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엄마 #1
희진은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작은 네모 안의 선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깜빡깜빡. 초록색 선이 깜빡일 때마다 좁고 가파른 산 모양이 조금씩 바뀌며 나타났다. 마치 심장박동이 찍어내는 발자국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안정적이다. 잠들어 있는 주안이의 가슴이 공기주머니처럼 빛의 깜빡임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했다. 안도하며 가만가만 보조 침대 위로 반듯하게 몸을 뉘었다. 천장 위로 비치는 초록색 빛 그림자가 ‘안전함’을 알리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은 좀 잘 수 있겠구나.’
어제는 빛이 빨간색이었다. 심장박동이 저 밑바닥에서 허덕이며 힘겹게 올라와 간신히 입만 내밀었다 다시 빨려 들어갔다.
‘삐-’
경보음이 날카롭게 울려대고 간호사 샘들이 몰려와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서야 초록색 선들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하루 이틀 걸러 응급상황이 불시에 찾아 오지만 주안이는 잘 버텨내고 있다. 마치 이 모든 상황들도 자신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듯 고요한 얼굴로.
잠깐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희진은 잠을 자고 있었다. 방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밥 뜸 소리,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밥 먹으라며 희진을 부를 때 ‘조금만 더...’라며 늦장을 부리는 게 달콤하게 좋았다.
‘달칵’
옆 자리에 불이 켜지고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어린아이를 실은 침대가 들어왔다. 의료진들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두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몸에 기계들을 연결하느라 바쁘다. 그 옆에서 초조하게 서 있던 아이의 엄마는 간호사 샘에게 주의사항과 내일 스케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일련의 소란이 지나가고 다시 방에 불이 꺼지자 희진은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 달콤했던 꿈은 잊힌 지 오래였다. 커튼 너머 옆 자리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고, 희진은 얕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 잠들었을 때 눈 좀 붙여요. 내일부터 바쁠 거예요.”
훌쩍이는 소리가 멈추고 잠시 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응급으로 수술을 하게 돼서요. 좀 전에 마치고 올라왔어요.... 진정이 잘 안 되네요.”
“괜찮아요. 아이도 엄마도 많이 힘든 하루였을 텐데 일단 쉬세요. 병원이 새벽부터 검사하고 의사샘들 회진 돌고 하면 바쁘거든요. 쉬어야 버틸 수 있어요.”
“.... 네”
목소리의 떨림이 가라앉는다. 시계를 보니 한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2인실 방 안에 잠든 두 아이의 숨소리만이 번갈아 들려왔다. 저 엄마는 아마 오늘 한숨도 자지 못할 것이다. 그저 눈이라도 조금 붙이고, 숨이라도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네”
“제가 너무 무서워서요... 진정이 잘 안 되네요. 저희 아이가 땅콩을 먹다가 그게 기도로 넘어가서요. 며칠을 켁켁대며 고통스러워하고 열도 나고 그랬는데.... 전 그것도 모르고 감기인 줄로만 알았거든요. 늦게 알아서 응급으로 수술까지 하게 되고....”
“사고였네요. 지금 힘드시겠지만 잘 버티셔야죠, 엄마가... 아이는 괜찮을 거예요. 아이들이 생각보다 강하거든요. 저희 아이도 이제 돌 지났는데 큰 수술을 여러 번 했거든요. 너무 어려서 힘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잘 버텨주더라고요. 아이들 보기보다 강해요.”
희진은 몇 번이고 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내뱉었다.
“.... 죄송해요, 제가... 괜히 울고 그래서....”
“.... 죄송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처음엔 맨날 울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두 번, 세 번 수술하고 주안이 태어난 후로 병원에서만 살다시피 하다 보니 이젠 괜찮아요. 아이 때문에 이런 큰 병원에 오게 되면 놀라죠. 그런데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 더라고요. “
옆 자리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희진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도 처음엔 제가 이런 큰 병원에 와서 오래 있게 될 줄 몰랐어요. 큰 애는... 주안이 형은 건강하거든요. 여섯 살인데 여태껏 아파서 큰 병원에 온 적이 없어요.”
