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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Dec 07. 2021

엄마

나무 아래에서

"난 커서 절대로 아기 안 낳을 거야!"


여자아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그 대사를 나도 해봤다. 그날의 다짐이 얼마나 결연했던지 아직도 불끈 쥐었던 주먹의 감촉이 손 끝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발단은 의도치 않게 들었던 엄마와 친구분들 간의 대화였다.


"나는 살면서 제일 아프고 무서웠던 게 애 낳는 거 같아."


나와 내 동생들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낳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게 애 낳는 일이라니 배신감 같은걸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할 당시의 엄마는 고작 풋풋한 삼십 대에 불과했다. 엄마는 젊다 못해 어릴 지경인 이십 대에 애 셋을 이미 다 낳는 엄청난 일을 했지만 그런 걸 가늠하기엔 그때의 내가 너무나 어렸다. (지금이라면 고생했다며 오랫동안 등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엄마가 무섭다고 하면 그건 정말로 무서운 일일 것 같았다. 엄마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고 몸소 가르쳐주는 사람, 적어도 내게는 불가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만큼 해냈다고 보여주면 언제나 이미 저만치 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십여 년이 훌쩍 지나 엄마가 또 애를 낳을지 몰랐다. 아마 그녀도 몰랐을 거다. 

살면서 하게 되는 다짐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듯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첫 진통이 올 때 엄마는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 엄마도 했잖아" 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거짓말....' 나는 엄마가 해낸 일이 아무것도 아닐 리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아이를 낳는 일이 평범한 몸으로 초능력을 부려야 하는 일에 가깝다면, 아이를 기르는 일은 어디서 불어올지 모르는 바람으로부터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일 같았다. 천천히 흔들리고 오랜 시간 버티고 조금씩 파고들며 자리 잡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속이 다 비칠 정도로 투명한 두 눈을 빛내며 나만 바라볼 땐.... 도망가고 싶었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나는 종종 "엄마의 엄마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무턱대고 꺼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내 뒤에 기댈 수 있는 더 큰 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훗날 나와 열여덟 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이 실은 시험관으로 어렵게 태어난 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 한편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애 낳는 게 제일로 무섭고 아프다'던 엄마의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엄마는 왜 이렇게 겁이 없지?' 그게 안쓰럽고 짜증이 났다. 곁에 지켜줘야 할 사람이 많아서 겁이 없는 건지, 그럼 진짜 겁이 날 때 엄마는 어떡하나.... 나이 먹은 딸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둥이 동생이 태어나기 일 년 전 거짓말처럼 고모가 죽었다. 오빠 셋을 둔 막둥이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들에게 슬퍼할 겨를도 없을 만큼 큰 재난으로 느껴졌다. 충격 속에 고모를 보내고 뒤늦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실감이 덮쳐왔다. 엄마는 새로운 생명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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