지 아프지 말라는 위로(가 됐을지는 모르겠지만)를 건넸다.

친구의 안부를 묻고 보니 다시 내 딸이 떠오른다. 그저 고맙다. 학교는 쉬는 시간도 없고 친구들이랑 대화도 못해서 재미없다고 말은 하지만 같은 반 친구들 22명의 이름을 어느새 다 외우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들어 주는 딸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내 딸이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학교생활이 분명 즐거워 보인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말했다.

"우리랑 세대가 달라.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잖아. 내 아들 유튜버 한대. 그냥 너 행복한 거 하라고 했어"

"진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 초등 때 기초 기본교육까지는 확실하게 잡아줘. 중등부턴 자기 팔자지."

"나 다른 학교에 있을 때 6학년 아이 투신자살했어. 그냥 예쁘게 키워. 그게 최고야. 미래 내 며느릿감"


대한민국 12년 교과 과정의 첫 발을 내디딘 내 딸이 이 긴 시간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앞으로 쌓일 시간들에 나의 말이나 행동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언젠가 내 딸에게서 "엄마, 나는 정말 행복해."라는 말까지 들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유치원 막내가 된 둘째를 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