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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Nov 29. 2021

쌓이는 행복

벌써 한 달 전이다. 고등학교 친구 사이인 우리 셋은 2박 3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은 남편에게 맡기고 떠나온, 열여덟에 만난 우린 3일 내내 열여덟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가지 변한 게 있다면 20년의 세월이 겹겹이 쌓여 울고 웃을 일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 엄마와 아내의 옷을 벗은 우린 온전히 우리 이름 석자의 옷만 입은 채 그저 즐기고 또 즐겼다.

아침에는 '엄마~~~~~'소리를 지 않고 침대에서 눈을 떴고 서두를 이유 없이 브런치를 먹었다. 볼 때마다 예쁜 바다에선 하염없이 멍을 때렸쭉쭉 뻗은 나무가 가득한 숲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서로의 모습을 찍고 또 찍었다. 카페인 수혈이 필요할 땐 차를 타고 가다 마음에 드는 카페 앞에 멈추었고 저녁엔 술잔을 기울이며(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본인 제외)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20년간 유독 나의 마음을 저미게 하던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사주 본 적 있어?"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철학관에 갔었어."

"거기서 뭐래?"

"서른두 살까지 안 죽고 잘 살았네?라고 하던데."

친구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흑돼지구이집에서 기어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몇 번을 곱씹어봐도 어떻게 견뎠나 싶은 친구가 안쓰러워 눈물이 쏟아졌고 그 힘든 시간들을 지나 지금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눈물이었다. 인간이 살면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슬픔이 있다면 친구는 그 슬픔들을 어린 나이에 다 겪었다. 나는 아직 단 한 가지도 겪지 못한 일을 10대부터 30대까지 우르르 겪고 말았다. 그래서 늘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는 친구였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라면 어땠을까? 버틸 수 있었을까? 어떻게 버텼을까? 지금까지 내 인생은 잔잔했는데 갑자기 집채만 한 파도가 들이닥칠까? 팔자란 게 있다면 내 팔자는 뭘까?

요즘은 매체에서 '나'에 대해 다루는 프로그램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늘 같은 생각에 이른다. 내 감정에 솔직할 것, 불행하다 느낄 때면 최대한 그곳에서 빠져나올 것, 지금 마주한 현실에서 행복을 찾을 것. 건강한 경험과 기억들이 쌓이면 훗날 고통 한가운데에서도 일어설 힘을 얻을 거라 믿는다. 그렇기에 내 아이들이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내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기꺼이 연차 쓰고 아이들을 맡아준 남편, 시간 내어 준비하고 함께 여행길에 오른 친구들, 주말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 내 아이들의 웃음소리, 따뜻한 내 집. 행복은 늘 내 옆에 있다.


나의 행복 중 하나, 친구들.

앞서 말한 친구는 20년 전 교복을 입을 때에도, 스무 살이 넘어 어떤 옷을 입어도 깡마른 몸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랬던 친구가 최근에 부쩍 살이 올라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살이 쪘어?"

"하얀아, 나 행복한가 봐. 요즘엔 뭘 먹어도 맛있더라."

이렇게 대답해 버린 친구 때문에 흑돼지구이집에서 나의 눈물은 멈출 수 없었다. 사주팔자라는 게 정말 있는지,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은 믿고 싶었다. 철학관에서 친구에게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고 했다고 하니 내 친구, 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응원하고 또 응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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