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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Oct 22. 2021

끝과 시작

퇴소 후 이야기

나에게 다시 묻는다. 실패도 성공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일이 실패했다는 결과가 성공으로 갑자기 둔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실패로 끝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그런 것은 아니다. 실패의 아픔과 상처를 잠시 아물도록 놔두고 한 발짝 물러서서 그 시간들을 천천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이 글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물을 수도 있겠다. 끝도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시작을 얘기하다 보니 떠오르는 또 하나의 '시작'이 있다. 내가 공동육아를 시작하기도 훨씬 전, 첫 번째 아이가 생기기도 전에 어쩌면 공동육아를 오기로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던 첫 순간이 있었다. 


"아이가 생기면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어요."


이 당당한 말은 내가 결혼하던 첫 해에 구독하고 있던 월간지의 구독자 인터뷰 꼭지에 실려 있는 말이다. 결혼한 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은 이십 대의 나는 인터뷰 내내 용감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당시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를 후원하고 있었고, 훗날에는 대안학교에 후원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나....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후우. 한숨이 나온다. 사람 기르는 일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강산이 변해도 열 번은 바뀌는 긴 시간을 어찌 저리 호언장담 해 놓았나. 

돌아가서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저 때의 각오를 굳이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고 '그' 아이는 일반 국공립 학교에 보냈다. 첫째와 함께 졸업한 친구들 중 세 집은 새로운 학교 공동체를 찾아 소학교가 있는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갔다. 편의점도 치킨 배달도 안 되는 산골짜기 집이지만 처음 살아보는 주택살이의 매력에 다들 흠뻑 빠진 모양이었다. 


"두루미, 주말에 우리 집 와서 고기 구워 먹자. 파랑이랑 티라노, 둥굴레랑 지화자, 분홍이랑 코끼리도 올 거야."


공동육아를 그만두고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거북이와 두루미라 부르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통통, 오름은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수시로 불을 피우고 사람들을 불렀다. 만날 때마다 세 집은 새로 몸 담은 공동체의 마르지 않는 이슈들로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어느 공동체나 사람들 모여 사는 곳은 다 비슷한지 문제도 많고 탈도 많아 마치 '공동육아의 확장판'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러게, 두루미랑 둥굴레도 이 동네 들어올 때 같이 왔어야 해요."


둥굴레가 옆에서 "아휴~ 난 됐어. 그 힘든 걸 또 해?" 손사래를 친다. 

거북이와 나도 이 마을로 이사를 여러 차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들이 맞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뭘 그렇게까지 유난을 떠냐.'며 혹여나 이번엔 산골짜기로 들어갈까 걱정하시던 부모님들은 한시름 놓는 눈치였지만, 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까이서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곤 한다.


 "두루미랑 거북이도 여기 청원에 서명해줘요. 주변에 널리 퍼뜨려 주시고요." 


지금 이곳 작은 학교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작은 운동장에 일방적으로 체육관을 지어 넣으려는 교장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건 학교의 개별적인 사정에 맞추는 게 아니라 그냥 다 표준화시켜서 커다란 블록 떨어뜨리듯 해치우려는 거라니까요." "애초에 교장이 학부모들의 의견을 듣고 민주적으로 해결해 나갈 의지가 없었어요." 학부모와 마을 주민들이 이 문제로 줌으로 회의도 하고, 청원글도 올렸다. 동영상도 찍어 유튜브에 올리고, 교육청에 찾아가 피켓 시위도 하며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이게 얼마나 골치 아플지, 속 시끄러울지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일반 학교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건 학교와 교육청이 알아서 한다. 학교에서 직접 생활하는 학생들과 그 부모들, 혹은 지역 사회는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로 인식하거나 고민해 볼 기회가 애지간해서 주어지지 않는다. 모르니 속 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일이 처리되는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우리에게 주도권은 별로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주인이 되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만들어 갈 것인가. 손님이 되어 스쳐 지나갈 것인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오름이 말한다. 


"이런 모닥불을 인디언 TV라고 한대요."


모두들 각자의 드라마를 마음속에 품은 채 일렁이는 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불이 꼭 살아 움직이는 생명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나와 남편을 두루미와 거북이라 불러주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불멍 하고 있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들을 '그래도 내가 알잖아.'라고 얘기해 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처음 공동육아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지만 7년간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울타리가 되었던 '어른이들' 덕분이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을 만들고 소중히 지켜나가려 했던 일들은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곳만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공동육아를 한다는 것은 힘을 기르는 것, 결국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은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저절로 큰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다 보면 내가 어떤 어른으로 성숙할 것인지 고민해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곳, 바로 공동육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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