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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Apr 23. 2021

둘째의 옷 투정

최근 며칠 아침마다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됐었다. 등교하는 첫째를 배웅하고 돌아오면 둘째와 단 둘이 남는다. 등원차량을 타기 전까지 30여분의 시간. 실랑이가 시작된다.

'이거 불편해, 다른 거 입을 거야, (이제야 내복을 벗고 메리야스를 입히려는데 거부 중이다) 겨드랑이 보이는 거 싫어.'

처음엔 다정하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지만 두 번, 세 번의 실랑이가 계속되자 나도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럼 네가 알아서 꺼내 입어!"

화가 난 엄마의 최후의 통첩과 함께 선택권을 받아 쥔 둘째는 오히려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아니라며 울기 시작한다.

'휴, 대체 어쩌란 말인가.'




분명 골라주는 대로 입는 녀석이었는데 태도가 돌변한 건 지난주부터다. 시아버지 칠순을 앞두고 주말에 찾아뵙기로 했다. 나도 그날만큼은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꺼내 입었으니 다른 식구들도 신경 써서 입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편은 알아서 잘 챙겨 입었고 청바지에 청자켓을 입겠다고 고집하던 첫째는(요즘 첫째는 어떤 옷에도 청자켓만 입으려고 한다) 엄마의 치마 입은 모습을 보고는 청바지는 원피스로 바꿔 입었다. 난관은 이 글의 주인공 둘째였다. 셔츠에 조끼를 입는 것 까지는 수월했다. 상의와 어울리는 청바지를 입길 원했는데 입는 것마다 불편하다며 불만을 쏟아낸다. 청바지, 밴딩 청바지, 청바지 인척 하는 면바지까지 다 싫단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바지는 입히지 못한 채 남편에게 바통터치를 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무사히 입고 나가나 싶었는데 역시나 시작이다. 이번엔 주머니 없는 바지가 싫단다. 주머니에 열쇠나 돈을 넣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유치원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폼이라도 잡나? 화요일 아침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사실 둘째는 주변에서 두세 명의 형들이 옷을 물려주어 지금까지 옷을 사준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물려받은 옷으로 나름대로 예쁘게 잘 입혀왔는데 둘째의 옷 투정을 겪고 나니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둘째한테 계속해서 쏟아낼 수는 없었다. 남자아이들은 엄마가 주는 대로 입는 줄로 알고 있던 내가 잘못이었다. 수요일 오전, 둘째를 배웅하자마자 차를 끌고 쇼핑몰로 향했다(오픈 몇 주년 기념으로 오전 9시에 오픈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던 터였다). 괜찮아 보이는 매대에서 바지 네 벌을 골랐다. 청바지 아니고 주머니 없는 것으로만. 하원 후 하나씩 입어보던 둘째는 다행히 다 마음에 든다고 했다.


목요일이다. 끝났나 싶었는데 이젠 내복이다.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에 벗기지 못하고 있던 내복이었다. 작년에 잘 입던 메리야스를 입혔는데 겨드랑이가 보이는 건 불편하단다. 반년 동안 입고 있던 내복 대신 메리야스를 입으려니 휑한 느낌이 불편했나 보다.

"이제 더우니까 벗는 거야. 유치원에서 덥다고 했지? 지금은 어색해서 불편할 수 있는데 이게 더 시원하고 금방 편해질 걸?"

허허. 통하지 않는다. 메리야스 대신 다시 내복을 입히고 하의는 바지 한 장만 입혀 집을 나섰다. 시간에 쫓겨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복 바지를 벗은 게 불만인 둘째였다. 집을 나서자 같은 동 다른 라인에서 유치원 친구가 나온다. 일부러 그 친구의 할머니께 내복 착용 여부를 확인했다. 안 입었단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에 가니 둘째가 귀엽다고 예뻐하는 옆 동에 사는 여동생이 나와 있다. 나에게 다가와 미키마우스 옷을 입었다며, 반바지 입었다며 손짓으로 표현하고 간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이라니! 네가 나의 구세주구나!

"봐봐, 동생도 내복 안 입고 반바지 입었네?




금요일인 오늘 아침, 둘째가 스스로 바지 한 장만 입겠다고 했다. 내복 상의는 여전히 벗지 못했지만 어제와 달리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잘됐다 싶었다.

오늘 아침 등원 룩. 엄마가 사준 것은 바지뿐.

유치원에서 더울지도 모르지만 '그래,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지'. 땀나는 게 불편해지면 내복 상의도 스스로 벗겠다고 하겠지.

옷 하나로 나도 아들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던 며칠이었다. 지나서 돌이켜보면 사소한 일인데 육아란 참 해가 갈수록 어렵다. 결국은 내가 문제였다. 내가 달리 생각하면 탈 날 일이 없었을 것을. 다섯 살의 의견을 눈 딱 감고 존중해 주면 되는데 떼와 울음이 섞인 투정에 이렇게 후회할 일을 하고 만다. 이렇게 기억해내 기록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둘째의 패션에 훈수 두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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