“주안이는.... 어디가 아픈가요?”
조심스럽게 옆 자리 엄마가 물었다.
“유전자... 변이 같은 거래요. 가부키 증후군이라고.... 저도 주안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양 쪽 집안에도 그런 질병이 없었고... 세상에 삼만 이천 명당 한 명 있는 희귀병이래요.”
이런 얘기를 할 때면 여전히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희진은 생각했다. 기사를 읽듯, 뉴스에서 본 얘기를 전하듯 무감각해지는 기분이었다.
“주안이가 참 대견하네요. 힘든 수술도 여러 번 견뎌내고....”
“... 네, 참 대견해요. 생명이란 게 쉽게 놓아지지 않는 거구나. 주안이 보면서 알았어요. 주안이가 잠들어 있을 때면 늘 가까이 심장소리를 들어보거든요. 혹시 멈추지 않을까 하면서 코 밑에 손 도 대 보고.... 그런데 그 작은 숨이 항상 뛰어요. 산소포화도 떨어져서 응급 코드 떨어지고 CPR 하고 수술실로 바로 들어간 적도 있는데 그래도 주안이는 버텼어요. 그러면서 이만큼 컸어요.”
돌이 지난 주안이는 잦은 수술로 아직도 신생아 티를 벗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희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주안이는 정말 잘 커주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주안이 엄마가.... 전 하율이 수술 들어가는 데도 온몸이 벌벌 떨리더라고요.”
“저 같은 엄마들은... 항상 언제라도 아이가 떠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거든요.”
희진이 환우회 카페 엄마들의 댓글을 떠올리며 살짝 웃었다.
‘오늘도 딱 오늘만큼의 희망을 품고 삽시다 엄마들!’
‘ㅎㅎ 맞네요. 딱 오늘만큼 그만큼만 버티고 내일 생각합시다!’
‘언니~~ 오늘도 파이팅!’
사탕어멈의 글에 엄마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자, 우리도 이제 좀 눈 붙여요. 애들 보려면”
“네 고마워요.”
희진은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이것도 그간의 시간 동안 레벨 업된 생존기술이라면 기술이었다. 희진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잠을 잤다.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라서 도무지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틈틈이 자고, 먹으며 살아남았다. 생명은 쉽게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병원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다섯 시를 넘기자 어김없이 간호사 샘이 들어와 옆자리 곤히 잠든 하율 엄마를 깨운다. 한 손으로 잠든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링거 주머니를 밀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엑스레이 촬영실 앞에 줄을 서면 익숙한 엄마 몇몇이 인사를 건넨다. 어제 희진에게 돌 떡을 가져다준 아라엄마 대신 아라아빠가 줄을 서 있었다. 두 부부가 아라 돌사진을 찍는다고 한복을 입히고, 소아병실과 간호사실에 떡을 돌리느라 바빴다. 아라는 태어났을 때부터 대장이 짧다. 스스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아 몸 밖으로 언제나 치렁치렁 약봉지와 관들을 차고 있다. 아라의 몸이 너무 작아서 가끔은 약봉지와 관들에 아라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아병동 일반병실에서는 희진과 가장 오래 얼굴을 보고 지낸 사이다. 엑스레이를 찍고 올라오니 복도 끝 대기실에서 몇몇 엄마, 아빠들이 의자 여럿을 이어 붙이고 잠들어 있다. 중환자실의 부모들이다. 하루에 두 번 면회가 가능하지만, 중환자실인 만큼 언제 응급상황이 찾아올지 몰라 부모들은 잠시도 병원을 떠나지 못한다. 희진도 주안이 태어났을 때 그랬다. 산후조리도 못한 몸으로 대기실 의자에 웅크려 앉아 잠을 잤다. 소아병동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주안처럼 희귀병과 여러 합병증을 동시에 앓고 있다. 희진은 옛 생각에 빠져 멍하니 대기실을 바라보다 얼른 정신을 차린다. 오늘은 첫째 주명이가 오는 날이다. 오랜만에 마음이 바빠진다.
