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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Oct 21. 2021

실패의 이유

인지교육, 사교육 하지 않기

열세 명.


내가 있던 공동육아에서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의 숫자다. 졸업생을 내기 시작한 첫 해부터 총 다섯 번의 졸업식이 있었으니 숫자로만 봐도 공동육아에서 졸업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공동육아에 들어온 모든 아이들이 졸업까지 하는 걸 백프로로 가정한다면, 저 숫자는 몇 프로나 될까?


하반기가 되면 터전에서 신입생 간담회를 진행하곤 하는데, 공동육아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한 점들을 미리 뽑아보고 답변도 준비해둔다. 그러나 실제로 간담회에 찾아온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따로 있다. 


"공동육아에서 중간에 나가는 확률이 몇 프로나 되죠? 그리고 어떤 이유들로 나가나요?"


확률을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공동육아를 그만두는 사람들도 그 이유들도 꽤 다양하다. 첫 번째는 '이사'다. 거의 유일하게 어쩔 수 없는 물리적 이유로 그만두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갈등'이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 부딪히다가 끝내 분열되기도 하고, 싸우다가 조합을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동육아를 졸업할 수 없게 만드는 큰 문턱에 '교육'이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학교에 갈 준비를 시키기 위해, 또는 새로운 것을 가르치기 위해 공동육아를 떠난다. 


내가 있던 공동육아에서는 아이들에게 인지교육과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인지교육을 시키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의 발달 시기에 맞는 '적기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손 끝, 발 끝으로 세상을 만나고 직접 보고 느끼며 '몸'으로 세상을 익힌다. 인지교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두뇌의 인지능력이 제대로 발달되는 시기 이전에는 충분히 놀고, 움직이고,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두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러한 구체적 경험을 통해 자라나는 '직접'의 세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튼튼하게 이 직접의 세계가 구축되고 나면 그 땅 위에 비로소 추상적 '간접'의 세계가 뻗어나간다. 양쪽의 어느 세계도 간과하거나 무시된 채 만들어질 수 없다. 충분히 균형 있게, 그리고 '때'에 맞게 천천히 나아가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사교육은 어떨까? 꼭 인지교육이 아니더라도 축구나 발레, 수영, 악기 같은 예체능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사교육을 금지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공동육아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점심 식사 후, 혹은 이른 오후에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하는 정규과정이 끝난다. 그 이후에는 신청한 일부 아이들에 한해 방과후나 돌봄, 특별활동 등을 운영한다. 공동육아의 경우 (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선생님과 모든 아이들이 함께 하는 정규 일과가 오후 다섯 시가 되어야 끝이 난다. 그때부터 하원을 하기 시작하면 보통은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 쉬다가 잠자리에 든다. 어린아이들이 이 일정을 모두 끝마치고 또 어딘가로 무언가를 배우러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사교육을 하려면 어린이집을 쉬거나, 중간에 나와야 한다는 얘기인데 "나 좀 이따 발레 하러 일찍 갈 거다" 하고 아이 하나가 자랑을 하면 "나도 발레 하러 가고 싶다" 남은 친구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하고, 당장에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엄마~ 나도 발레 시켜줘!" 졸라대기 시작할 거다. 이 작은 선택이 가진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 만이라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놔두기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논의 끝에 예체능에 한해 주말에만 사교육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신입 간담회나 상담시간에 공을 들여 미리 설명을 한다. 


그러나 들어올 때 아무리 이 부분에 대해 합의를 하고 들어왔다 해도 기저귀나 간신히 떼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몸이 점점 길어지고, 학교에 갈 나이에 가까워지면 불안이 커지기 시작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최고령 반인 다섯~일곱 살 반에서 이탈이 빈번히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다.


"참~ 별 나. 요즘 애들 공부 한 자라도 더 시키려고 난리인데 너희 부부는 안 시키려고 난리니. 그러다 애들 학교 가서 못 따라가고 고생하면 어쩌려고...."

 

양가 부모님들의 질책에도 '아이들의 부모는 우리 부부'라며 꿋꿋하게 버텨왔다. 그러나 첫째 아이는 우리에게도 뭐든 '처음'하는 경험인지라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아이는 그림책을 정말 좋아했는데, 글자 대신 '그림'과 읽어주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기만의 세상으로 빠져들곤 했다. 한참씩 그림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이야기를 끄집어내 그걸 자기 스케치북에 다시 그렸다. 상상을 더해 놀이로 가져왔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우리 부부 눈에는 그런 것들이 경이로운 순간이 되었다. '글을 몰라서 오히려 틀에 갇히지 않고 상상할 수도 있겠구나.' 아이는 글을 몰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글귀들을 내가 읽기도 전에 술술 말하거나, 무서운 장면이 나오기 전 미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다렸다. 


"주말에 나은이랑 키자니아에 갔거든요. 갑자기 거기 직원이 애들한테 자기 이름을 종이에 쓰라고 그러는 거예요. 나는 밖에서 창문으로 보고 있는데.... 나은이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고... 직원이야 애가 일곱 살이나 됐으니 글자를 모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거죠. 나은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칸에다가 나무를 그리는 거예요. 그리고 막 뛰어가는데 그게 좀 감동이더라고...." 


파랑이 주말에 있었던 얘기를 하며 그때의 감동이 다시 몰려오는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터전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상징이 있다. 나무, 햇님, 구름, 나비, 튤립, 별.... 여벌 옷이나 개인 물건을 놔두는 바구니에도 신발장에도 이름 대신 이 그림들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 참 아름답다.' 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친구의 생일카드에도 글자 대신 그림을 그린다. 친구들이 그린 그림 카드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보면 '태어나면 모든 인간은 화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아이들은 뭘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오랫동안 고민하는 법이 없다. 거침없고 자유롭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어려워졌을까? 


여전히 공동육아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졸업하지 못하고 터전을 떠난다. 그럴 때마다 과연 우리의 약속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 뭐가 옳고 뭐가 틀리다고 판가름할 수 있을까? 다만 이러한 약속이, 우리가 지탱하려는 최소한의 것들이 어떤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빠른 것, 편한 것, 더 많은 쪽, 더 실용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제어장치가 내 삶에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이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은 더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걸 점차 느끼게 된다. 큰 아이가 공동육아를 졸업하고 일반 공립학교에 들어갔을 때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공동육아 졸업하고 학교 가서 적응하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돌이켜보면 공동육아여서 적응이 더 어려웠다거나 혹은, 공동육아여서 적응 능력이 더 뛰어났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다른 아이들만큼 적응하느라 나름의 어려운 시간을 겪었고, 터전과는 다른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공부를 미리 해두지 않아서 힘들었거나,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편견 없이 즐겁게 공부를 하더라는 드라마틱한 일도 없었다. 아이는 가끔 어린이집에서 봄이면 꽃을 따다 화전을 붙여 먹던 일이나, 비를 맞고 친구들과 온 동네를 쏘다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 참 좋았었어!"라고 얘기한다.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친구들과 가끔 화상 줌으로 만나 수다를 떨고, 각자의 학교 이야기를 하고, 마피아 게임을 한다. 어린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고 미래에 더 많이 힘들거나 큰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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