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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Apr 19. 2021

30대에 불어닥친 사춘기?

이제 그만 마음의 문을 열어줘

"너 그러면 도깨비 부른다!"

"그러면 안돼, 누나. 아이가 얼마나 상처 받는지 알아?"

엄마, 아빠는 안 무서워해도 도깨비는 무서워하던 첫째였다. 우리 부부는 그가 시키는 대로 집 앞에 찾아온 도깨비를 무찌르는 연기를 했다. 엄마, 아빠가 미안했다고 이제 더 이상 도깨비 같은 건 오지 않는다고 많이 사랑한다고 안아주며 아이를 안심시켰고 휴대폰에 있던 '도깨비 전화'어플도 당장 삭제했었다.

그랬던 동생이었다. 조카에게 다정한 삼촌이었고 식사 후엔 설거지를 도맡아 하던 착한 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변했다.

그동안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잘 자랐다고 생각했고 엄마는 주변에서 아들, 딸 바르게 잘 키워놨다며 이제 아들만 장가보내면 되겠네 라는 소리를 자주 들으시곤 했다. 친정에 모였던 그 날, 그는 쌓아두었던 불만을 모두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우리 집은 가난했냐, 왜 축구를 시켜주지 않았냐, 왜 남의 옷을 물려 입혔냐, 왜 누나만큼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냐.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것이라고, 더 이상은 그러지 않겠다는 선언도 했다. 그는 분명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데 내 귀에는 아니 그 자리에 있던 엄마, 아빠, 남편까지 우리 넷의 귀에는 억울함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떠들어대는 투정으로 들렸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것 같았다.

진짜 가난한 게 뭔지 모르는구나, 네가 축구를 좋아하긴 했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어, 네 둘째 조카는 여태 백일 기념, 어린이집 졸업 기념으로 딱 두 번 옷 사준 게 전부고 모두 물려 입히고 있어, 너도 내가 돌아오고 나서 호주로 떠났고 나보다 더 오래 있다가 왔잖아, 체육 전공하겠다고 해서 부모님이 입시학원 보내주셨고 교생 실습 나가보니 아이들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는다며 선생님 되겠다고 했잖아, 매 달 용돈 보내시며 뒷바라지하신 부모님께 what the fuck 대체, 뭐라는 거야?

나중에라도 다 같이 마주 앉아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을까? 동생이 쏟아낸 말들을 듣고 부모님, 나, 남편은 그에게 공격하는 꼴이 되었다. 상처를 받았다고 했던가. 동생은 용기 내 꺼낸 말들이 다 처참하게 베어지고 나자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일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흰색 티셔츠 위에 다른 색의 티셔츠를 입은 것 같은 레이어드 티셔츠가 유행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 여러 명이 입고 다녔고 엄마와 걷는데 그런 티셔츠를 오천원에 팔고 있었다. 갖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갖지 못했다. 그 당시엔 서운함이 가득했는데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알겠다. 엄마는 못 사준 게 아니라 안 사준 것이었다. 오천원으로 우리 식구 더 맛있는 반찬을 해주는 게 낫다고 판단하셨을 테니까.


남편도 동생의 일을 겪은 후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처남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봐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키우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구보다 상처, 아니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신 엄마께 기다려 보자고, 시간이 흐르면 아들이 정신 차리지 않겠냐고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를 건넨 게 벌써 몇 년 째다. 엄마는 가족 상담을 받아보자고 권했지만 동생은 거부했다. 엄마는 다 내가 잘못 키워서 그렇다며 자책을 하신다. 뒤늦게 후회한들 소용없지만 그때 '우리 넷의 태도가 잘못됐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폭풍처럼 밀려온다. 내 전화는 받지 않아 종종 카톡을 남겼다. 생일 축하한다며 쿠폰을 보내면 '고마워' 혹은 '잘 쓸게'가 전부였다.


편지를 쓰자, 편지 한 번 써봐야지 하는 마음을 실행하지 못하고 지난주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동생, 잘 지내고 있어?

따사로운 햇살에 선선한 바람, 참 날씨 좋은 오늘이다. 바쁜 생활이겠지만 잠깐 시간 내서 동네 산책이라도 하는 오늘이길 바랄게. 이렇게 좋은 날, 우리 얼굴 마주하고 속상한 마음, 서운한 마음, 미운 마음 다 꺼내서 다시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주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의 욕심이려나? 표현이 서툰 나지만 늘 동생을 믿고 응원하고 있어.

엄마,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 하셔. 다음 달이 엄마 환갑이시거든.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더니 아들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첫째와 둘째에게서 느껴지는 사랑이 조금 달라. 아무것도 모른 채 첫째를 키우다가 둘째를 만나니까 둘째는 울어도, 떼를 써도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둘째한테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사랑이 있더라고. 우리 부모님도 그런 마음으로 너를 키우셨을 거라 확신해.

넉넉하진 않았지만 우리 남매를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드리자. '후회는 살아서 겪는 지옥'이라는 말을 들었어. 적어도 지옥은 겪지 않도록 나도 천천히 노력해 보려 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나도 동생 얼굴 보며 이야기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 곧 만나자.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숫자 '1'.

지금 이 글을 쓰며 확인해보니 어? '1'이 사라졌다. 답장은 없지만 나의 진심이 '1'이라도 전해졌기를. 사진 속 모습처럼 너는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우리 가족의 사랑스러운 둘째야. 부디 마음의 문을 '1'이라도 열어주기를 바랄게.


* 후회는 살아서 겪는 지옥 : 드라마 '빈센조'에서 홍차영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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