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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Dec 11. 2021

용기 내길 잘 했네

ISFJ가 용기 낸 사연

얼마 전 TV 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내향성 테스트를 위한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1. 놀 땐 잘 놀았지만 돌아가는 길에 같이 가자고 하면 부담스럽다.

2. 약속이 취소되면 아쉬움보다 안도감을 더 크게 느낀다.

3. 하루 중 한 시간 정도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4. 뉴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하면 반갑다.

5.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신속하게 못 한다.

위 다섯 가지 질문에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접은 사람, MBTI는 ISFJ로 빼도 박도 못하는 내향적인 사람이 바로 본인임을 밝힌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겐 용기가 필요한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다. 내가 연락하지 않아도 나에게 먼저 연락해주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고 그런 이유로 먼저 연락을 해야 된다는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

  어린 시절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신촌으로 종로로 강남으로 향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할 때면 혼자 있는 그 시간을 꽤나 즐겼다. 책도 읽었고 좋아하는 노래도 들었다. 그러나 내려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면 책과 이어폰을 가방에 넣는 동시에 왠지 모를 긴장감이 밀려오곤 했다. '괜히 나온다고 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만나면 긴장감은 사라지고 함께 웃고 떠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만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고 그땐 이 사람들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줄 알았다.


  그 후 입사와 결혼으로 20대를 보냈다. 내 부모에게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나에게 시어머니는 '나한테는 안 해도 되는데 시아버지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안부 전화를 하라'고 강요하셨다. 역시 굉장히 불편하고 불쾌했지만 착한 며느리라도 되고 싶었던 건지 수요일로 못 박아 놓고는 점심시간이면 의무적으로 전화를 했다. 매주 수요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2층 난간에 기대어 서서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저예요. 식사는 하셨어요? 나의 물음에 시아버지는 늘,

"어, 그래. 먹었다." 하시며 급히 전화를 끊으려고 하셨다.

  1분을 넘기지 못하는 통화는 시어머니와도 마찬가지였다. 1분을 넘기지 못하는 짧은 통화에도 나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고 의무적인 연락은 부정적인 감정만 부추기고 있었다. 매번 끊으려고 하시면서 왜 전화하라고 하시는 거야? 우리 며느리가 전화했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으신 건가? 아니, 효도는 자기 아들한테 받으면 되지 왜 나한테 그러시지? 그 목적 없는 의무감은 임신과 함께 물도 토해버리는 입덧이 시작되자 개나 줘버렸다.


  그리고 퇴사와 출산으로 30대를 맞았다. 생명을 하나 키워낸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밤낮이 뒤바뀌어버린 어린 생명은 나의 젖을 필요로 했고 나는 살기 위해 잠이 필요했다. 무심한 딸이었던 나는, 특별한 일이 있어야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던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자꾸 전화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있는 남편 대신 집에는 다른 어른이 필요했고 그 자리를 친정엄마가 틈틈이 채워주셨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벨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붙들고 에너지를 쏟아낼 더 이상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에 에너지를 쏟을 바엔 시체처럼 누워 있는 편이 더 나았다. 그렇게 먼저 안부를 물어주던 사람들의 수는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시기에 대학 선후배들과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많이 잃었다.

  그러다 학창 시절 만난, 늘 한결같을 줄 알았던 10년 지기, 20년 지기들마저 나에게 연락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 이러다가 친구들마저 잃는 건 시간문제이겠구나.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친구들마저 외면한 삶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친구들이 필요했고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생각이 생각에서 그치기도 했고 카카오톡을 열고 몇 자 적고는 그냥 닫은 적도 많았다. 전화해서 뭐라고 하지? 숨을 가다듬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냥 해봤어, 잘 지내고 있어?"

  역시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결혼, 학창 시절, 직장, 육아 등으로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코로나의 전파와 거리두기로 인해 친구들과의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먼저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묻고 전화를 걸었다. 이런 나에게 먼저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나와 지금까지 알고 지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 내가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어도 늘 우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늘 안부가 궁금한 사람. 다행히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남아있고 그 사람들과의 인연은 놓치고 싶지 않기에 달라진 내 모습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아니, 굳이 유지하려 하지 않아도 이제는 습관처럼 자리 잡아 용기 따위 필요치 않게 되었다.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부모님께 자주 전화를 드리고 있고 시어머니와 1분을 넘기는 통화도 자연스러워졌다. 나처럼 내향적인 성향에 먼저 연락하는 게 힘든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용기를 내보라고, 처음은 어렵지만 더욱 따듯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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