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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r 14. 2021

유치원 막내가 된 둘째를 보며

오구오구, 내 아가

아침에 자주 뵙 집배원이 물으신다.

"아이 몇 개월이에요?"

"다섯 살이에요."


속으로 헤아려본다. 내 아들 몇 개월이지? 아, 43개월 됐구나. 태어나서 고작 43개월 밖에 살지 않은 둘째한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유치원 가방 앞주머니에는 여분의 새 마스크가 항상 들어있다. 하원 후 마주한 둘째의 얼굴에 아침에 하고 간 마스크가 아닌 새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이 마스크 바꿨네? 왜 바꿨어?"

"마스크에 눈물이 묻어서"

"눈물? ○○이 울었어? 왜 울었어?"

"엄마 보고 싶어서"


다섯 살이 되고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하원 후에 반복되는 대화다. 유치원 가기 직전까지도 낮잠을 자던 녀석이라 점심 먹고 나면 잠도 쏟아지고 새로운 환경이 낯설기도 했겠지. 짠한 마음이 일렁이는데 동시에 웃음이 난다. 부딪혀서 분명 아플 텐데 안 아프다고, 매워서 물을 벌컥이면서도 안 맵다며 또 먹는 너의 허세가 미치도록 귀여운데 허세에 감춰져 있던 여린 마음이 매일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둘째, 아직 아기인데 말이야.


우리 부부의 가족계획은 자녀 두 명에서 끝이 났고 아들로 태어난 우리 집 둘째는 막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확실히 누나보다 애교도 많고 누나보다 스스로 하려는 의지도 부족하다.

누나는 일찌감치 시작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내가내가병'이 둘째에겐 오지 않은 것일까? 누나의 다섯 살과는 많이 다른 다섯 살을 보내고 있는 녀석을 보며 생각해보니 '내가내가병'이 중증으로 오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뭐든 스스로 해보겠다고 달려들었던 첫째와 달리 '내가내가병'이 경증으로 온 둘째는 "내가내가" 보다는 "엄마가 해줘."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이가 해볼까? ○○이도 잘하잖아"라는 말 따위는 나의 에너지만 소진시킨다. 응원하며 격려의 말을 건네보지만 데시벨 높아진 "엄마가 해줘."만 반복될 뿐이다.


밥보다는 반찬에 관심이 더 많아 콩나물을 국수 면치기 하듯 먹고 짭짤한 멸치 볶음을 몇 숟가락째 우걱우걱  씹어먹는다. 밥도 같이 먹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몇 술 뜨고는 딴청하고 멍 때리기 일쑤. 그러다 '그만 먹을래' 소리라도 나오면 속이 뒤집어진다. 다섯 살 여러 명 세워놓으면 우리 둘째는 누가 봐도 그들보다 동생으로 보이기에. 결국 둘째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데 이렇게 먹다 보면 '먹긴 한거야?' 같은 밥공기가 싹 비워진다. (쌀밥이 아닌 떡볶이나 라면을 주면 숨은 쉬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잘 먹는다는 함정이 있다.)




누나가 여덟 살이 되고 이층침대가 생겼다는 이유로 함께 잠자리 독립을 시킨 것, 아직도 엄마의 옷깃을 만지기 좋아하는 너에게 그만하고 좀 떨어져 달라고 말한 것, 안아달라는 너에게 집안일을 핑계 대고 결국 안아주지 못했던 날, 허리 아프다는 핑계로 더 활기차게 놀아주지 못했던 지난 날들. 아직까지 먹여달라, 입혀달라며 엄마의 손길을 자주 찾는 너에게 다섯 살 됐으니까, 유치원 갔으니까 라는 잣대로 다 큰 것 마냥 대해서 미안해. 고작 43개월 밖에 살지 않은 아직 서툰 게 당연한 너에게 왜 이것도 혼자 못하냐며 다그쳐서 미안해. 엄마가 조금 더 여유 있게 준비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줄게.


엄마도 약속할 테니까 우리 ○○이도 이제 유치원에서 엄마 보고 싶다고 울지 않기로 약속해 줄래?

나의 영원한 엔돌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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