주명이는 씩씩하다.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희진을 꼭 안아주고는 ‘형 왔다.’ 동생에게 인사도 잊지 않는다. 남편이 주안이를 보는 동안 희진은 주명이 손을 꼭 잡고 병원 이곳저곳을 거닌다. 음료수 자판기에도 들르고 별관 도서관도 보여준다. 건물 사이 우주선처럼 생긴 통유리 다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한다.
“주명이, 유치원 잘 다니고 있어?”
“응! 엄마 주명이 유치원에서 친구들도 많이 있고, 양보 잘했다고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았어.”
희진의 마음에 기쁨이 차오른다. 주명인 특유의 밝은 빛을 잃지 않고 희진의 앞에서 반짝거렸다. 그런 주명이 엄마와 헤어져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흘렸다. 아무런 투정도 없었다. 그저 눈물만 조금 흘리고는 엄마 손을 오랫동안 놓지 못했다. 주명과 남편이 돌아가고 희진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아무리 큰 일을 겪어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무던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주명의 눈물 몇 방울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깬 주안이가 팔, 다리를 흔들며 놀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희진은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았다.
‘넌 이미 엄마를 다 가졌잖아.’
희진의 구멍 난 마음에 칼바람이 일었다.
“주명이 생각이 많이 나겠어요....”
하율 엄마가 그런 희진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렇죠 뭐... 동생 생긴다고 좋아했는데 막상 동생이 태어나니 엄마는 집에 오지 않고... 자기도 어린데... 힘들겠죠. 그런데 동생 싫다는 말을 안 해요, 한 번도... 가끔은 나도 주안이가 미운데 주명이는.....”
희진은 말끝을 흐렸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주명이와 남편, 그리고 희진 세 식구가 도란도란 행복하던 때가 그리워지는 자신이 섬찟하고 싫었다. 어머님이 굳이 애 혼자는 외롭다며 둘째를 권했던 일이 두고두고 잊히질 않았다. 그때 그런 부추김만 아녔어도 애초에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주명이가 의젓하고 참 예쁘네요..”
“네, 씩씩해요. 저렇게 어려도 뭐든 혼자 잘하고 친구들도 주명이를 좋아해요... 우리 주안이도... 저렇게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희진이 기분을 바꿔보려 애써 웃어 보이며 휴대폰 화면을 하율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우리 주안이 같은 아이들 둔 엄마들 카페거든요. 여기 보면 이렇게 잘 커서 학교도 가고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됐다고 엄마들이 올려요.”
화면에 활짝 웃는 아이의 사진을 함께 보며 희진과 하율 엄마는 웃었다.
며칠 후, 희진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완쾌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 병에 완쾌란 없으니까. 다만 더 이상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 집에서 지켜보다 변화가 생기면 다시 병원에 오라는 말을 들었다. 희진은 좋아야 할지 슬퍼야 할지 잘 몰랐다. 집에 간다니 가서 주명이라도 원껏 볼 수 있다니 그건 좋았다. 그러나 이 수많은 기계들과 밤낮으로 꺼지지 않는 병원의 불빛도 의료진도 없이 집에 덩그러니 둘만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더럭 났다. ‘집에 돌아가는 게 겁이나다니....’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나, 주안이랑 오늘 퇴원해요.”
“어머, 잘됐어요. 주안엄마”
“하율이도 잘 회복해서 퇴원하길 바라요.”
하율엄마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 보였다. 연락처를 물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희진도 조용히 돌아섰다. 그저 잘 살아가길 서로에게 바랄 뿐이었다. 간호사샘들이 데스크 앞에 모여 희진과 주안이를 배웅했다. 주안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다른 가족들보다도 더 자주 봐 온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따뜻한 인사를 받고 희진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주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 병실에서 느껴본 적 없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살갗에 와닿았다.
'진짜 세상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왈칵, 뜨거운 것들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역류하듯 솟구쳐 올랐다. 희진도 예상 못한 감정이었다. 주안이를 안은 채로 무릎을 꿇고 펑펑 우는 희진을 남편이 다독였다. 한동안 멈출 수 없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나서야 희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담요를 끄러 주안이를 꼼꼼히 감싸고 문 밖을 나왔다. 공기가 차가웠다.