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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Apr 14. 2021

콧구멍에 뭐가 있다고?

아들의 사건을 폭로합니다

"엄마! 나 쉬했어!"

새벽 5시, 이불에 지도를 그린 둘째가 2층 침대에 누운 채로 엄마를 불러댄다.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을 일으켜 이불을 걷어내고 둘째의 젖은 이불도 걷어낸다. 많이도 쌌네. 축축해진 내의를 벗기고 둘째를 씻긴 뒤 다시 재웠다. 금세 잠든 둘째와 달리 잠이 쉬이 들지 않는 나는 한 시간여를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또 들린다.

"엄마! 나 다 잤어!"


오늘은 웬일인지 남편이 둘째를 보겠다기에 마저 잠을 청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달라진 집안 분위기에 몸이 절로 일으켜진다. 둘째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첫째가 다급히 아빠를 부르는 소리, 남편의 당황한 목소리. 안방 문을 열고 나가니 둘째 코 안에 작은 구슬이 들어갔단다. 

'이리 와봐, 어떡하지, 그러게 아빠가 위험하니까 갖고 놀지 말랬지' 소리를 뒤로 하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든다. 


"119에 전화해 볼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119에 왜 전화해. 빨리 와봐."

"119에 전화하면 의료 상담할 수 있어."

(나는 그 순간에 어쩜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봐도 셀프 칭찬받아 마땅하다. 쓰담쓰담.)


잠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아이 코에 작은 구슬이 들어갔는데 어떡해야 하냐고 물었다. 

"집에서 빼려고 애쓰다가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이가 진정이 됐나요? 이비인후과 문 여는 시간까지 잘 기다렸다가 진료 보는 게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빼다가 더 들어갈 수 있으니까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빼 달라고 하자. 그때까지 잘 앉아 있을 수 있지?' 하며 둘째를 소파에 앉히고 가까운 이비인후과 진료 시간을 확인했다. 아빠와 누나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더 놀랐을 둘째에게 물 한잔 마시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소파에 앉아있는 동생의 고개가 삐딱해지자 그 모습을 본 첫째는 얼굴 똑바로 하라며 다그친다. 누나의 다그침에도 군말 없이 고개를 바로 잡는 둘째를 보며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9시에 진료를 시작하는 이비인후과로 갔다.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왼쪽 콧구멍에 작은 장난감이 들어갔다고 대답하는데 부끄러움은 엄마 몫이었다. 코에 뭐가 들어가서 오는 아이들 많다며 의사 선생님은 '다 했다, 다 됐네'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능숙하게 구사하시며 둘째의 콧구멍에 들어갔던 작은 구슬을 쏙 빼내셨다.

누나가 팔찌 만들 때 쓰는 작은 구슬

자신의 콧구멍에서 나온 구슬을 보자 표정이 밝아진 둘째는 이제 마스크를 써도 숨이 잘 쉬어진다며 좋아했다. 구슬 손에 들고 있으라며 인증샷을 남기고는 아침부터 에너지 소모를 크게 해 버린 우리 네 식구는 설렁탕 집에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째에게 물었다.

"○○아, 엄마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구슬 왜 넣었어?"

"아니, 무슨 냄새나는지 맡아보려고."


아,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구슬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궁금했구나. 냄새를 맡아보려고 코 앞에 구슬을 갖다 댔는데 숨을 들이마셨구나. 콧구멍으로 들어간 구슬을 빼려고 손가락을 넣었는데 구슬이 더 깊숙이 들어갔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다시는 콧구멍에 뭐가 들어갈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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